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13일 코엑스에서 열린 신재생에너지대전을 이재오 특임장관, 김황식 국무총리 등과 함께 참관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이재오 특임장관이 계속 정부에 남아 있으면 조만간 끈 떨어진 갓 신세가 될 것이다.”
최근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이재오 특임장관의 파워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 부쩍 나오고 있다. 계파 보스의 쇠락은 계보원들의 충성도에서 확인된다. 정치는 숫자놀음이라는 여의도 상식에 대입해보면 이 장관 세력의 축소를 감지해낼 수 있다. 이 장관이 올해 2월 초 개헌 정책의총을 소집했을 때만 해도 130여 명이 참석(친 이재오계 50여 명 상회), 실세 이 장관의 위상이 대단하다는 말들이 나왔다. 친이 친박 가리지 않고 골고루 참석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공천 때문에 이 장관에게 눈도장 찍으러 온 의원들도 상당수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렸다. 그런데 지난 4월 20일 이재오 장관이 직접 소집한 계파 모임엔 36명의 의원들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며칠 전 13일 북한산 모임에서도 32명만 참석했다. 70여 명의 계파원들 가운데 공천 등 이 장관의 직접 수혜를 입은 의원들을 제외하고 참석숫자는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왜 친 이재오계는 올해 초 개헌론 정국에서 반짝 결속력을 보여준 뒤 현재까지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먼저 몇 달 새 공천에 대한 의원들의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지난 1월 나경원 최고위원이 공천개혁위원장 자격으로 ‘나 홀로’ 개방형 공천을 외칠 때만 해도 콧방귀도 뀌지 않던 의원들이, 최근 들어 오픈프라이머리를 축으로 하는 공천개혁을 ‘당연한’ 당론으로 받아들이는, 급격한 변화의 조짐이 불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당 쇄신작업 가운데 당권 등도 있지만 공천도 총선을 준비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올해 초만 해도 나경원 최고위원의 개방형 공천을 두고 ‘너무 이상적이다’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재·보궐 선거 정국을 거치면서 위기론이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영남 중진 의원들도 ‘내년 총선에서 뭔가 새롭게 변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경우 참패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당 지지도가 떨어지면서 나 최고의 개방형 공천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의원들 분위기를 보면 개방형 공천이 대세인 것 같다. 누가 봐도 이렇게 빨리 한나라당이 개혁적인 공천안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의아해 한다. 그만큼 위기의식이 크다”라고 말했다.
내년 총선 공천이 개방형으로 전환될 경우 특정 계파의 보스가 개입할 여지는 현저히 줄어든다. 실제로 친이계의 한 핵심 의원도 “어느 누구도 내년 총선 공천을 좌지우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천=계파 결속력’이라는 등식이 지배하던 친 이재오계도 이런 변화의 바람 앞에 서 있다. 이재오 장관에 줄을 서더라도 공천 받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하는 상황이 조성되면서 자연히 계파 보스에 대한 충성도도 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계파 수장으로서의 이 장관 위상이 추락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 장관이 입각한 게 계파 쇠락의 주된 동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때 장막 뒤에서 2인자 소리를 들으며 잘나갔지만 특임장관을 맡은 뒤부터 ‘이명박 심부름꾼’으로 전락, 당내에서 그의 위상이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소장파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이재오의 정치적 가치는 당내 의견을 수용해서 청와대에 ‘당신들 변하라’고 요구할 때 가장 빛난다. 그런데 지금의 이 장관은 당의 입장을 청와대에 압박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청와대 의중만 전달하기 급급한 심부름꾼이 되고 있다. 이 장관이 내년 총선만 보고 정치를 할 거면 지금처럼 폼 나는 장관직만 적당히 수행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큰 꿈을 꾸는 그가 당-청 심부름꾼 역할에만 만족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사실 이 장관은 ‘특임’을 맡으면서 자파 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친 이재오 계의 쇠락은 개방형 공천 정국에 따른 이 장관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과 특임장관 재임 동안 자파의 결속을 제대로 견인해내지 못한 것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박 전 대표에게 ‘투항’도 할 수 없는 친 이재오계로서는 무조건 이재오 장관을 중심으로 단결해야 한다. “친이 50~60명 의원들이 똘똘 뭉쳐 분권형 개헌을 계속 주장하면서 독자 정치세력화해 살아남는 것이 친 이재오계의 목표”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그런데 개헌정국 조성은 이 장관이 당에 복귀할 때 그 파괴력이 커진다. 특임장관직은 당-청의 조정자 역할이라 강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친 이재오계는 그의 복귀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장관은 당 복귀설에 대해 “빨리 돌아갈 생각이 없다”라며 연막을 치고 있다. 