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반노의 분노’ 속에 탄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동안 이념갈등 유발 등으로 수많은 논란을 일으키자 민심 이반은 극에 달했고 그것은 곧바로 이 대통령에 대한 대선 몰표로 나타났다. 반노세력을 등에 업고 출범한 이명박 정권은 그러나 대기업 위주 감세정책에 따른 사회양극화 심화, 민주주의의 후퇴, 특권계층 인사편중 등의 문제점을 노정시키며 비틀거리고 있다. ‘노무현만 아니면 무조건 오케이’라고 외치던 이명박 정권의 국정운영 미숙은 죽은 노무현을 다시 정치의 중심으로 불러내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노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아 그에 대한 재조명 작업도 본격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일요신문>은 ‘노무현을 통해 이명박을 다시 보는’ 기획특집을 마련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5월 18~19일 이틀 동안 서거 2주기를 맞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전반적인 평가를 실시했다. 지난해 서거 1주기에는 지방선거 때문에 노무현 재평가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여론조사는 그의 사후 2년 만에 처음으로 실시되는 ‘노무현 정신의 재조명’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다. 조사대상과 방법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ARS를 통한 RDD(유선전화 800+휴대전화 200) 방식으로 실시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구간에서 ±3.1%포인트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아 실시된 이번 여론조사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그에 대한 국민들의 전반적인 인식과 평가가 ‘현재’ 어떻게 자리매김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일단 시계를 지난 2008년 2월로 되돌려보자. 대통령 퇴임식이 열렸던 2월 25일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실시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그는 27.9%를 기록했다. 본지가 이번 여론조사를 의뢰한 리얼미터의 당시 조사를 보면 노 전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하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67.5%였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노 전 대통령의 ‘현재’ 평가도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여론조사 결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전반적인 평가는 예상을 뛰어넘어 훨씬 호의적이었다. 평가는 ‘국정수행’, ‘지지 여부’, ‘국정철학’ 등의 3가지 요소로 나누어 알아봤다. 먼저 노 전 대통령의 국정수행과 관련해 ‘성공한 대통령’으로 보느냐, 아니면 ‘실패한 대통령’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평가한 답변이 65.5%로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재임 마지막 여론조사 때의 부정적 평가치 67.5%를 떠올려 보면 드라마틱한 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매우 성공’(19.3%)과 ‘성공한 편’(46.3%)이라며 긍정적인 답변을 한 응답자가 ‘실패’(29.5%)와 ‘실패한 편’(24.4%) 등의 부정적 답변을 한 응답자를 월등히 앞서고 있다.
연령별로는 연령이 낮을수록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좋게 나타났다. 20대는 긍정적 평가가 83.4%로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했고, 30대도 77.4%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40대는 61.3%, 50대 이상은 49.0%였다. 지역별로는 전북이 81.0%로 가장 높았고, 전남/광주가 76.3%로 뒤를 이었다. 대전/충청이 71.1%였고, 경기/인천이 68.0%였다.
‘대통령으로서의 성공, 실패를 떠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를 묻는 항목에서는 ‘지지’ 의견이 국정수행에 대한 ‘성공’ 평가 응답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매우 지지’(16.8%), ‘지지하는 편’(51.5%) 등 그를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68.3%에 달했다. 반면 ‘전혀 지지 안하’(5.8%)거나 ‘지지하지 않는 편’(18.2%)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24.0%로 낮게 나타났다. 연령·지역별로는 앞선 국정평가 부분과 마찬가지로 젊은 층과 호남권의 지지층이 두터웠다.
노 전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긍정적 평가가 주를 이뤘다. 응답자의 67.2%가 그의 국정철학을 ‘지지’한다고 대답했고, 21.6%만이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연령·지역별로 보면 역시 국정수행 능력과 지지 여부에 대한 응답층과 비슷한 분포를 보였다.
