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높은 지지율과 이재명발 차별화 충돌 가능성…송영길 자기 정치 나설 경우 갈등 불가피
권력 삼각 축 첫 방향타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의 관계 재설정이다. 이들은 민주정부 4기를 잇는 연결고리다. 하지만 여권발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은 이질적이다. 민주정부 1∼2기를 이어받은 문 대통령은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의 상징이다. 반면 이 후보는 비노(비노무현)·비문(비문재인)의 길을 걸었다. 이 후보는 비노계가 열린우리당을 깬 2007년 대선 때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캠프 비서실 수석부실장을 맡았었다. 당 내부에서도 문 대통령과 이 후보에 대해 “‘노무현·정동영’까진 아니더라도, ‘김대중(DJ)·노무현’ 관계와는 그 결이 다르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의 현 기류도 미묘하다. 문 대통령이 10월 10일 본선 링에 오른 이 후보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낸 지 이틀 만에 대장동 특혜 의혹에 대한 검·경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 여권은 다시 두 쪽으로 갈라졌다. 문 대통령은 10월 12일 “대장동 사건을 신속하고 철저히 수사해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규명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라”고 전격 지시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정치적 해석은 말아 달라”며 원칙론에 방점을 찍었다. 친문계 한 초선 의원도 “청와대가 (이재명 후보가 반대하는) 특검에 선을 그은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 후보 측 내부에선 “BH(청와대)가 힘을 실어준 게 아니겠냐”는 기대감도 엿보였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검·경의 철저한 수사 메시지가 ‘이 후보의 회동 요청→구체적 시기 조율’ 과정에서 나온 터라, 당 안팎에선 파장이 일었다. 한때 경선 불복을 시사했던 이낙연 전 대표 측에선 “청와대가 대장동 특혜 의혹이 정권 차원의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권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는 그간 대장동 특혜 의혹과 관련한 여러 제보를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제보를 판단한 결과, 자칫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으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 제1 과제가 민주정부 4기 출범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레임덕 없이 임기를 마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레임덕 없는 대선판’은 친문도 비문도 동의한 변수였다. 여권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 지지도가 40% 안팎인데, 당연히 레임덕 없는 대선”이라며 “이는 여권에 호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탄탄한 지지도가 되레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충돌 지점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87년 체제 이후 레임덕에 빠졌던 대통령들은 임기 말, 그 자리를 미래 권력에 자연스레 내줬다. 1992년 대선 땐 노태우 전 대통령 자리를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차지했다. 1997년 대선에선 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 전 의원이 YS를 대신했다. 2002년 대선 땐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숨통을 터줬다. 2012년 대선에선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뒤로 빠지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섰다.
문제는 역대급인 문 대통령 지지도의 반작용이다. 과거 대선 때마다 재연됐던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파열음 없는 자리 교체가 현 여권에선 불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년 남은 대선 과정에서 양측이 검·경 수사를 비롯해 대장동 특혜 의혹을 놓고 사사건건 부딪칠 수도 있어서다. 여당 인사들 사이에선 이미 “청와대가 대장동 특혜 의혹에 대한 민심이 심상치 않다고 느끼고 있다”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문 대통령이 검·경의 철저한 수사라는 직접 메시지를 냈을 당시에도 일부 참모들은 “경선 후폭풍이 가라앉지 않았다”며 만류했다고 한다. 공식 메시지를 내는 과정에서 일부 참모들은 격론을 펼쳤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문 대통령은 이를 강행했다.
