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인조 교포 사기도박단이 카지노에서 카드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89억 원을 챙겼다. 사진은 이들의 범행 무대였던 서울 광장동의 한 호텔 카지노. |
지난 4월 6일 서울 광진경찰서는 서울 광장동의 한 호텔 카지노에서 직원과 공모해 카드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사기 도박을 벌여 89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외국 영주권자 임 아무개 씨(아르헨티나․53) 등 4명을 구속하고 카지노 직원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일본으로 도주한 주범 김 아무개 씨(53)를 비롯한 나머지 일당 3명은 지명수배했다.
영화 같은 ‘8인조 교포 카지노 사기 도박단’의 범행을 추적해 봤다.
10년째 국내 카지노를 전전하며 도박을 일삼아 온 김 씨는 도박 자금이 점점 떨어져가자 자금 마련을 위해 그간 카지노에서 만난 교포들을 포섭해 사기도박을 계획했다. 필리핀, 미국, 아르헨티나, 캐나다 등 일당 8명 중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해외 영주권자들이었다. 이들은 사문서 위조, 상습도박, 폭력 등 전과도 화려했다.
국내에 거주하며 범행을 모의하던 김 씨 일당은 2009년 12월 서울 광장동의 한 호텔 카지노에 모였다. 이날은 김 씨 일당이 호텔 관리부장 이 아무개 씨(45)를 만나는 자리였다. 호텔 카지노의 VIP 고객이었던 김 씨는 자연스레 카지노 직원들과도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김 씨는 관리부장 이 씨에게서 “사기 도박을 도와 주는 대가로 1억 5000만 원을 주겠다”는 솔깃한 제안을 했다. 김 씨 일당은 완벽한 범행을 위해 추가로 관리부장 박 아무개 씨(54)와 카지노 CCTV 관리차장인 이 아무개 씨(43)까지 총 3명의 직원을 포섭했다. 관리차장 이 씨에게도 3억을 제안했다.
관리부장 2명과 CCTV를 담당하는 관리차장 포섭까지 모든 준비를 끝내고 2010년 1월 그들은 범행을 실천에 옮겼다. 이들이 사용한 사기 수법은 카드를 절취하여 카드순서를 조작(일명 ‘탄’ 제작)하는 것이었다. ‘탄’ 제작은 사기 도박의 일종으로 카드를 이용한 도박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도록 카드 순서를 미리 맞춰 놓는 것을 말한다. ‘바카라’ 게임의 경우 카드 순서를 알고 있으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이용했다.
일단 김 씨와 임 씨 등 일당은 관리부장 이 씨와 약속된 테이블에 앉아 소액 베팅으로 ‘바카라’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 중 주위의 시선이 분산된 틈을 타 일당 중 3명이 카드가 보관된 데스크를 가리면 관리부장 이 씨가 카드를 꺼내 임 씨(배달책)에게 넘겼다. 카드를 건네받은 임 씨는 카지노 밖에 자신들이 준비한 차량에 카드를 갔다 놓았다. 그 다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배 아무개 씨(45)가 차량에서 카드를 가지고 호텔로 올라가 미리 짜놓은 순서대로 카드순서를 조작하고 다시 차량에 갔다 놓으면 임 씨가 조작된 카드를 관리부장에게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CCTV 관리차장 이 씨는 관리실에서 이들의 범행을 카지노 직원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CCTV를 돌려놨다. 경찰조사 결과 범행 당시 카지노 직원들 회식으로 관리실에 직원이 많지 않아 관리차장 이 씨가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김 씨 일당은 게임을 하다 자신들의 조작된 카드가 나오면 1회에 3000만~8000만 원씩 거액을 베팅해 베팅금을 가로챘다. 경찰 조사에서 김 씨 일당은 2010년 1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총 4차례 카지노를 드나들며 위와 같은 수법으로 89억여 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 일당의 범행은 카드가 붙어 나온 점을 이상하게 생각한 다른 카지노 보안직원의 제보로 들통이 났다. 경찰은 CCTV 자료와 계좌거래 내역 등을 확인한 후 관련자들 중 임 씨 등 4명을 검거했다.
지난 4월 8일 사건을 담당한 서울 광진경찰서 박종권 팀장(수사과 지능팀)은 기자와 만나 “가짜 카지노 사기 사건은 있었지만 이번 사건처럼 실제 카지노를 상대로 내부 직원까지 공모한 사기도박 사건이 발생한 건 처음이다”며 “주범인 김 씨는 범행 후 바로 해외(일본)로 도주해 인터폴에 국제 공조수사를 요청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이훈철 인턴기자 boazhoon@ilyo.co.kr
카지노 둘러싼 별별 황당 사건
2009년 7월 카지노 업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올인>의 방송작가 최 아무개 씨(45)가 해외에서 카지노 도박을 벌이다 검찰에 적발됐다.
검찰에서 최 씨는 2006년 12월~2007년 4월 미국 라스베이거스 호텔 카지노에서 수회에 걸쳐 불법 ‘환치기’(해외에서 달러를 주고받고 국내에서 제3자에게 원화를 대신 지급하는 것) 수법으로 도박자금을 송금받아 8000만 원 상당의 도박을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2010년 5월에는 중국에 가짜 카지노를 차리고 ‘꽃뱀’을 동원해 여행객을 유인, 거액의 도박비를 뜯어낸 일당이 검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검찰조사 결과 최 씨 등은 2005년 5월부터 2008년 10월 중국 푸젠성 샤먼, 하이난도 하이커우, 산둥성 웨이하이에 있는 호텔 연회장을 빌려 중국 골프여행을 온 피해자들을 가짜 카지노로 유인해 바카라 게임판을 벌였다.
이들 일당들은 처음에는 돈을 잃는 것처럼 보이다가 판돈을 키워 거액을 가로채는 수법을 사용했다. 특히 도박판이 커지면 자신의 여권을 카지노에 맡기고 돈을 빌리는 것처럼 꾸며 피해자들도 여권을 맡기고 돈을 빌리도록 유도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이 빌린 돈마저 잃으면 가짜 카지노 직원을 통해 여권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위협한 뒤 대신 돈을 갚아주는 척하거나 인질로 남겠다고 거짓말을 해 돈을 송금받은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