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전대에서 친이계는 원희룡 의원(왼쪽)을 친박계는 홍준표 의원을 지지할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
특히 전대 초반 ‘홍준표 대세론’이 급작스럽게 형성되면서 범 친이계는 복잡한 셈법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친박계를 업은 홍준표 손에 친이계는 다 죽는다”는 위기감이 퍼지면서 원희룡 의원을 대항마로 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홍 의원의 원내대표 시절 ‘도꼬다이 정치’에 데인 청와대도 홍준표 대세론에 개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친박 측도 친이계가 조직적으로 원 의원을 지원할 경우 적극 견제에 들어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혼탁한 계파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공개적으로는 화해무드를 이어가고 있지만, 전당대회를 두고 본격적인 실리 챙기기에 들어간 양상이다. 7·4 전당대회 뒤에 숨은 이명박-박근혜의 ‘대리전’을 추적해봤다.
한나라당 7·4 전당대회가 ‘이심’과 ‘박심’의 대리전 속으로 빠져들 조짐을 보이면서 진흙탕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회동을 거치면서 당내에는 “이번 전당대회가 ‘계파 간 대리전’이 된다면 공멸을 자초하게 된다. 자유투표에 따른 정책 경쟁의 장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이 대통령도 유력한 대권주자인 박 전 대표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광범위한 틀에서의 당·청 공조를 약속했고, 이번 전대에서도 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친이계의 조직적인 특정후보 지원을 최대한 자제하겠다고 약속했다는 후문이다. 사실 청와대는 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계파 갈등을 최소화해 당의 전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모멘텀으로 이번 전대를 기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청와대의 기류는 친 이재오계와는 온도차가 있다. 이번에 선출되는 지도부가 내년 총선 공천권 행사와 대선을 관리하는 막중한 역할을 하는 터라 이명박-박근혜 양측의 계파 전면전 자제라는 신사협정이 지켜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친 이재오계가 비주류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의 관계에 금이 갔기 때문에 이번 전대에서 순순히 청와대의 계파전 자제 뜻을 따라줄지도 의문이다. 더욱이 이 대통령은 단임제로 물러나지만 친 이재오계파는 계속 정치를 해나가야 한다. 그들의 정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될 지도부 선출에 무장해제당할 수는 없다. 당연히 계파 대리인으로부터 공천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친 이재오계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이번 선거는 지난해 전당대회처럼 조직적인 오더가 오고갈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하지만 넋 놓고 자유투표로 가서 당권이 완전히 넘어갈 경우 공천 불이익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여의도 생리상 친 이재오계가 했던 공천 장난 이상을 그대로 되돌려주려고 할 것이다. 생존 차원에서 반 친이세력의 지도부 입성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라고 말했다.
사실 청와대도 공개적으로는 ‘화합의 전대’를 부르짖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최근의 ‘황우여 좌충우돌’에 속만 태우고 있는 청와대가 이번 전대에 적극 개입해 리모트 컨트롤할 수 있는 지도부를 만들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당선 과정에서 소장파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일부 들어줘야만 하는 부채의식이 있다. 여기에다 이번 기회에 독자적인 정치를 해보려는 욕심에 조율되지 않는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추가감세 철회와 대학 등록금 지원방안 발표 등과 관련해 정부부처와는 전혀 협의가 안 됐고 청와대도 황 원내대표의 일방적 발표에 불쾌해했지만 공개적인 대응은 삼가고 있다. 김두우 홍보수석은 등록금 문제를 ‘고차원적인 방정식’에 비유하면서 “여당 대표 입장도 있고, 야당 대표와의 회담도 예정돼 있어서 풀어 나가기가 쉽지 않다”며 불편한 심기를 에둘러 나타냈다.
이렇게 친이계는 공천권 확보와 세력 유지를 위해, 청와대는 정책 조율 파트너를 확보하기 위해 이번 전당대회에 적극 개입할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그리고 양 진영의 이해관계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후보로 원희룡 의원이 떠오르고 있다. 당 안팎에선 ‘이상득 양아들’로 불리는 원 의원이 전대 몇 달 전부터 친이계 핵심의 당권도전 내락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청와대에서도 사무총장을 역임한 그가 누구보다도 청와대의 입장을 잘 이해해줄 것으로 보고 있다.
급기야 이런 분위기는 친이 핵심 ‘5인 회동설’로 터져 나왔다. 이재오 특임장관과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 안상수 전 대표, 김문수 경기지사 등 친이계 핵심들이 정몽준 전 대표와 최근 극비리에 회동을 하고 이번 전대에서 원희룡 전 사무총장을 밀기로 했다는 것이다. 물론 당사자들의 부인으로 유야무야됐지만 당내에서는 친이계 핵심의 전반적 분위기가 원 의원으로 ‘통일’되고 있다고 본다.
친이계의 한 핵심 의원은 이에 대해 “지난 원내대표 선거에서는 친이계가 분열돼 표 분산이 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초·재선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친이계 후보 옹립을 위한 의견수렴이 되고 있다. 국민들에게 변화된 한나라당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청와대·정부를 상대로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펼칠 수 있는 후보는 원희룡이다. 친이계가 무조건 원 의원을 미는 건 아니지만 그런 기류가 있다. 더구나 황우여 원내대표 취임 이후 소장파가 점령군처럼 당을 장악해 가는 것에 거부감이 많다. 그 위기감이 원 의원 지지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는 줄 세우기보다 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친이계의 또 다른 초선 의원도 “당 대표 출마 때 발표한 내용을 보면 친이계와 정책 면에서도 비슷하다. 친이계 의원 절반 이상이 원 총장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소장파 의원은 원 의원에 대해 “직전 지도부에 몸담아 재보선 패배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소장파에서 주류로 ‘투항’한 기회주의적 행보 때문에 전당대회에서 고전할 것이다. 특히 친이 색깔을 탈색해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당원들의 공감대가 확산될 경우 주류에 편입돼 기득권을 지키려는 원 의원의 이미지도 타격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 의원 측도 “‘친이계 꼬리표’가 친박계는 물론 쇄신파로부터도 표를 못 받게 하는 족쇄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대놓고 지원하지 말고 은밀하게 밀어 달라’는 사인인 셈이다.