이에 그의 측근들은 잔뜩 몸이 달아오른 상태다. 자칫 복귀시기를 놓쳐 ‘이-박-소 연합군’에 당 주도권을 완전히 뺏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재오 장관 사정을 잘 아는 앞서의 소장파 의원은 이에 대해 “이 장관의 여의도 복귀를 100% 확신한다”고 밝히면서 “실제로 이 장관 주변 여러 사람들로부터 ‘당으로 돌아오라는 요구가 최근 들어 굉장히 거세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장관은 당내에 특정 지지기반이 있으니 최고위원이나 당 대표에 연연하지 말고 당을 중심으로 청와대의 변화를 견인해내는 게 맞다. 최근 그가 말한 주류 역할론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당 밖에서 그런 요구를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내 느낌으로는 이른 시일 내에 당으로 복귀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 의원은 “이 장관이 빨리 복귀해 총선 패배론에 빠져 있는 당 분위기를 쇄신해야 할 ‘책임’이 있다”라고 주장한다. 이 장관이 잠재적 대권주자로서 총선에 긍정적 역할을 하지 않고 청와대와의 다리 역할에만 머무를 경우 향후의 대권 정국에서도 점차 배제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장관 측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실 이 장관이 주류 역할론을 주문하는 것도 최근 구심점이 없이 사분오열되는 당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특히 이 장관은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직접 뛰어 들어 해결하는 스타일인데, 중간에서 조정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답답해하는 측면도 있다. 언젠가는 이재오의 정치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지금은 그럴 시점이 아니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대권 쪽으로 점점 굳어져 가고 있는 이재오 장관의 ‘단꿈’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관계 때문에 딜레마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벌써 지난해 말부터 그의 당 복귀론이 흘러나왔다. 이 장관 측근들은 대권에 방점을 찍고 조직 구축과 세 확장을 위해 움직였다. 당 복귀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계속 지연되고 있다. 이재오의 자기정치가 이명박 대통령의 ‘대리정치’에 묶여 있는 셈이다. 집권 후반기를 맞은 이 대통령으로서는 박근혜 전 대표와 지난해 8월 비밀회동을 한 이후 그와의 ‘암묵적 연대’가 필수적이다. 이 장관이 당으로 복귀하면 ‘신사협정’이 깨질 가능성이 크다. 친박계에서 이 장관 복귀에 결사반대하는 것도 대권가도의 마지막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장관으로서는 시간이 별로 없다. 올해 초 개헌론에 시동을 걸 때만 해도 개헌정국을 타고 자연스럽게 대권주자로서 당에 복귀하는 시나리오를 그려볼 수 있었다. 그런데 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재보선 패배 위기론이 심화되면서 의원들의 ‘총선 포비아(공포)’가 극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내년 총선에선 120석도 건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위기감이 이 장관의 복귀시기를 앞당기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들어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박근혜든 이재오든 대권에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총선에 뛰어들어 당 승리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퍼져가고 있다.
이 장관의 당 복귀는 여권의 권력구도를 다시 한 번 요동치게 할 것이다. 특히 친 이재오계는 지난 2008년 총선 공천 때 ‘55인 회동’을 통해 이상득 의원의 출마를 저지하려다 불발에 그친 바 있다. 양측의 이런 구원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이어져 온다. 최근 이상득-이재오 비밀회동이 있었는데 일각에서는 양측의 화해 기류 움직임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친이계의 한 핵심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두 사람이 원내대표 경선 때문에 할 수 없이 만났다. 이상득 의원이 지난해에 김무성 현 대표에게 한 번 양보한 전력이 있는 이병석 의원을 강력 희망했으나, 이재오 장관도 안경률 의원 카드를 강하게 주장하다 타협이 불발된 것으로 안다. 앞으로 양측의 대립 강도가 더 세질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친 이재오계의 한 핵심 재선 의원은 기자에게 이상득 의원과 관련한 각종 의혹이나 비리 등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인 바 있다. 그는 “이상득 의원과 관련한 의혹만 해도 수십 가지가 된다고 들었다. 언젠가 한 번은 꼭 해결돼야 하는 문제 아니겠느냐. 이재오 장관을 내가 존경하는 것은 재산문제가 깨끗하고 비리에 연루되지 않는 청렴함 때문이다. 그와 비교해 이 의원은 사실 여부를 떠나 각종 의혹들이 너무 많이 퍼져 있다. 당의 쇄신을 위해서는 언젠가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친 이재오계의 분위기는 이 장관이 당으로 복귀할 경우 그의 쇄신 칼날이 어디로 향할지 가늠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이 장관이 쇄신의 한 포인트로 ‘형님 권력 청산’이라는 승부수를 ‘다시’ 던질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재오 장관의 대권도전 첫 포성도 터질 것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