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7 김해 을 보궐선거 야권 단일화 과정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와 친노그룹의 갈등이 더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친노그룹은 이미 ‘통합’ 이란 노무현 정신과 달리 ‘세분화’ 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김해 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야권후보단일화 협상에서 난항을 겪던 민주당-국민참여당의 ‘룰 싸움’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었다. 유시민 대표는 당초 야4당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와의 야권단일화협상을 거부해 한때 시민단체들은 ‘협상 결렬’을 선언하기도 했다. 유 대표는 시민사회단체의 ‘참여경선 50%, 여론조사 50%’ 중재안에 대해 조직, 선거인단 등에 대한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100% 여론조사’를 고집해왔다.
이에 문 이사장은 중재에 나서 민주당 곽진업 후보를 설득해 ‘100% 여론조사’ 방안을 받아들이게 했고, 그의 수용 기자회견에도 자리를 함께해 그간의 경과를 설명했다.
문 이사장은 “정치는 현실이니 그 속에서 서로 단일화의 유리한 조건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국민의 여망은 크고 서로 밀고 당기고 할 수 있는 시한이 있기 때문에 내가 나서 촉구해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봉하마을과) 미리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민주개혁진영이 다 같은 생각”이라며 “그 생각을 모아서 내가 대변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내가 한 번 그렇게 접근해 해결을 도모해보겠다는 뜻을 사전에 참여당 유 대표에게 말씀 드렸고, 유 대표도 단일화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니 그렇게라도 해서 단일화가 된다면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반겼다”고 밝혔다.
문 이사장은 “민주당과 참여당 두 후보 모두 다 아주 훌륭한 분들이고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말하기에 손색이 없는 분들”이라며 자신의 ‘지지’ 표명에 대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협상 막판까지 유 대표가 파국의 배수진을 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한 만큼 문 이사장의 중재는 ‘반(反) 유시민, 친(親) 민주당’의 정서가 바닥에 깔려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유 대표가 목전의 실익에만 집착한 채 야권 연대의 대의를 저버렸다는 비판이 타당했음을 문 이사장의 중재가 입증했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물론 민주당에서 강하게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당초 김해 을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해온 김경수 봉하마을 사무국장의 불출마도 유 대표의 ‘입박’에 따른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여기에 단일후보 선정 방식을 둘러싼 유 대표의 버티기에 문 이사장이 중재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데 대한 반감이 크다.
결국 ‘원내 1석’을 목표로 삼고 있는 유 대표가 김해 을의 선거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이 모든 타격을 떠안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늘고 있다. 백원우 홍영표 최인호 정재성 등 민주당 내 친노그룹은 성명을 통해 “더 이상 노 전 대통령의 정신과 가치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이번 김해 을 야권후보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유 대표는 ‘통합’이라는 노무현 정신을 이미 상실했다”며 “특히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시민단체의 제안도 거부해 그나마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시민단체들도 유 대표를 향해 비판적 발언을 해왔다”고 꼬집었다. 단순히 민주당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야권 세력에서 상당한 명분을 잃었다는 지적이다. 노 전 대통령의 계승자라는 유 대표의 적통성이 흔들거리고 있는 것이다.
친노그룹은 이미 참여당, 김두관 경남지사의 독자세력, 이해찬 전 총리의 시민그룹으로 세분화하고 있다. ‘리틀 노무현’으로 불리는 김두관 경남지사는 유 대표에 필적할 대권주자로 꼽힌다.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 출신의 김문수 경기지사가 내년 대선에 뛰어든다면 김두관 지사도 출마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제도권 밖에서는 이해찬 전 총리가 범친노 진영의 좌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전 총리는 친노그룹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다. 이 전 총리는 내년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통한 후보단일화를 역설하고 있다. 이 전 총리가 유 대표에게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위치인 셈이다. 이 전 총리는 ‘노무현 정신 계승’을 위해 만들어진 정치시민단체인 시민주권 상임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김형주 시민주권 사무총장은 “이 전 총리는 시민사회와 정당을 넘나드는 권위가 있는 분으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권연대 협상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 전 총리는 야권이 총선에서 승리해야 이를 발판으로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한명숙 전 총리도 민주당 최문순 강원지사 후보 선대위원장을 맡으며 본격 정치활동에 나섰다.
친노그룹의 이 같은 재분열은 역설적으로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의 승리가 계기가 됐다. 친노그룹 인사들은 지방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차차기(또는 차기) 대선주자로 부상했다. 지방선거에서 당선한 이광재(강원지사)·안희정(충남지사)·김두관(경남지사) 등이 이들이다. 한때 ‘폐족’으로 일컬어지며 정치권에서 외면 받았던 친노그룹이 화려하게 부활한 것. 친노그룹은 광역단체장뿐만 아니라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바람을 일으켰다. 김영배 성북구청장 등 수십 명이 당선된 것이다. 이들 가운데 이광재 지사는 ‘박연차 게이트’ 관련 대법원의 유죄판결로 지사직을 상실했다.
하지만 정치적 리더십을 인정받는 이들 친노 주자들이 당장 내년 대선후보군이 아닌 차차기(2017년) 대선후보군으로 분류되면서 이들은 내년 대선후보로 누구를 지원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됐다. 즉 이들은 차차기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 현재의 대선후보군과 연합할 수밖에 없었다. 안희정 지사는 민주당 대선후보 중 정세균 최고위원을, 이광재 전 지사는 손학규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그리고 무소속 김두관 지사는 독자세력을 확장하는 길을 택했다. 김 지사는 내년 대선과 2017년 대선 모두를 염두에 두고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제의 동지였던 유시민 대표와 친노 주자들이 견제와 경쟁의 상대가 된 셈이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