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7 재보선에 출마한 손학규 후보가 개표방송을 지켜보다 환호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반면 손학규 대표가 분당 을에 직접 출마해 값진 승리를 일궈낸 민주당은 한껏 들뜬 분위기다. 원외여서 ‘소외’받던 손 대표에 대한 ‘대우’와 시각도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편 김해 을에서 이봉수 후보가 패한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대권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심의 바로미터 역할을 한 이번 재보선 결과는 여야 대권주자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침은 물론, 차기 대선구도에도 유의미한 변화를 주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큰 꿈을 꾸는 잠룡들에게 재보선의 결과가 미칠 파장은 무엇인지 몇 가지 포인트로 짚어보았다.
4·27 재보선 패배 이후 한나라당 분위기는 위기감을 넘어 패닉에 가까운 상황이다. 심지어 친이계 일각에서는 ‘재창당’이 거론될 만큼 총선과 차기 집권에 대한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거세다. 그동안 잠재워져 있던 계파 간 갈등이 재보선 이후 수면 위로 부상하며 향후 세력구도가 전면적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한나라당의 형태로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치르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며 참담한 심경을 내비쳤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나라당은 패했지만 선거에서 한 발 거리를 뒀던 박근혜 전 대표는 ‘비주류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국면을 맞았다. 지난 4월 28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유럽으로 떠난 박 전 대표는 재보선 결과에 대해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이번 선택은 한나라당 전체의 책임이며, 저도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정치권에서는 위기의 여당이 ‘기댈’ 수밖에 없는 박 전 대표의 주가가 오히려 상승할 것으로 내다보는 이들이 많다.
여의도의 한 정치컨설턴트는 “향후 여권의 정계개편 과정에서 박 전 대표의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는 더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친이 주자의 부상이 힘들다고 판단하고 있는 친이계는 유력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 지지파와 반대파로 나뉘게 될 수도 있다”며 “이 시기는 박 전 대표에게 대권 입지를 굳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나, (‘현재 권력’인 이명박 대통령과의 역학관계를 감안하면) 조심스럽게 맞아야 할 고비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재보선 이후 정국으로 여당의 무게중심이 흔들리고 있는 현재 상황은 정몽준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 오세훈 서울시장 등 박 전 대표 이외의 여권 잠룡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하기도 한다. 최근 김 지사와 오 시장이 미국 방문길에서 대권도전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정 전 대표 역시 재보선이 열린 다음날인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권주자도 당권을 가질 수 있도록 당헌·당규를 개정하자”는 이례적인 주장을 한 바 있다.
또한 이상득계와 갈등을 빚고 있는 이재오 특임장관 주변 일각에서는 김해 을에서 당선된 김태호 전 총리를 띄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여당 개편 과정에서 이들 차기 주자들과 박 전 대표의 새로운 관계설정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임기를 2년 가까이 남겨둔 상황에서 박 전 대표에게 급격히 힘이 쏠리는 것을 경계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이 박근혜 이외의 여권 주자들에게 어떻게 실리느냐에 따라 박 전 대표의 스탠스 역시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박 전 대표는 이번 재보선 선거전 후반기부터 ‘불개입 입장’을 밝히며 역풍을 피해갔으나, 내년 총선에서는 결코 뒷짐 지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만에 하나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패한다면 대선 승리를 기약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의 정치컨설턴트는 “한나라당 후보로 대선에 나가려 한다면, 내년 총선 과정은 박 전 대표에게 대권주자로서 마지막 시험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대선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 맞설 야권주자는 누가 될 것인가. 야권주자 중 지지율 1, 2위를 달리고 있는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와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이번 재보선에서 야권연대를 통해 손을 맞잡았지만, 그 결과는 손 대표의 완승으로 끝났다. 손 대표는 ‘사지’와 다름없던 분당 을에 직접 출마해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를 상대로 승리했다는 점에서 얻은 것이 매우 크다는 평가다. 이번 재보선을 통해 ‘자기를 희생하는 지도자’라는 명분과 함께 ‘경쟁력 있는 야권 주자’로 각인되는 실리도 챙겼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손 대표가 지난해 10월 민주당 전당대회에 당선되며 대권주자로 1차 고비를 넘겼다면, 이번 재보선은 대권가도의 분수령이 될 만한 중요한 길목이었다. 유시민 대표가 받은 타격이 큰 만큼 향후 손 대표의 야권 내 입지는 상대적으로 더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시민 대표는 사실상 직접 출마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김해 을에 ‘올인’했으나 결국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가 패하며 큰 외상을 입은 상황. 국민참여당 관계자는 “유 대표에 대한 당내 평가도 우호적이지 않다. 야권후보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보여준 다소 고집스런 면 때문에 유 대표를 친노계 갈등의 원인으로 지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원내 진입에 실패한 국민참여당의 입지도 좁아질 수밖에 없게 됐다. 앞서의 관계자는 “당 분위기가 침체된 것이 사실이다. 내년 총선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지 고민이다. 당의 정체성과 생명력에 대한 회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 대표 또한 당분간 일체의 대외활동을 접고, 자숙의 기간을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손학규 대표의 승리로 탄력을 받게 된 민주당 내에서는 벌써부터 국민참여당과의 합당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 역시 한 인터뷰에서 “민주당에서 주도적으로 통합하자고 제안하는 것보다는 참여당과 유 대표가 어떤 결단을 통해 통합의 길을 선택하면 참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양당의 합당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우호적 제안인 듯 보이지만 국민참여당이 먼저 ‘수그리고’ 들어오라는 뉘앙스로 들릴 수도 있다. 합당 논의가 시작된다면 손 대표와 유 대표는 다시 한 번 주도권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정치 전문가들은 “양당의 합당 과정은 사실상의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현재로선 손 대표가 유리한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대다수 정치전문가들은 “박근혜 전 대표와 손학규 대표가 대결하는 구도가 만들어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재보선에서 각각 ‘관망’과 ‘승부수’를 던지는 정반대 행보로 수익을 거둔 두 주자가 차기 대권구도에서 여야 유력주자로 맞붙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물론 대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 예상 못한 변수가 생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역동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변수가 유력주자의 당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있지만, 유력주자의 대결구도 자체를 크게 달라지게 하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박근혜 대 손학규’ 대결구도가 형성된다면 이들이 공략해야 할 대상은 어떤 층일까.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20~30%대에 이르는 부동층의 마음을 흡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부동층을 세분화해서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눈에 띈다. 각각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주요 지지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영남권과 호남권의 부동층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다는 점. 지난 4월 18일~22일 실시된 리얼미터의 정기조사 결과를 보면, 다른 지역이 대체적으로 10% 내외의 부동층을 가지고 있는 반면 ‘부산·울산·경남’은 15.6%, ‘전북’이 16.7%, ‘광주·전남’이 15.7%로 상대적으로 부동층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이전 조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은 무엇을 말해줄까. 한 여론조사전문가는 “이번 재보선에서도 여당의 강세지역으로 분류됐던 분당과 강원에서 한나라당이 패한 것은 더 이상 과거의 ‘텃밭’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남과 호남권에서도 각각 박근혜 전 대표와 손학규 대표에 대한 지지가 높지만 ‘절대적 지지’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다른 지역에 비해 부동층 비율이 높은 편이어서 자기 당의 텃밭이라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전통 지지지역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이라면 더 마음을 얻기 어려운 대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상대 진영에서 흔들 수 있는 여지도 크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