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대표와 이상득 의원이 지난 1월 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1 재경대구경북인 신년교례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날 참석자들은 점심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여러 차례 돌렸고,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했다는 후문이다. 한 SD계 의원은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정권 재창출 뜻이 담긴 ‘건배사’를 선창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양측은 어떠한 대화를 나눴을까. 당시 모임에 참석했던 한 친박 의원실 관계자는 “사적인 식사자리였을 뿐”이라면서도 “핫이슈인 4·27 재보선과 신공항 입지 문제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구체적인 결론은 내리지 못했지만 큰 틀에서 같이 보조를 맞추기로 공감대를 모았다”고 털어놨다. 특히 4월 재보선과 관련해서는 그날 이후 긴밀한 협조체제가 구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분당을 지역 공천을 노리고 있는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의 선거사무실 개소식(3월 13일)에 친박계인 이한구, 유승민, 서상기, 이철우 의원 등이 대거 참여한 것도 이 연장선상에서 풀이되고 있다. 이재오 장관 쪽이 정운찬 전 총리를 분당을 전략 후보로 ‘세게’ 밀고 있는 상황에서 친박계가 ‘형님 세력’이 후원하는 강 전 대표에게 힘을 실어줬다는 것이다.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는 박 전 대표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활동 역시 이 의원 측과 이미 상당한 ‘합의’가 이뤄졌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나라당 유치특위 고문을 맡고 있는 박 전 대표는 지난 3월 15일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특별위원회 발대식에 참석하기 위해 춘천을 방문한 바 있다. 박 전 대표는 3월 29일에도 강릉과 평창 등을 방문할 계획이다. 그동안 ‘선거 불개입’ 원칙을 천명해온 박 전 대표 측은 “올림픽 유치 활동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선 이를 곧이곧대로 보지 않는 분위기다. 더군다나 대부분 행사에 강원지사 후보자들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져 있어 박 전 대표의 강원 방문은 사실상 선거 지원이 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강원도를 왜 두 번이나 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간다고는 하지만 선거를 위해서 가는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한 친박 의원은 ‘엠바고’(비보도)를 전제로 기자들에게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박 전 대표가 자신의 ‘강원행’이 어떤 정치적 의미가 있는지 왜 모르겠느냐.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도 신중한 박 전 대표가 그러한 행보를 보인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4월 재보선을 앞두고 친박 측이 이러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정치권 관계자들은 박 전 대표와 이 의원 간 이해득실이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이재오 특임장관과의 역학관계에 주목해야 한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반 이재오’라는 깃발 앞에 박 전 대표와 이 의원이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국회 보좌관 출신인 최동길 정치컨설턴트는 “이상득 의원은 현재 이재오 장관과 치열한 파워게임을 벌이고 있다. 분당을 공천 신경전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장관에 비해 수에서 밀리는 이 의원으로선 60여 명에 달하는 친박계 수장 박 전 대표를 아군으로 만들면 전세를 역전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박 전 대표 역시 이재오 장관이 정운찬 전 총리를 키워 ‘박근혜 대항마’로 내세우려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 “결국 ‘이재오’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 이 의원과 박 전 대표가 ‘전략적 동거’에 들어간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 내에서도 최근 들어 ‘박근혜-이상득 조’를 여권 내 최상의 파트너로 꼽는 참모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이 의원이 박 전 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냈던 것도 이러한 청와대 기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선거의 여왕’ 박 전 대표의 재보선 참여를 이끌어낸 것에 대해서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 정무라인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과 이 의원이 가장 우려했던 것 중 하나는 재보선 패배로 인해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일정 역할을 해준다면 어느 정도 해볼 만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박 전 대표가 춘천을 다녀간 이후 오차 범위 내로 추격당했던 엄기영 전 MBC 사장이 다시 격차를 벌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의원 측과 ‘교감’을 나누기에 앞서 친박 내부 상황이 간단치만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전 대표 몇몇 측근들은 “여권 핵심부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며 이 의원 측 ‘동맹’ 요구를 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보단 득이 더 많다”는 목소리가 압도적이었고, 이를 박 전 대표가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선 박 전 대표와 이 의원 간 ‘밀월’이 큰 변수가 없는 한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동길 정치컨설턴트는 “사실 재보선은 여권 내 파워게임의 전초전 양상을 띠고 있다. 본 싸움은 차기 당 지도부 구성이 될 것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호석 정치연구소’의 윤호석 소장 역시 “재보선을 계기로 이 의원과 박 전 대표가 서로 가까워졌고 신뢰가 쌓였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면서 “이재오 장관계가 최대 계파이긴 하지만 ‘이상득-박근혜’를 합친 것에 비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윤 소장은 “이 의원과 박 전 대표가 힘을 합친다면 이재오 장관 설 자리는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한나라당 안팎에서 이재오 특임장관이 탈당해 수도권 신당을 만들 것이라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당내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상당수 친박 의원들은 적어도 당내 경선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이 의원과의 우호적 관계가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한다. 박 전 대표가 비록 부동의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긴 하지만 조직력 등에서 비주류의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주류이자 현 정권 최고 실세인 이 의원이 힘을 보태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한 친박 의원은 “현대차가 왜 기아차를 인수했는지 아느냐. 기아차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삼성이 가져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마찬가지로 이 의원이 만약 이 장관과 손을 잡으면 박 전 대표도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이 의원과의 관계 설정은 그런 측면에서 봐야 할 것”이라면서 “심정적으로도 2008년 공천학살의 장본인이었던 이 장관보다는 이 의원에 더 가깝다. 이 장관과는 절대 함께할 수 없다는 게 친박의 정서”라고 귀띔했다. 이 의원 측 역시 ‘속내’는 다르지만 박 전 대표와 계속 ‘한 배’를 타고 가기를 원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대선캠프 출신의 한 여권 고위 관료는 “정권을 재창출해야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형제’의 임기 후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이 의원과 박 전 대표 진영은 4월 재보선 이후의 당내 운영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3월 중순엔 양측의 핵심 관계자들이 여의도의 한 호텔에 모여 5월로 예정된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고 한다. 당초 이재오 계로 분류되는 안경률 의원의 무난한 승리가 점쳐졌지만 최근 ‘형님 라인’ 이병석 의원이 ‘다크호스’로 급부상한 것도 그 직후다. 한나라당 안팎에선 친박계가 이병석 의원을 지원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친박이 이 의원을 밀 경우 안경률 의원을 제칠 수 있을 것이란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 의원 주변에서도 “박 전 대표가 막후에서 도와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감지할 수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양측이 ‘원내대표 이병석, 대표 친박계 인사’ 체제로 대선과 총선을 치르기로 했다는 ‘빅딜설’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차기 총선과 대선이 1년 이상 남았지만 권력게임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