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시황 피크아웃에 공모주 시장도 불투명…SM상선 “적정 시점 상장 재추진”
#업황 호조 속 연기된 IPO
SM그룹 해운부문 계열사인 SM상선이 IPO 계획을 잠정 연기했다. 지난 11월 3일 SM상선은 “최종 공모가 확정을 위한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을 진행했지만, 최근 고전하고 있는 공모주 시장의 분위기와 피어 그룹 및 해운주의 주가 정체로 SM상선 공모주에 대한 시장의 가치평가가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잔여 일정을 취소하고 철회 신고서를 제출한다”고 공시했다.
글로벌 해운사들이 연일 사상 최대 수준의 수익을 올리고 회사의 주가 역시 상승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해운시황 피크아웃에 대한 우려와 공모주 시장 수요 감소, 국내외 증시 우려 등으로 인해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SM상선은 “당분간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시장을 면밀히 관찰해 공모시장 수요가 회복되는 적정 시점에 상장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SM상선은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려왔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이후 글로벌 해운 운임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다. 지난해 해운부문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8479억 원, 1206억 원이었다. 2017~2019년 적자 늪에 빠졌던 상황에서 극적인 반전을 이룬 셈이다. 올해 1분기에는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을 뛰어넘은 1322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매출 7076억 원, 영업이익 3090억 원을 기록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선진국 중심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경기가 회복됐고, 기저효과와 코로나19로 인한 홈코노미와 이커머스 성장으로 소비재 시장 활황을 맞이하면서 해상 물동량 또한 증가했다”며 “특히 올해 물동량은 컨테이너를 중심으로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10월 29일 박기훈 SM상선 대표는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2024년까지 미주 동안 노선을 신규 개설하고 운용 노선도 미주 5개, 아시아 13개로 총 18개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주력인 미주노선에 2024년까지 미 동부 최대 항만인 뉴욕·사바나·찰스턴 등을 기항하는 노선을 개설하고 신규 선박을 투입할 청사진을 제시했다.
서비스 네트워크 확장을 위한 추가 선박 확보와 환경규제에 대응하는 친환경 선박으로의 전환 계획도 밝혔다. 컨테이너 박스를 확보하기 위해 향후 3년간 약 2만 3000박스에 이르는 발주를 계획하고 있다. 다만 올해 상반기 기준 SM상선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3347억 원에 불과하다. 자금 조달을 위해서 IPO 재도전에 빠르게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내년엔 성공할 수 있을까?
SM상선 IPO가 내년에 성공할지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오현 SM그룹 회장이 구주매출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면서다. 이번 IPO 걸림돌로 작용한 티케이케미칼·삼라마이다스·삼라의 구주매출은 전체 공모주의 50%에 달했다. 희망공모가 최상단인 2만 5000원으로 가정하면 삼라마이다스는 2538억 원, 티케이케미칼은 338억 원, 삼라는 1354억 원을 챙기게 된다. 구주매출이란 기존 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 지분을 일반인에게 공개적으로 파는 것이다.
특히 SM상선 구주매출은 총수일가에게 대부분 돌아간다. 우오현 회장(74.01%)과 아들 우기원 전무(25.99%)는 삼라마이다스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우 회장(68.82%)과 우 전무 모친으로 알려진 김혜란 씨(12.31%)의 삼라 지분율은 81%를 넘는다. 나머지 지분은 삼라희망재단(18.87%)이 보유 중이다.
내년 업황 추이도 불투명하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2022년 국내 해운 매출액이 올해 대비 16.6%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SM상선의 주력 사업인 컨테이너 운임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1월 5일 항로의 운임을 종합한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전주 대비 31.36포인트 떨어진 4535.92포인트를 기록했다. 10월 8일 4647포인트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4주째 하락세를 보인 셈이다. 한 달 새 운임 지수는 2.4% 떨어졌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현재 컨테이너선의 높은 운임 수준은 코로나19 영향에 따른 비정상적 수준으로, 화주들이 정상적인 교역을 영위하며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 있다”며 “백신효과 등으로 항만 및 컨테이너 물류가 점차 정상을 되찾으면서 2022년 중 크게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엄경아 신영증권 연구원은 “해운동맹의 공급 조절에도 운임이 하락하는 등 컨테이너 운송시장의 성수기 마감이 빠를 것으로 보인다”며 “수기 마무리 시점인 2022년 1분기까지 두고 봐야 하는 국면”이라고 분석했다.
공모주 시장에 대한 수요도 감소하고 있다. 실제 지난 10월 수요예측을 진행한 13개 회사 중 4곳이 희망 공모가 하단 이하로 공모가를 확정했다. 기관투자자 수요예측 부진으로 SM상선뿐만 아니라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 넷마블네오까지 공모를 철회했다. 공모주 수익 하락 속 기관투자자들의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변동성이 심해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해운업이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위까지 해운사들을 압박 중이다. 지난 5월 공정위는 동남아시아 노선 담합을 이유로 최대 80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심사보고서를 국내외 선사 23곳에 보냈다. SM상선, 장금상선, 고려해운, 흥아해운 등 국내 선사 12곳이 물어야 할 과징금만 최대 5600억 원에 달한다. 이에 해운협회는 11월 3일 기자회견을 열고 “해운 운임 담합은 지난 40여 년간 해운법에 따라 허용됐다”며 “공정위가 과징금 부과 결정을 내리면 행정소송을 포함한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SM상선 관계자는 “당분간 내실 있는 경영을 통해 외부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해 적정 시점에 상장을 재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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