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운이 따르지 않았던 걸까. 불이 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활활 타올랐다. 가장 먼저 터진 사건이 현대캐피탈과 농협중앙회의 해킹 사태다. 이어 부산저축은행 비리 문제까지 불거지며 금감원의 감시 기능이 도마에 올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감원 직원들의 비리 문제까지 터져 나왔다. 금융회사를 감독해야 하는 금융감독원까지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에 이르면서 대통령이 직접 방문해 금감원의 관행과 비리를 질타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러면서 여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저축은행 부실문제에서 금감원의 모럴헤저드 쪽으로 옮겨져 갔다. 일각에서는 취임 한 달을 갓 넘긴 권 원장의 사퇴론까지 나오고 있다. 권 원장의 취임 후 금감원이 오히려 더 어려운 상황에 몰리게 된 것이다. 이런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권 원장이 빼든 카드가 ‘파격인사’다. 권 원장은 취임 한 달 만인 지난 4월 28일자로 인사를 단행했다. 상당수 부서장을 다른 분야로 옮기는 파격적 인사였다. 한 분야에서 수십 년 근무한 베테랑 국장이 전혀 생소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999년 은행감독원 보험감독원 증권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의 조직이 통폐합돼 탄생한 유일한 금융감독기구다. 각기 흩어진 감독기구로는 효율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합쳐진 것이다. 지난 2000년 인사 때 금감원은 각 권역에서 들어온 직원들을 섞었다. 보험 전문가는 증권으로, 증권 전문가는 은행으로, 은행 전문가는 보험으로 보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11년 전 그때보다 더 섞어놔 사실상 조직 자체가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권 원장의 위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관측이 많다. 가장 큰 위기는 5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다. 현재 금융권과 건설업계에서는 중견 건설회사 부도 사태가 5~6월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채권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만기가 이때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PF 대출의 만기를 조사한 결과 올해 2분기에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조 1000억 원의 PF 대출이 남아 있는 우리은행은 5~6월 중 1조 3000억 원의 만기가 돌아온다. 국민은행도 이 기간 1조 원의 PF 대출 만기가 기다리고 있다.
저축은행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저축은행은 ‘PF 대출 25% 이하’ 규제를 7월부터 맞추기 위해 무차별 여신 회수에 나서고 있다. 만약 권 원장을 비롯한 금감원이 이 문제를 잘 대처하지 못하면 국가경제가 큰 위기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 이와 함께 론스타 대주주 적격성 문제도 잘 마무리 짓지 못하면 거센 후폭풍을 맞닥뜨리게 될 전망이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