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매물 찜부터” 가계약금 송금 요구, 계약 철회해도 반환 미뤄…피해자들 지쳐서 환불 포기
50대 A 씨는 오래전부터 부동산 투자에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2015년께 지인 소개로 한 부동산 투자 강의를 갔다가 윤 아무개 씨를 처음 만나게 됐다. 윤 씨는 TV에도 여러 번 출연하고 신문 기사에도 이름을 올린 업계에서는 잘 알려진 부동산 전문가였다. 윤 씨의 작은 강의실에는 늘 빽빽하게 수강생이 몰려들었다. A 씨는 “그때 윤 씨가 ‘직접 매물 지역에 가서 땅의 기운을 느껴라’ 등의 강의 내용을 감명 깊게 들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라고 했다.
올해 초 A 씨는 오랜만에 생각이 나 윤 씨 이름을 검색했다. A 씨는 윤 씨 이름으로 된 유튜브 채널에 강연 영상이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영상에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연락 달라는 설명이 있었고 A 씨는 전화를 걸게 됐다. A 씨는 통화 과정에서 윤 씨에게 ‘연식이 오래된 1억 원 이하 빌라 등에 투자하라’는 권유를 받게 됐다. A 씨는 “윤 씨가 1억 원 이하 빌라의 경우 취득세가 굉장히 적다는 것을 특히 강조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윤 씨는 A 씨에게 “부평역, 인천시청 인근 부동산 2개를 확보해 주겠다. 투자금은 3000만 원이다. 가계약금 명목으로 지금 당장 송금하라”고 했다. 윤 씨는 아내 계좌번호를 보내줬고, A 씨는 두 채를 계약하기로 마음먹고 돈을 입금했다. A 씨는 직접 부동산을 방문해 1채를 계약하고 가계약금을 지불했고, 1채는 보류 중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문제는 취득세가 아니었다. 이미 1주택자였던 A 씨가 두 채를 보유하게 되는 경우 보유세 등 다른 세금 문제가 심각해지기 때문에 결국 포기하기로 했다.
A 씨는 1채 가계약금으로 낸 500만 원은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나머지 윤 씨에게 건넨 2500만 원은 돌려받고자 했다. 그런데 윤 씨는 A 씨에게 “먼저 계약한 곳에 다른 계약자를 구해, 가계약금 500만 원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윤 씨는 나머지 2500만 원에 대해서는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A 씨는 “계약금 500만 원을 찾아준 고마움에 나머지 돈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여유를 두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록 차일피일 반환을 미루기만 하자 A 씨도 참기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A 씨는 윤 씨에게 돈을 달라고 했지만, A 씨는 소액만 입금하고 다시 시간을 미루기를 반복했다. 기다리기 힘들었던 A 씨가 이상한 마음에 윤 씨 이름을 검색해 자세히 보자 그제야 윤 씨에게 피해를 당했다며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A 씨는 윤 씨 아내 통장으로 입금했던 것을 떠올려 윤 씨와 아내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압류 절차까지 밟게 됐다. 그러자 윤 씨는 돈 상당 부분을 돌려줬다. 다만 일부는 아직도 받지 못해 A 씨는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또 다른 피해자 B 씨는 남편이 윤 씨 유튜브 채널 애청자였다고 한다.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있던 남편이 B 씨에게 ‘윤 씨에게 연락해보라’고 권유하면서 연락이 닿게 된다. 지난 7월 B 씨는 윤 씨에게 연락했다. 윤 씨가 “어떤 영상 보고 연락했냐”고 물어 B 씨는 “성남 재개발 관련 영상 보고 연락했다”고 답했다고 한다.
B 씨는 “그러자 윤 씨는 ‘성남에 좋은 재건축 빌라가 있다’며 지금 당장 가계약금으로 500만 원을 입금하라고 했다. 내가 “실제로 보지도 않고 어떻게 계약금을 내냐”고 묻자 윤 씨는 ‘빌라 매물이 1개밖에 없으니 일단 가계약금을 내야 잡아 놓을 수 있다. 계약을 안 하면 돌려주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B 씨는 “유명 유튜버이자 부동산 업계에서 알려진 윤 씨가 설마 500만 원을 떼어먹을까 싶어 입금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B 씨가 직접 본 성남 빌라는 재건축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고 한다. 더군다나 윤 씨가 “유튜브를 보고 소개했으니 계약을 하면 저작권 명목으로 1000만 원을 줘야 한다”고 했고, B 씨는 “계약하고 싶지 않다. 다른 곳을 보여주든지 가계약금을 돌려달라”고 하자 윤 씨는 “더 보여줄 게 없다”며 떠났다. B 씨는 윤 씨에게 “500만 원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연락이 잘 닿지 않기 시작했다.
B 씨가 고소하겠다고 하자 그제야 윤 씨는 100만 원을 보내줬다. B 씨가 경찰서에 가봤지만, 윤 씨가 준 100만 원 때문에 사기죄 고소는 힘들다는 답을 들었다. 그때부터 B 씨는 돈을 받기 위해 가족 휴대전화까지 이용해 돈을 돌려 달라는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고 한다.
B 씨는 “약 한 달 동안 생각날 때마다 전화했다. 화가 나서 새벽에 깨면 또 전화했다. 그때마다 약 100만 원씩 줬다. ‘이렇게 피곤하게 사실 거냐’고 여러 차례 얘기해 500만 원을 무려 4차례에 걸쳐 겨우 받았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저 사람한테 내 돈 일부라도 줄 수 없다’고 생각해 계속 독촉을 했다”고 그때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B 씨도 검색을 하다 온라인에서 윤 씨 피해자가 넘쳐 나는 걸 알게 됐다. B 씨는 “내가 아는 피해자만 약 10명은 된다. 윤 씨 피해자 카페도 만들어졌다”며 “윤 씨는 처음엔 돈을 안 주다가 계속 달라는 요청이 오면 그때마다 조금씩 준다. 피해자가 달라고 하다 결국 지쳐 포기하는 500만 원, 적게는 100만 원이 그의 수익이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B 씨는 “많게는 수천만 원을 계약금 명목으로 보낸 피해자도 있었다. 이들도 일부를 받으면 결국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 같다. 피해자가 모인다면 이런 황당 사기를 뿌리 뽑기 위해서라도 소송에 참여하거나 도움을 주고 싶다”고 분노했다.
일요신문은 윤 씨 입장을 듣고자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닿지 않았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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