‘이재명발 차별화’도 양측 관계의 변수다. 이 후보는 10월 10일 후보직 수락연설에서 민주당 정부 대신 ‘이재명 정부’라는 표현을 썼다. 문 대통령은 4년 전 대선 후보직 수락 연설에서 ‘민주당 정부’를 내세웠다. 양자의 대선 전략 차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후보 측에선 정권 재창출보다는 향후 ‘이재명 정부’를 통한 시대교체를 앞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 대통령 지지도가 탄탄하지만, 각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를 원하는 국민이 과반이라는 점이 시대교체 전략을 꺼내는 데 한몫했다. 실제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10월 1주 차(5∼7일 조사, 8일 공표,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결과에 따르면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에서 이 후보(25%)가 오차범위 내 가장 앞섰지만, 국민 과반(52%)은 정권교체를 원했다. ‘정권재창출을 원한다’는 비율은 35%에 그쳤다. ‘모름·응답거절’은 13%였다. 이 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도는 37%, 부정 평가는 54%로 각각 집계됐다.
이재명 캠프 인사들이 “정권 재창출 전략이 유효할지 미지수”라고 분석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앞서 이 후보는 대장동 특혜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서도 현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 후보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구속 수감 직후인 10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대장동 개발 참여 민간업자의 과도한 수익 원인으로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집값 폭등’을 꼽았다. 이 후보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해명 글은 5500여 자, 원고지 27페이지에 달하는 양이었다. 본선 직행 이틀을 앞둔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통해 중도 확장성에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이들 관계 재정립의 방향을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는 ‘양자(문재인·이재명) 회동’이 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과 이 후보의 회동 시기를 비롯해 회동 의제, 대장동 관련 추가 메시지 등은 양측의 시너지효과를 판가름할 중대 요소로 꼽힌다. 앞서 DJ는 대선 경선이 끝난 지 이틀 만(2002년 4월 27일)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MB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지 13일 만(2012년 9월 2일)에 단독 회동했다. 문 대통령이 이 후보 면전에서 대장동 특혜 의혹에 대한 검·경 수사를 재차 촉구할지도 관심사다. 문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여러 갈래로 해석할 수 있는 메시지를 또다시 던진다면, 양측은 소용돌이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여권 삼각 축의 변수다. 이재명 캠프는 경선 기간 ‘용광로 선대위’ 구성을 위한 밑그림을 그렸다. 이 후보 핵심 인사들이 주요직에서 물러나는 한이 있더라도 반이재명 전선에 섰던 인물을 기용한다는 게 용광로 선대위의 핵심이다. 당 한 관계자는 “이재명 선대위를 넘어서 민주당 중심의 선대위 진용을 갖출 것”이라며 “핵심 콘셉트는 포용과 개방”이라고 했다. 용광로 선대위 출범 시기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11월 5일) 직후가 될 전망이다. 이 후보는 11월 초를 선대위 출범의 데드라인으로 삼고 캠프 인선안을 송 대표와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송 대표가 상임 선대위원장을 맡되, 이낙연 전 대표를 비롯해 경선 경쟁자들이 동시에 합류하는 ‘원샷 선대위’ 방안이 ‘플랜 A’다.
하지만 이 후보 측과 송 대표 측이 용광로 선대위 인선안을 둘러싸고 ‘알력 다툼’을 벌일 수 있다. 대선 경선 직후엔 본선 후보 중심으로 전환하는 게 통상적이지만, 송 대표는 투톱 체제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9월 25일 “민주당 후보가 결정되면 남북·북미·한미 관계 등에 대해 상의해서 미국을 방문할 계획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당시에도 여당 일각에선 송 대표가 포스트 대선의 활동 공간 마련을 위해 자기 정치를 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특히 이 후보의 약점으로 꼽히는 외교·안보 분야가 송 대표의 최대 강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양측이 대선 기간 미묘한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 2017년 대선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대선 후보였던 문 대통령과 선대위 인선을 놓고 극한 갈등을 빚은 바 있다. 경선 기간 루비콘강을 건넜던 이낙연 전 대표가 원팀에 합류할지도 물음표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적당한 시기에 ‘후보 단독 체제’로 가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문 대통령 및 송 대표와 관계 재설정을 앞둔 이 후보가 진짜 시험대에 오른 것”이라고 전했다.
윤지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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