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미사일지침 폐기 뒤 초스피드 미사일 전력 강화…1970년 창설 이후 군 출신 12명 과학자 출신 7명 소장 역임
지난 5월 21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미사일지침을 완전히 폐기하는데 합의했다. 한국이 자주국방 역량을 강화하고 우주 발사체 개발을 통해 우주개척 시대를 앞당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국은 한·미 미사일지침 폐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성과를 내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9월 15일 충남 태안 안흥종합시험장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초음속 순항미사일 등 3종의 미사일 전력이 공개됐다.
특히 SLBM의 경우 도산안창호함(3000t급)이 수중에서 발사해 계획한 사거리를 비행한 뒤 목표지점에 명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한국은 대표적 전략무기로 꼽히는 SLBM을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등에 이어 전 세계 7번째로 잠수함 발사하는 데 성공한 국가가 됐다.
이 외에도 청와대는 “7월 29일 우주발사체용 고체추진기관 연소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밝혔다. 고체추진기관은 향후 소형 위성 또는 다수의 초소형 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올릴 수 있는 우주발사체의 추진기관이다. 이에 청와대는 “2024년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 독자기술 기반의 고체 우주발사체를 발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개발의 중심에는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대한민국 방위사업청 산하 공공기관이다. ‘자주국방의 초석’이라는 기치 아래 1970년 8월 대통령령에 따라 국립연구소로 창설됐다. 같은 해 12월 특별법 ‘국방과학연구소 설치법’에 의해 특수법인으로 전환됐다. 첨단 무기체계 개발 및 국방 과학기술 조사·분석·연구를 담당하게 됐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설립 초기 박정희 정권 하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 결과 1978년 9월 국방과학연구소는 충남 안흥시험장에서 미국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을 개조한 탄도미사일 ‘백곰’의 공개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대한민국이 세계 7번째로 지대지 탄도미사일 개발국이 된 순간이다. 사거리는 휴전선에서 북한 평양까지 거리인 180km였다.
미국을 비롯한 주변 강대국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백곰이 나이키 허큘리스보다 한 단계 발전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에 주한미국대사, 미 정부 특사까지 국방과학연구소를 직접 찾았다. 주한미군사령관은 개발 중단을 요구하는 공식서한도 보냈다. 결국 노재현 당시 국방부 장관이 ‘사거리 180km 이상은 개발하지 않겠다’는 서한을 미국 측에 보내야 했다. ‘한·미 미사일지침’은 그렇게 시작됐다.
1982년 전두환 정부에서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국방과학연구소 미사일 개발팀이 해체되기도 했다. 국산 미사일 개발이 재개된 것은 1983년 10월 아웅산 테러 사건이 계기가 됐다. 국방과학연구소는 1984년 TF팀을 구성해 다시 개발 검토에 들어갔고, 1986년 백곰을 개량해 정밀도를 높인 탄도미사일 ‘현무’를 선보였다. 이어 지대공 미사일 ‘천마’, 함대함 유도탄 ‘해룡’ 등을 개발해냈다.
미사일 외에도 국방과학연구소는 소총, 전차, 장갑차, 자주포, 수상함, 잠수함, 항공기 등 국방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특히 초음속 훈련기 T-50, K-9 자주포, 잠수함 등 일부 국산 무기는 그 기술을 인정받아 세계 각국에 수출되고 있다.
현재 국방과학연구소는 지난 6월 기준 임직원이 3500여 명에 달한다. 이러한 국방과학연구소를 책임지는 소장은 국방부가 공모를 통해 국방부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방부 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직위다. 임기는 3년.
국방과학연구소 소장은 그동안 주로 군인 출신이나 연구직 박사들이 맡아왔다. 신응균 초대 소장은 육군 중장으로 예편해 박정희 정부에서 국방부 차관, 주서독 대사 등을 거친 군인 출신이다. 1972년 2월부터 1980년 7월까지 2·3·4대 소장을 맡으며 역대 최장기 소장으로 기록된 심문택 전 소장은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 미 인디애나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과학자 출신이었다.
1970년 창설부터 현재까지 총 19명이 소장을 역임했는데, 군인 출신이 12명에 과학자가 7명이었다. 노무현 정부 이후 박사들이 소장에 중용되고 있는데 ‘연구소는 전문 연구원이 이끌어야 한다’는 인식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지난 4월부터 제24대 박종승 소장이 국방과학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박종승 소장은 1961년생으로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에서 기계공학 석·박사 학위를 땄다. 2010년 5월 국방과학연구소에 합류해 이후 대지유도무기체계실장, 대지유도무기체계단장, 제1기술연구본부장 등을 거친 ‘미사일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지난 3월 부소장에 임명된 지 1개월 만에 소장에 발탁됐다.
박종승 소장이 임명되기 전 ‘낙하산 인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당초 2020년 11월 첫 소장 공개모집 공고를 냈다. 당시 응모자격에 ‘방위사업청 고위공무원급’이 추가되고, 강은호 당시 방사청 차장이 사임 뒤 응모하면서 그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논란 끝에 강 전 차장은 더 높은 직위인 방위사업청장으로 영전했다. 이어 국방부는 나머지 지원자들에 대해 인사위원회 심의 등의 절차를 거쳐 ‘적격자 없음’ 판정을 내리고, 석 달여 만에 재공모를 해 다시 잡음을 일으켰다.
재공모에서도 당초 소장 후보로 박 소장이 아닌 강태원 전 부소장이 거론됐다. 강 전 부소장은 영관급 이상 예비역들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 모임인 국방안보포럼 출신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최측근이었던 강금원 회장의 인척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다시 한 번 ‘낙하산 인사’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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