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 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1 재경대구경북인 신년교례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와 이상득 의원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청와대 정무라인 한 관계자는 “이 의원이 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박 전 대표와 강남의 한 호텔에서 보기로 했다’고 언질을 줬다고 한다. 그 이후 정무파트에서 관심을 갖고 지켜보라는 상부 지시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박 전 대표 측에서 최대한 비밀을 지켜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여의도가 아닌 강남으로 약속 장소를 잡은 것도 아마 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인 4월 18일 이 의원과 박 전 대표가 실제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한 특급호텔에서 만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두 사람은 배석자 없이 한 시간 반가량 주요 현안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정치권에선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직접 만난 이상 2012년 총선·대선과 같은 핵심 이슈들이 논의됐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4·27재보선이나 원내대표 경선(5월 2일) 등은 측근들 선에서 조율할 수 있는 문제다. 향후 있을 개각이나 논란이 되고 있는 과학비즈니스벨트 역시 마찬가지다. 차기 전당대회나 대선 등이 화제에 올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정가 일각에선 이 의원이 박 전 대표에게 대북특사를 제안했을 것이란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 의원과 박 전 대표 회동은 복수의 정보기관에 의해 ‘목격’되면서 외부로 알려지게 됐다. 정치권 반응은 뜨거웠다. 사실 최근 들어 SD라인과 친박의 핵심 인사들은 부쩍 교류를 늘리며 연대를 모색해왔다(<일요신문> 985호 보도). 이런 상황에서 양 진영 ‘수장’들의 만남이 사실이라면 한나라당의 새로운 권력구도가 탄생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 의원을 주축으로 하는 친이계 일부가 친박과 손을 잡을 경우 한나라당 최대 계파인 이재오 특임장관 세력을 능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보당국이 두 사람의 회동에 주목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회동을) 우리 쪽에서 단독으로 포착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들었다. 그만큼 둘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정치권 지형이 요동을 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라는 보고가 올라갔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의원과 박 전 대표 측은 회동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박 전 대표 대변인 격인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은 “박 전 대표가 개인적 친분이 있는 인사를 만나기 위해 갔었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 의원 역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가 그 호텔에 있는지도 몰랐다. 주호영 의원 등과 만났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우연히 같은 호텔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있었을 뿐 조우하지는 않았다는 게 양 진영의 설명이었다. 또한 이 의원은 박 전 대표보다 한 시간 늦게 와서 30분 일찍 호텔을 나섰는데, 박 전 대표와 만났다면 그렇게 했겠냐는 반문도 덧붙였다. 한나라당 대변인실에서는 “이 의원과 박 전 대표를 기다리고 있던 수행비서들이 서로 인사를 나눴는데 이것이 회동설로 와전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하여튼 (회동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선 이 의원과 박 전 대표 간 회동설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며 오히려 더 확산되고 있는 듯한 기류마저 엿보인다. 청와대를 포함한 여권 핵심부 인사들 역시 말을 아끼면서도 둘이 만났다는 뉘앙스를 내비치고 있다.
대선캠프 출신의 한 여권 고위관료는 “보도가 나간 후에야 알았다. 그만큼 은밀하게 진행됐던 것 같다. 이 의원이 워낙 강하게 아니라고 해 해프닝인 줄로만 알았는데 확인해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더라. 그 이상은 말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 역시 “함구령이 내렸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느냐’는 속담으로 대신하겠다”고 답했다. 이 의원과 박 전 대표 측근들 역시 비슷한 ‘고충’을 털어놓고 있다. ‘주군’들이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마당에 선뜻 속사정을 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 친박 의원실 인사는 “둘이 만났다는 것을 몰랐다. 다른 의원실에서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박 전 대표와 핵심 보좌진만이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 “자초지종을 수소문 해보니 여러 얘기가 있긴 하지만 박 전 대표가 아니라고 하니 따라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이번 회동이 성사됐다면 과연 이 의원과 박 전 대표가 무엇을 얻었는지 따져보는 이들도 눈에 띈다. 이 의원으로선 ‘미래권력’과의 ‘소통’을 통해 이 대통령 임기 후를 대비한 ‘안전판’을 마련했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차기 전당대회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최근 친이계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재오 장관계와의 파워게임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친박의 경우 비주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직 대통령의 지원 속에 대선을 치를 수 있다는 기대를 품을 법도 하다. 특히 신공항 백지화를 놓고 한때 박 전 대표와 이 대통령과의 갈등설이 불거지기도 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회동은 양측에 조성됐던 ‘화해 모드’를 더욱 공고하게 할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대세론이 확산되면 박 전 대표에게 자연스레 힘이 쏠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 의원 쪽이 더 절실할 것 같다. 이 의원이 박 전 대표에 구애를 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의원과 박 전 대표는 왜 회동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정치권에선 이 의원보다는 박 전 대표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을 것이란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009년 5월 이뤄진 이 대통령과의 비공개 회동이 알려졌을 때도 불쾌한 기색을 내비친 바 있다. 또한 차기에 가장 근접한 박 전 대표로서는 특정 세력과 손을 잡고 있다는 이미지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반면, 이 의원 측 내부에서는 회동을 굳이 숨길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공개돼도 손해 볼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치열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이재오 장관계를 향해 ‘세 과시’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