이렇게 친이계가 원 의원을 당권주자로 밀어 넣을 움직임을 보이자 친박계도 긴장하고 있다. 사실 친박계는 유승민 의원을 유일한 친박 주자로 지도부에 입성시킬 계획이었다. 나머지 한 표를 두고 ‘박심’ 논란이 있었지만 서서히 당을 장악해가고 있는 박 전 대표로서는 무리하게 친박 주자를 늘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친박계의 한 핵심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유승민 의원으로 친박계의 지도부 입성 생색만 냈다가 공천 지분을 챙기지 못할 수 있다. 특히 친이계가 자유투표로 페인트모션을 쓰다가 비밀리에 원희룡 의원을 당권주자로 밀 경우 당 지도부는 완전히 친이계 일색이 될 수 있다. 더구나 현 지도부가 청와대의 컨트롤 반경을 벗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공천 영향력 행사를 위해서라도 친이계 핵심이 당권을 잡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원희룡 의원의 당권 접수를 막기 위해 나머지 한 표를 홍준표 의원에게 몰아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친박계 의원들이 홍 후보와 친박계 단일후보인 유승민 후보를 ‘러닝메이트’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는 박 전 대표와 홍 전 최고위원의 측근들이 회동, 모종의 ‘딜’을 했기 때문”이라는 추측까지 나와 양측의 연대설을 더 증폭시키고 있다.
민감한 사안인 만큼 박 전 대표가 직접 나서 강하게 부인해 빅딜설은 잠잠해졌지만, 양측의 연대설에 더욱 힘이 실리는 형국이다. 물론 이를 두고 일정한 자파세력이 없는 홍 의원이 강력한 우군을 확보하기 위해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친이계가 원희룡 의원을 집중 지원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친박 측도 대응책 차원에서 홍준표 의원 지원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일부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해 ‘홍준표 대세론’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원 의원의 당권 도전에 가장 강력한 태클을 걸 수 있는 인물이 바로 홍 의원이다. 그가 친이계와 청와대의 견제를 뚫고 친박 일부와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당수에 오른다면 여권 권력구도에도 만만찮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하지만 그가 높은 인지도를 등에 업고 초반 기선제압에 성공했지만 당내에 광범위하게 퍼진 ‘홍준표 불가론’을 과연 이겨낼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사실 홍준표 의원은 이번 전대의 최고참 정치인이다. 중량감이 있는 그가 ‘재수’에 나서자 “중학생 싸움에 재수생이 왜 나오느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동기’ 이재오 특임장관이나 김문수 경기도 지사의 경우 대권에 뜻을 두고 전대에 불참했는데, 홍 의원이 ‘당권이라도 차지하자’며 다시 출마하는 것이 격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평가는 초반에 선두를 달리고 있는 홍 의원을 깎아내리기 위해 ‘추격자 6인’이 퍼뜨리는 일종의 흑색선전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홍 의원이 당내에 광범위하게 퍼진 ‘불가론’을 넘어서지 못하면 친박계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일단 그는 친이계와 청와대의 대표적인 ‘비토’ 리스트에 올라 있다. 홍준표 특유의 독불장군식 정치 스타일 때문이다. 지난 2008~2009년 원내대표를 맡을 당시 그는 ‘위’와 조율되지 않은 언행을 남발해 박희태 전 대표와 청와대의 속을 어지간히 썩였다. 당시 박 전 대표는 “자, 이제 원내대표도 나갔으니 마음 놓고 토론해 봅시다”라는 농담을 던질 정도로 홍 의원의 하극상 행보에 스트레스를 받은 바 있다.
청와대도 그의 리더십을 못미더워하고 있다. 한마디로 통제 불능에다 전권을 맡기면 기대이하의 협상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 18대 국회 개원과 원 구성 협상, 쇠고기 국정조사특위 증인 채택 등의 협상에서 민주당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는 비판을 들었고, ‘1차 입법전쟁’에서 사실상의 참패를 당한 것 등을 생각하면 홍 의원의 리더십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홍 의원에 대한 친이계의 비토 분위기가 친박계 일각에서도 그대로 나오고 있다는 데 있다. 친이계의 불가론이 홍준표 대세론의 확장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 물론 친박계 서병수 허태열 김태환 이종혁 의원 등은 “박 전 대표를 야당의 공격에서 지켜줄 당 대표가 필요하다”며 홍 의원을 열성적으로 돕고 있긴 하다. 하지만 또 다른 친박 중진 의원은 이에 대해 “홍 의원이 공개적으로 박 전 대표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라며 적극적인 구애공세를 펴는 것 자체가 진정성이 결여되고 가식적으로 보인다. 독불장군식 정치를 해오는 데 익숙해 지금까지 이렇다 할 계파를 만들거나 소속된 적이 없는 그의 정치 스타일상 결정적인 순간에 박 전 대표를 치받고 올라서려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홍준표는 믿지 못 한다’는 일각의 평가를 불식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7·4 전당대회는 친이계가 원희룡 의원을 통해 비주류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을 만회하려 하고, 친박 측도 그 공세를 막기 위해 딱히 내키지는 않지만 홍준표 의원을 방패막이로 하는 친이-친박 계파전이 핵심 관전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계파 전면전은 ‘이명박-박근혜 애정전선’에 적신호가 될 전망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