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당을 재보선에서 승리한 손학규 대표가 4월 29일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해 박지원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손대표는 11일 라디오 정당대표 연설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정부가 결코 재협상 해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번복하고 미국 쪽 입장만 반영해 새로 고침으로써 국익 측면에서 손해가 더 커져가고 있다”며 향후 국회의 비준안 처리에 동의하지 않을 방침을 밝혔다. 그는 “민주당은 자유로운 통상정책을 지지하지만 협상을 잘못해 손해 볼 수 있는 FTA, 손해 보는 국민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준비 안 된 FTA에는 동의하지 않겠다”고 했다.
손 대표의 이러한 입장정리는 한·EU FTA 비준동의안의 국회 통과 과정에서 야당들과의 정책연대선언 준수를 주장하며 한나라당과의 합의처리에 반대했던 당내 강경파에게 더 이상 노선 문제로 휘둘리지 않겠다는 선언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손 대표 측근들 사이에선 “어렵게 쌓아놓은 자산을 이념노선 재설정으로 한꺼번에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로 지난 분당 을 보궐선거에서 손 대표는 ‘중산층의 꿈’이란 슬로건으로 중도 성향의 유권자를 공략했다. 그 결과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에서 이른바 ‘강남 좌파’로 불리는 20~40대 직장인들 덕분에 손 대표는 국회 입성은 물론 10% 중반대의 지지율을 회복하며 대권주자로서의 위상을 새롭게 다질 수 있었다.
손 대표는 모노리서치가 재보선 다음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4.9%, 같은 날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13.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선거 전 거의 5~7%대에 머물던 지지율이 분당 을에서 당선된 후 15%까지 근접하면서 급등세를 보인 것이다.
손 대표는 지난해 10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선출된 직후에도 한 자릿수에서 10% 중반대로 지지율이 급등한 바 있다. “잃어버린 600만 표를 찾겠다”며 중도를 표방한 결과였다. 하지만 당내 정동영 최고위원과 쇄신연대의 압박 속에 ‘좌 클릭’하면서 지지율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이제 손 대표가 다시 지난해 지지율 하락의 경로를 밟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손 대표가 중도성향이 지지기반이면서도, 지역적으로나 이념적으로 당내 지지세력이 취약하다는 점 때문에 당내 정치에선 진보노선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당 대표에 선출된 이후 자신의 중도색깔을 내지 못한 채 진보 성향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최근 ‘민주당의 변화’를 강도 높게 주문하면서도 여전히 당 장악을 위해 진보성 강화로 귀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민주당 의원은 “당내 비주류가 손 대표의 정체성 문제를 물고 늘어질수록 손 대표는 자신의 자산을 늘려가는 게 아니라 부채를 갚는 심정으로 더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게 된다”면서 “이것이 바로 손 대표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지지율의 추이를 봐도 손 대표가 중도와 진보 사이를 오가는 행보에 따라 지지율 등락폭이 크다. 지난 10일 모노리서치가 지난해 10월부터 올 4월까지 7개월여 동안 자체적으로 매월 실시한 대권 예비 주자 지지도 설문조사를 심층 분석한 결과, 현재 지지도 1위인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전 지역에서 고른 지지를 받으며 지지율이 33~36.5%로 등락폭이 크지 않은 안정적인 상태를 보였다.
반면 손 대표는 당 대표 선출 직후인 지난해 10월 12.6%, 분당 을 선거를 승리한 지난 4월 14.9%를 기록했으나, 그 외에는 6~7%의 지지율을 보였다. 연령대로는 ‘30대’층, 지역적으로는 ‘호남지역’ 지지율의 등락폭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중도에서 진보까지 걸쳐 있는 연령층과 지역기반 사이에서 그가 한동안 줄다리기를 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특히 손 대표가 강조하고 있는 야권 정책연대는 손 대표의 지지율에는 ‘양날의 칼’과 같은 요소다. 민주당이 FTA 반대파인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과 정책공조를 강화할수록 그의 지지율에는 플러스 요인과 마이너스 요인이 동시에 작용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손 대표 주변에서는 노선 차이를 무시한 야권연대에 대해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정장선 의원은 “대북관계, 한미 FTA 등의 이슈에서 민주당과 민노당은 노선 자체가 다르다”면서 “이번 기회에 분명히 정리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정책공조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결국 손 대표에게는 민주당 지지층 결집과 함께 중도층 끌어안기가 동반돼야만 하는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가 손 대표의 지지율과 관련해 “이제 진보와 중도를 아우를 수 있는 ‘손학규식 제3의 길’을 모색하고 보여줘야 할 때”라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손 대표의 ‘화려한 부활’ 이후 한나라당 지지층 사이에서 박 전 대표로의 결집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4·27 재보선 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한나라당 지지층 가운데 박 전 대표 지지율이 3월 51.8%에서 61.3%로 10%p가량 상승했다. 손 대표가 야권의 대표주자로 부상하는 것과 동시에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박 전 대표에 대해 이전보다 더 높은 지지를 보내며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손 대표의 노선설정 문제뿐만 아니라 여야 대결구도가 구체화될수록 손 대표의 지지율은 출렁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