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거점지구 입지로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대덕단지)를 선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요즘 청와대가 하고 있는 각종 정책 발표 모습을 보면서 정부부처 공무원들이 하는 이야기다. 정치권을 상대로 돈이 들어가는 선거용 공약을 하지 말라고 지적해놓고 정작 청와대가 앞장서서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표심을 얻기 위한 정책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정책이 국가 미래를 위한 고심 끝에 나온 것이라기보다 당장의 지역 정서 달래기용이어서 실제 효과를 얻을지도 미지수라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월 23일 각 부처 장관들과 함께한 재정전략회의에서 “내년 총선과 대선 때 포퓰리즘에 빠져 재정 안정에 반하는 일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복지를 보완하면서도 선심성 복지는 피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권이 내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 각종 선심성 공약을 내놓게 되면 나라 곳간에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었다.
이 대통령이 발언이 나온 직후부터 정치권의 선심성 정책을 지적하는 자료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재정전략회의에서 현 18대 국회에서 의원 발의된 법안 9486건 중 재정 지출 확대가 필요한 법안이 2780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들 법안이 모두 통과되면 오는 2014년까지 800조 원의 재정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지난 3일에는 국회 예산정책처에서도 관련 자료를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발의한 법률안 중 재정이 수반되는 입법안은 15대 국회 때 13건에서 16대 76건, 17대 1367건, 18대 국회는 2782건으로 급증했다. 세금을 감면해주는 조세특례제한법도 쏟아졌다는 자료도 나왔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18대 국회 들어 현재까지 발의된 조특법은 모두 272건으로 17대 국회 166건보다 많았다.
정치권에 대한 압박은 4월 28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2012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에서 절정에 달했다. 정부는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해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을 총수입 증가율보다 2~3%포인트 낮게 잡겠다고 밝혔다. 특히 2012년이 사실상 현 정권의 마지막해인 데다 총선과 대선 등 각종 정치 일정이 겹치면서 선심성 예산 관련 법률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이를 막는 데 주력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제는 이처럼 정치권에 총선과 대선용 선심공약은 안된다고 해놓고 정작 청와대가 재정이 대거 소요되는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이번에 결정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이다. 충청과 영남, 호남이 이를 놓고 다퉜지만 다툼의 원인은 청와대에 있다. 이 대통령이 당초 충청 지역에 가기로 된 것을 세종시 수정안 무산을 이유로 ‘원점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지역 간 경쟁이 수습 불가능할 정도로 심화됐다. 이 때문에 초안대로 대전 대덕지구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의 중심지로 정하게 됐지만 영남과 호남을 달래야 하는 새로운 부담을 자초했다. 영호남 민심을 달래야 한다는 압박에 결국 예산을 무려 1조 7000억 원이나 늘리는 상황이 벌어지게 됐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지원할 연합 연구단지를 충청뿐 아니라 영호남에도 배치하기로 하면서 예산이 급증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예산 증액이 예산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는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나왔다.
재정부 관계자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예산이 당초 3조 5000억 원에서 5조 2000억 원으로 늘어났지만 이는 청와대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주도적으로 한 것으로 재정부에는 제대로 통보되지 않았다”면서 “‘표 얻기용’이라면 1조 7000억 원을 늘리는 것보다는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1조 7000억 원을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청와대의 표심 얻기용 예산 증액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가 한국토지주택공사로 통합되면서 당초 주택공사는 경남 진주, 토지공사는 전북 전주로 가기로 되어 있던 공기업 이전이 혼란에 빠졌다. 정부는 결국 한국토지주택공사를 경남 진주로 보내기로 하고 대신 경남 진주에 가기로 되어 있던 국민연금관리공단을 전북 전주로 이전키로 했다. 하지만 양측의 반대, 특히 전북 지역의 대대적인 항의에 직면했다. 이는 이들 공기업이 지방자치단체에 내게 될 세금 규모가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는 탓이다.
주택공사가 그동안 지불한 지방세는 연평균 120억 원, 토지공사는 170억 원이나 된다. 통합된 한국토지주택공사를 가져가는 지자체는 지방세 세수가 무려 300억 원 가까이 늘어나는 것이다. 반면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지방세 세수는 6억 원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당장 정부는 전북 민심을 달래기 위해 세수 보전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결국 지자체를 살리는 공기업 이전을 하면서 국민 세금을 추가로 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