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 스토리’ 전략하에 구체적 수치 제시하는 SK와 비교돼…현대차 “투자자들과 미래가치·전략 충분히 공유”
현대차그룹은 올해 상반기 수소차 점유율이 50%를 넘어 압도적 1위를 지키고 있고, 전기차 시장에서도 현대차와 기아차가 각각 6위, 9위로 선전하고 있다. 미국 로봇전문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했고, 이스라엘 등의 자율주행 벤처기업에도 투자를 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은 현대차의 미래 전략을 아주 크게 신뢰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 글로벌 금융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 현대차는 경쟁사들에 비해 올해 주가 흐름이 지지부진하다. 홍콩의 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현대차는 노력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올드’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는 미래 전략 로드맵에 구체적인 수치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SK그룹은 구체적인 숫자를 적시하고 있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신뢰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SK 파이낸셜 스토리, 외국인 투자자에 통했다
현대차그룹은 자산총액 기준 국내 2위의 대기업 집단이지만, 주가만 놓고 보면 SK에 밀린다. 그것도 격차가 매해 더 커지고 있다. 심지어 현대차는 재계 순위 4위그룹인 LG에도 시가총액에선 밀린다.
지난 9월 6일 기준 현대차그룹의 전체 시가총액은 연초 대비 13.9% 증가한 137조 3879억 원이다. 같은 기간 SK그룹은 31.7% 늘어난 209조 9164억 원을 기록했다. SK그룹의 시가총액 증가는 SK IET와 SK바이오사이언스 등이 상장한 덕분이지만, 상장 기업들의 주가 상승 폭도 작지 않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올 들어 9월 6일까지 1조 원 이상 매도한 종목은 모두 6개인데, 현대차(1조 2131억 원), 현대모비스(2조 2787억 원), 기아(1조 1174억 원) 등 현대차그룹 관련주만 3개 종목이 포함됐다. 반면 SK그룹은 SK하이닉스(2조 6396억 원), SK이노베이션(4403억 원)은 많이 팔았지만, SK텔레콤과 SK바이오팜, SKC 등은 오히려 각각 1조 3516억 원, 2115억 원, 1860억 원 순매수했다.
금융권은 SK그룹이 2차전지를 비롯한 친환경 에너지, 바이오 등에 집중해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구체적인 수치를 적시하고 있다는 점이 신뢰를 더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파이낸셜 스토리’를 주문하고 있다. 최 회장이 강조하는 파이낸셜 스토리는 고객, 투자자, 시장 등을 대상으로 SK 각 회사의 성장 전략과 미래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총체적 가치(토털 밸류)를 높여 나가자는 경영전략이다.
최 회장은 지난해 말 ‘2020 CEO세미나’에서 “이제는 매력적인 목표와 구체적 실행계획이 담긴 파이낸셜 스토리가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기업가치가 높아지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SK 한 관계자도 “최 회장은 두루뭉술한 선언적 슬로건보다는 가능성 높은 추정과 예측을 기반으로 구체적인 숫자에 근거한 목표를 제시하라고 지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계열사 사장단은 실제로 적극적으로 수치를 제시하고 있다. 장동헌 SK 사장은 자사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2025년까지 지주회사 SK 주가의 200만 원 시대를 열겠다”고 했고, 추형욱 SK E&S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9월 1일 미디어데이에서 LNG에서 수소를 추출해 수소 에너지 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7조 원 규모인 SK E&S의 기업가치를 2025년 35조 원으로 높이고, 지난해 6조 원 수준의 매출도 13조 원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지난 7월 1일 배터리 부문 분할을 발표하면서 향후 5년간 친환경 그린 사업에 3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전기차 배터리 18조 원, 배터리 소재 분리막에 5조 원, 폐플라스틱 100% 재활용 등 그린 사업 전환에 7조 원을 투자해 2016년 기준 6%에 불과한 친환경 그린 자산 비중을 2025년 70%로 대폭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통해 2050년 이전에 탄소 순배출 제로(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 SK이노베이션의 목표다.
또한 SK종합화학이 8월 31일 회사명을 SK지오센트릭으로 바꾸고, 2025년까지 국내외에 5조 원을 투자해 연간 90만 톤의 폐플라스틱 처리 설비를 확보하는 등 친환경 소재 사업을 확대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현대차 신사업 많은데 전달력 부족?
글로벌 투자자들은 현대차의 로보택시와 UAM, 그리고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를 통한 시너지 효과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데 현대차그룹이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해 “현대차가 의도적으로 감추는 것은 아니지만 테슬라로 인해 투자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것”이라고 설명한다. 테슬라는 AI(인공지능)데이와 배터리데이, 자율주행데이 등을 통해 개발 중인 기술과 전략을 낱낱이 공개하고 있다.
현대차도 이를 의식한 듯 지난 9월 2일 제네시스 브랜드 비전 발표회와 같은 달 7~8일 수소사회 비전 발표회 ‘하이드로젠 웨이브’를 꼼꼼히 준비했다는 후문이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비전 발표회를 통해 2025년부터 모든 신차를 수소차와 전기차로 출시하고(듀얼 전동화 전략), 2030년까지 8대 모델 라인업을 완성해 연간 40만 대 판매를 달성하며, 2030년 이후로는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대다수 증권사 연구원들은 비전 발표회에 대해 호평했지만, 일부 연구원들은 아쉽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2030년까지의 세부적인 실행 계획이 발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가 측면에서는 제한적인 플러스 효과”라고 평가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도 “현대차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주식시장에 잘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과거 한전 부지(GBC) 고가 입찰 논란도 아직 영향이 있는 것 같다”면서도 “현대차는 연내 더 업그레이드된 전기차 전략을 발표할 계획이고, 조만간 수소차 전략도 발표할 예정인 만큼 점점 더 시장에서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현대차 한 관계자는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는 차익 실현을 위한 측면으로 볼 수 있다"며 "외국인 투자자, 증권사 연구원과 기업의 미래 가치와 성장 가능성, 중단기적인 전략을 충분히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동차 메이커만 놓고 보면 현대차그룹만큼 구체적인 전략과 수치를 제시하는 곳은 드물다"고 덧붙였다.
민영훈 언론인
임홍규 기자 bentus@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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