그런데 이번 조사를 통해 보면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 곡선은 이명박 대통령의 하락 곡선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2008년 노 전 대통령 퇴임 전 실시된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당선자가 국정운영을 잘할 것이라고 전망한 ‘긍정’ 평가는 77.4%였고, 16.3%만이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이 대통령은 촛불정국 때 지지율이 빠지긴 했지만 지난 2010년 상반기부터 중도개혁 정책으로 지지율 40~50%대를 탄탄하게 유지해왔다. 하지만 지난 4월 재보선 패배 이후 지지율은 급전직하하고 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도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26.4%에 머물렀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전직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지지율(68.3%)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 점은 민심의 흐름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재보선 패배 이후 3주 연속 하락한 뒤 유럽순방으로 반짝 반등했다가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가 59.7%까지 치솟고 있고, 서울과 영남에서만 30%대의 지지율을 기록할 뿐 나머지 지역에서는 10~20%의 저조한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 청와대 정무라인도 민심관리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이렇게 두 사람의 지지율이 상승-하락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것은 역시 ‘반 이명박’ 정서가 그대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 복귀’ 경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반노’ 정서의 폭발로 이 대통령이 당선되었지만 ‘결국 구관이 명관이었다’는 국민들의 회귀성향도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소장파의 한 재선 의원은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3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해 “최근 우리(소장파)마저 감세정책에 대한 재고를 요구할 정도로 이명박 정권의 경제정책은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연기금 주주권 행사 발언으로 대기업을 압박하고 나선 것은 친 재벌정책의 이명박 정권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말해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서민들은 전세금 고공행진, 만성적인 고물가로 생활 영위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중산층 몰락과 양극화 심화는 이명박 정권의 지지율 폭락을 불렀고 우리는 지금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경제정책을 검토해야 할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 재선 의원은 “국민들이 체감하는 민주주의의 후퇴도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이 대통령을 비판한 민간인을 총리실에서 사찰한 사건, 미네르바 구속사건을 비롯해 최근의 쥐벽서 사건에 이르기까지 사회전반에 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 언론자유에 대한 평가도 올해 미국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 196개국 가운데 홍콩과 함께 70위에 머물렀다(지난해 67위). 보수성향의 이 단체가 참여정부 말에 우리나라를 ‘정치 자유 1등급’ 국가로 분류한 것에 비하면 이명박 정권의 민주주의는 실질적으로 위협을 받는 수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문제가 돼온 특정계층의 인사편중도 심각하다. 특히 정치권에서 수차례 지적했지만 고쳐지지 않았던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문제는 이번 개각에서도 고질적인 병폐를 다시 드러내고 있다. 유영숙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소망교회 출신’이라는 것이 밝혀져 비난을 자초한 바 있다. 그런데 유 후보자 부부가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소망교회에 낸 헌금이 총 1억 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또 다시 드러나자 여당 내부에서도 “그렇게 얻어맞고도 이 대통령이 정신을 못 차렸다”는 비판이 제기돼 청문회 통과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업적에 대한 질문에서는 ‘권위주의 타파’가 32.7%로 가장 높게 나왔다. 다음으로는 ‘햇볕정책 계승’이 22.3%로 뒤를 이었고, ‘지역차별 해소’(13.6%)와 ‘종부세 도입’(7.6%)을 꼽은 응답자들도 적지 않았다. 여기서 주목해볼 것은 ‘권위주의 타파’라는 응답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는데, 여론을 주도하는 핵심층인 40대에서도 40.0%로 가장 높았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신’에 대한 응답도 눈에 띈다. 노무현 정신의 가장 핵심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응답자(25.3%)가 ‘국민참여 정치’를 꼽았다. ‘권위주의 철폐’(24.8%)와 ‘원칙과 소신’(23.2%)도 오차범위 내에서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다. 연령별로는 20대를 제외하고는 모든 연령층에서 ‘국민참여 정치’가 가장 높게 나타났고, 20대는 ‘권위주의 철폐’를 가장 많이 꼽은 것으로 나왔다.
‘노무현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를 묻는 항목에서는 ‘친서민’이 43.9%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탈권위주의’(23.2%)와 ‘파격’(8.3%) 등의 상위 응답 3항목이 모두 긍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났다. 반면 ‘경박’하다는 이미지는 5.1%, ‘독단’적이라는 응답은 3.0%로 비교적 낮게 나타났다.
‘노무현 정신과 이미지’에 대한 응답을 살펴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결여된 부분이 다수 포함돼 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권위주의 철폐는 이명박 정권의 행태와 극심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지난해 한 조사기관에서 실시한 이명박 대통령의 이미지 조사에서 ‘일방적’(70.0%)이고 ‘권위적’(65.1%)이라는 결과는 두 사람의 상반된 정치 스타일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 대통령이 22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부으며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은 공론화 없이 불도저식으로 추진하는 권위주의 리더십의 전형이다.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노 전 대통령이 ‘천성산 도룡뇽’ 사건 때 지율스님에게 문재인 민정수석을 보내 간곡하게 설득하는 장면과 대조를 이룬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