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발한 M&A를 통해 10년 만에 10대 기업으로 도약한 STX그룹과 강덕수 회장. |
STX그룹의 출발은 쌍용중공업이다. 지난 2000년 외환위기로 쌍용그룹이 해체되면서 쌍용중공업 사장이던 강덕수 회장이 20억 원을 투자해 쌍용중공업의 최대주주가 됐다. 강 회장은 사명을 STX로 변경했고 2001년 STX그룹이 정식 출범했다. 인수 당시, 쌍용양회 출신으로 1993년 쌍용중공업 사장까지 오른 강덕수 회장이 샐러리맨 출신이라는 점은 재계에서 큰 화제가 됐다.
아울러 강 회장의 자본이 그리 넉넉한 것도, 그리 규모가 큰 회사를 기반으로 삼은 것도 아니어서 STX가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강덕수 회장과 STX그룹은 이 같은 시장의 예상을 보기 좋게 꺾어버렸다.
강 회장은 쌍용중공업 최대주주가 된 이후 기업 인수·합병(M&A)을 활발히 진행했다. 2001년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 2002년 산단에너지(산업단지관리공단, 현 STX에너지), 2004년 범양상선(STX팬오션), 2007년 아커야즈(STX유럽) 등을 잇달아 인수한 것이다. 이러한 M&A는 오늘날 STX그룹을 일궈내는 데 큰 원동력이 됐다. 이를 계기로 강덕수 회장은 ‘M&A의 귀재’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STX의 성장은 누가 봐도 눈이 부실 정도다. 범양상선을 인수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고 때마침 조선·해운 호황과 맞물리면서 하루가 다르게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단기간에 너무 빨리 성장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보이지 않는 비호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STX의 기업 M&A는 2007년 세계 최대 크루즈선사인 노르웨이 아커야즈(현 STX유럽)를 인수할 때 정점을 이루었다. 당시 인수대금은 무려 1조 4000억 원. STX가 그 이전에 진행한 인수 작업과 비교해 그 규모와 인수대금의 차원이 달랐다.
워낙 M&A에 공격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서인지 STX는 M&A 시장에 매물이 나올 때마다 인수 후보로 자주 거론됐다. 인수전이 펼쳐질 때마다 STX 측도 ‘검토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여러 차례 흘렸다. 대표적인 예가 대우건설 대한조선 인수전 때다. 이들 인수전에서 STX는 ‘인수 검토 내지는 의향’을 밝혀오다 막판에 인수하지 않는 쪽으로 돌아섰다. STX는 또 현재 대한통운의 잠재적 인수 후보군에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 많은 자금을 어디서 끌어오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무리한 인수 작업 때문에 곧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얘기도 많았다.
STX가 M&A 시장이 열릴 때마다 단골 후보로 등장하는 까닭은 워낙 인수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도 있지만 ‘미래성장동력 부재’가 번번이 그룹 성장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조선·해운업 호황이 끝나고 심각한 불황이 닥치자 여기저기서 STX의 위기를 점치기 시작했다. 국내 조선업체들이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던 터라 더욱 그랬다. 게다가 조선·해운업 불황이 닥치기 직전 거액을 들여 인수한 아커야즈도 STX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이때부터 STX의 ‘재무건전성 악화’ ‘유동성 위기’와 관련된 말들이 금융가를 중심으로 분주하게 오갔다. 강덕수 회장도 스스로 “조선·해운 호황이 가까운 미래에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며 M&A에 대해 “지금은 있는 것을 잘 관리하고 키울 때”라는 말과 함께 재무건전성을 강조한 바 있다. STX의 한 직원은 “회사가 어렵다는 얘기는 몇 년 전부터 들어왔다”며 “지금도 어렵긴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지난 3월 28일에는 STX건설의 부도설이 퍼져 금융시장과 STX그룹 전체, 그리고 투자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LIG건설 등 건설업체의 연이은 부도로 재무구조 악화 등에 시달리던 STX건설이 악성 루머에 휩싸인 것이다. STX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강력 대응할 것”을 시사했다. 그동안 재무구조와 관련해 이런저런 억측에 시달려왔던 것을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사실 STX건설 부도설이 나돌던 날 STX그룹에 대해 정통한 인사들은 “건설 부도는 말도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이 같은 확신은 STX건설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강 회장은 두 딸에게 STX건설 지분을 25%씩 증여했다. 쉽게 말해 ‘강 회장의 자녀회사’로서 사안에 따라서는 ‘편법상속’에 휘말릴 수도 있다. 게다가 STX그룹은 이 ‘강 회장의 자녀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면서 매출 급증에 큰 역할을 했다. STX건설이 부도가 난다면 강 회장 자녀의 회사, 즉 향후 STX그룹의 경영권 승계, 재산증여, 지배구조의 핵이 될지 모르는 회사가 없어지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강 회장이 STX건설은 절대 부도나게 놔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STX그룹의 재무상태가 썩 좋지는 않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STX 내에서조차 인정하는 분위기다.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상황에서 워낙 많은 일을 벌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STX팬오션의 급격한 성장의 원동력도 다른 데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해운업계 한 고위 인사는 “STX를 바라볼 때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팬오션만 믿고 사업을 너무 많이 벌린 것”이라며 “팬오션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룹 전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무구조 악화설에 시달려온 것에 대해 STX 측은 “단기간에 크게 성장한 것이 수많은 억측을 낳게 하는 것 같다”며 “그동안 어려웠던 유럽과 중국 다롄 쪽 상황이 이제는 정상궤도에 올라섰기 때문에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강덕수 회장은 지난 4일 직접 137억여 원의 사재를 털어 STX건설을 지원하고 나섰다. 여기에는 비록 회사의 재무구조가 좋지 않기는 하지만 회장이 직접 나서서 이를 개선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와 표현이 담겨 있다. 그러나 문제는 STX건설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워낙 자생력 없이 큰 기업이라 각종 설에 휘말리는 것 같다”며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면서 “강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STX건설을 지원한 것도 한 예”라고 지적했다. 출범 10년을 맞은 STX그룹이 어떤 변화의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
임준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