조촐한 ‘가족장’ 바로 화장하는 ‘직장’ 등 간소화 바람 속 고인 충분히 애도하는 ‘안치장’ 눈길
#트레일러하우스에서 장례식을
트레일러하우스는 차로 견인할 수 있는 이동 주택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주거용이나 점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포브스재팬'에 따르면 “최근 일본에서는 트레일러하우스가 의외의 용도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다름 아니라, 장례를 치르는 식장 역할을 한다는 것. 일례로 메모리아 홀딩스는 ‘마지막 가족 여행’이라는 콘셉트로 트레일러하우스 3개를 연결한 장례식장을 선보였다. 각각의 트레일러는 유족들이 머무는 공간, 면회실, 영안실 등으로 꾸며진 것이 특징이다.
내부는 여느 주택과 다를 바 없다. 실제로 벽재나 바닥재는 일반 건축물과 똑같은 소재를 사용했다. 전기, 가스, 수도 등 각종 편의시설이 완비됐고, 침실과 욕실까지 갖춰 지내는 데 불편함이 없다. 보통의 집과 다른 점이라면 건물 하부에 바퀴가 달려있다는 것. 그리고 제단 등 장례에 필요한 공간이 설치돼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트레일러하우스 장례식을 기획한 것은 한신총상의 다나카 겐키 사장이다. 그는 해당 사업의 추진 배경에 대해 “트레일러하우스가 집이 아닌 차량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장례식장을 만들 때 건축 허가가 필요 없다”는 점을 꼽았다. 아울러 작은 장례식장을 선호하는 시대적 흐름도 힌트가 됐다. 겉치레를 걷어내고 가족끼리 조촐하게 장례를 치르는 ‘가족장’이나 장례식 없이 바로 화장하는 ‘직장’도 늘어나는 추세다.
다나카 사장에 의하면 “가족장에 드는 비용은 평균 50만 엔(약 520만 원), 직장은 15만 엔, 트레일러하우스에서의 장례는 25만 엔 전후”라고 한다. 비용이 가장 저렴한 직장의 경우 고인과 작별 시간이 화장하기 직전 몇 분에 불과해 쓸쓸한 면이 없진 않다. 다나카 사장은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트레일러하우스의 장례”라며 “가족끼리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고인과 이별할 수 있다”고 밝혔다.
덧붙여 “장의업체 입장에서도 이점이 있다”고 한다. 통상의 장례식장과 달리, 트레일러하우스는 열쇠를 가진 유족들이 자유롭게 식장을 출입하는 구조. 24시간 체제로 직원을 배치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에 의한 노동시간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적으며, 인건비 삭감으로도 이어진다.
#고인과의 작별시간을 소중히 ‘안치장’
2019년 문을 연 ‘상송암 카논(카논)’도 주목할 만하다. 도쿄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가쓰시카구의 간호학교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시설로, 대여 장례식장과 영안실을 겸비했다. 일본 매체 ‘동양경제온라인’에 의하면 “카논은 새로운 조문 형태인 ‘안치장’을 제안해 장례업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안치장이란 절차보다 고인과의 작별 시간을 소중히 하는 장례식이다. 일반적인 장례 흐름은 ①시신 안치 ②밤샘 문상 ③장례식 ④화장 순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단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②밤샘 문상과 ③장례식은 간소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조문객 수를 대폭 줄이거나 음식 제공에도 큰 제한이 가해졌다.
사람이 사망하면 화장할 때까지 시신을 안치해두는 장소가 필요하다. 병원 영안실에서는 장시간 시신을 안치해둘 수 없고, 어렵게 수소문한 영안시설도 경우에 따라서는 장례식까지 고인을 보지 못하는 곳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카논이다. 요컨대 유족들이 고인을 보고 싶을 땐 언제든지 면회할 수 있는 안치시설이다. 장례식장과 함께 총 14개의 객실이 준비됐으며, 희망하는 방에서 천천히 고인과 작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며칠 동안의 안치 기간을 통해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고별식을 갖는 것이 바로 ‘안치장’이다.
카논의 대표 미무라 아사코 씨는 이런 사례를 들려줬다. “고인은 80대의 남성으로 아내, 큰딸과 함께 지내오다가 4년 전 치매가 진행되어 고령자 시설에 입주했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1년 반 가까이 면회가 규제됐고, 남성은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갑자기 건강이 악화돼 숨을 거뒀다.
유족들의 바람은 고인과 충분한 작별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특히 딸들은 면회 규제로 1년 반 동안이나 아버지를 만나지 못한 사실에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만일 주 1회 1시간씩이라도 아버지를 찾아뵀다면, 1년 반 동안의 면회시간은 최소 6일이었을 터다. 이런 이유로 “유족들은 6일간의 체류를 희망했다”고 한다.
처음 나흘 동안은 아내, 큰딸, 작은딸, 사위, 손자 등 6명이 거의 매일같이 찾아와 고인에 대한 추억담을 나누며 고인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5일째가 되는 밤에는 가족 전원이 모여 식사를 했고, 고인의 관을 에워싸듯 누워 숙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장례식을 치른 후 유족들은 “6일이라는 시간이 보물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큰딸은 “갑작스런 사망 소식에 충격이 컸다”면서 “만약 6일간의 시간이 없었다면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미무라 대표는 “유족들에게 애도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도시, 특히 도쿄에서는 안치시설이 부족한 상황. 그러다 보니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이 생략되고 대신 장례식만 남게 됐다”는 설명이다. 의식만으로는 겨우 3시간 정도. 그는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제대로 헤어지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라고 덧붙였다.
카논을 찾는 사람들은 작은 장례식일지라도 깊이 있게 고인과 작별하고 싶은 이들이다. 1일장, 직장 등 장례 과정이 간소화되는 추세지만, 한편으로는 애도·추모시간을 소중히 하고 싶은 유족도 있는 것이다. 미무라 대표 역시 중학생이던 딸을 암으로 잃은 유족이기도 하다. 그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 보내는 마지막 시간이 충분하기를, 그리고 그 시간이 온화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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