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란다 “다음 시즌 열심히 준비해 두산 합류할 것”…이의리 “36년 만의 타이거즈 신인왕 약속 지켜”
미란다는 11월 29일 열린 2021 KBO 시상식에서 올 시즌을 빛낸 최고의 선수로 선정됐다. 한국야구기자회 소속 언론사와 각 지역 언론사 취재기자 115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920점 만점에 588점을 얻어 2위 이정후(키움 히어로즈·329점)를 제쳤다. 투표에 참여한 115명 중 절반이 넘는 59명이 미란다에게 1위 표를 던졌다. 이로써 미란다는 외국인으로는 3년 연속이자 역대 7번째 MVP에 올라 상금 1000만 원과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시상식에 불참한 미란다는 구단을 통해 "올해 최고의 선수에게 주는 MVP를 받게 돼 매우 영광이다. 기나긴 한 시즌 동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준비를 잘했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따라온 것 같다"며 "시즌 내내 함께한 포수 박세혁, 장승현, 최용제에게 감사하다. 든든한 수비로 뒤를 지켜준 야수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두산 동료들 덕에 내 야구 인생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소감을 전했다.
#종잡을 수 없는 투수에서 탈삼진 머신으로
미란다는 '미완의 대기'였다. 열여덟 살이던 2007년 쿠바리그에 데뷔해 2015년 5월 메이저리그(MLB)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계약했다. 시속 150km를 던지는 왼손 파이어볼러로 잠재력이 대단했다. 2016년 8월 트레이드로 그를 영입한 제리 디포토 시애틀 매리너스 단장은 "네 가지 구종을 구사하는 파워풀한 왼손 투수다. 빅리그에서 던질 준비가 됐다"고 극찬했다. 하지만 미란다의 MLB 커리어는 2018년 막을 내렸다. 고비마다 제구 난조에 발목이 잡힌 탓이다.
미란다는 2018년 7월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해 강팀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두 시즌을 뛰었다. 문제는 또 제구였다. 일본에서의 두 번째 시즌이던 2019년 86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볼넷 48개를 허용했다. 몸에 맞는 공 2개를 더하면 사사구와 탈삼진(58개) 비율이 1 대 1에 가까웠다. 첫해 1점대였던 평균자책점이 4점대까지 치솟았다.
일본에서도 기회를 잃은 미란다는 KBO리그보다 한 수 아래인 대만 프로야구로 갔다. 지난해 중신 브라더스에서 10승 8패, 평균자책점 3.80을 기록했다. 타고투저가 극심한 대만 리그에서 반등하긴 했지만, 제구 문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100이닝 이상 소화한 대만 투수 13명 중 볼넷 비율이 가장 높았다.
그런 그가 KBO리그에 온 건 행운에 가까웠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외국인 선수 수급에 난항을 겪던 구단들은 대만 리그까지 시장을 확대해 미란다를 체크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구단이 마지막 검토 단계에서 외면했다. 한 구단 외국인 스카우트는 "(미국이나 일본이 아닌) 대만에서 지난 시즌을 보낸 것도 부담이었지만, 더 큰 문제는 볼넷이었다"고 했다. 결국 미란다를 영입 후보에 올린 구단은 두산과 지방의 한 구단으로 압축됐고, 미란다는 '쿠바 출신 친구' 호세 페르난데스가 뛰고 있던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출발은 불안했다. 미란다는 개막 후 5월까지 종잡을 수 없는 투수였다. 9경기에 선발 등판해 5승 3패 평균자책점 3.25를 기록했는데 9이닝당 삼진이 12.99개로 리그 1위인 반면 볼넷도 9이닝당 5.89개로 많았다. 홀수 순번 경기와 짝수 순번 경기 결과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시즌 7번째 경기였던 5월 12일 키움전에서 6이닝 10탈삼진 1실점을 기록한 뒤 8번째 등판인 19일 KT 위즈를 상대로 4이닝 6실점하는 식이었다. 보다 못한 김태형 감독도 5월 말이 되자 "이렇게 기복 심한 투구를 계속 이어가면 (남은 시즌 동행 여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좋지 않은 패턴을 반복해선 곤란하다"고 옐로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란다는 그 후 확연히 달라졌다. 시즌 10번째 등판(6월 1일 NC 다이노스전 7이닝 3실점)부터 '짝수 징크스'를 깨고 연속 호투를 이어갔다. 오프시즌마다 호흡을 맞춘 트레이너 네스토 모레노가 5월 중순 입국해 자가격리를 마친 뒤 6월 초부터 그의 체력 관리를 도운 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심리적 안정을 찾고 투구 패턴에 변화를 주니 성적이 따라왔다. 6월 이후 선발 등판한 19경기에서 9승(2패)을 쓸어담았다. 투구 수가 많아져도 어떻게든 6이닝을 채우고, 크게 흔들려도 실점을 3점 이하로 최소화하면서 매 경기 견고한 투구를 했다. 5월 26일 한화 이글스전부터 10월 19일 삼성 라이온즈전까지 19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에 성공해 워윅 서폴드(전 한화)와 권명철(OB·두산의 전신)이 남긴 종전 17경기 연속 기록을 뛰어넘었다. 그는 "개막 초반에는 KBO리그 타자들에게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 야구에 맞는 투구 방식으로 수정한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털어놨다.
미란다는 그렇게 14승 5패 평균자책점 2.33라는 빼어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평균자책점과 탈삼진 타이틀을 차지했고, 퀄리티 스타트 공동 1위에 올랐다. 특히 삼진 225개를 잡아내 최동원(당시 롯데 자이언츠)이 1984년 세운 역대 한 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223개)을 37년 만에 갈아치웠다. 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미란다는 올 시즌 직구(60.7%)와 포크볼(25.5%) 구사 비율이 유독 높았다. 선발 투수로는 보기 드문 '투 피치' 유형의 투수였다. 하지만 '제구가 되는' 왼손 강속구 투수는 두 개의 구종으로 타자들을 무너트렸다. 올해 타격왕이자 MVP 투표 2위에 오른 이정후는 올해 가장 치기 어려웠던 공으로 미란다의 포크볼을 꼽기도 했다.
이제 관건은 미란다가 내년에도 두산에서 뛸 수 있느냐다. 미란다는 정규시즌 막바지 어깨 통증으로 이탈해 포스트시즌 대부분을 뛰지 못했다. 하지만 꾸준히 관리하고 재활한 덕에 한국시리즈 3차전 마운드에 올라 5이닝 6탈삼진 1실점으로 건재를 알렸다. 현재 "통증이 거의 사라졌고 어깨에 큰 문제도 없다"고 자신한 상태다. 두산은 내년 시즌 보류선수 명단에 미란다를 포함시켜 "2022년에도 함께하자"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미란다 역시 MVP 수상 후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겠다"며 "다음 시즌도 더 열심히 준비해서 기회가 된다면 두산에 합류할 것"이라고 가능성을 활짝 열었다.
#타이거즈의 새 역사를 열다
최우수 신인선수상(신인왕)은 KIA 타이거즈 선발 투수로 활약한 이의리(19)에게 돌아갔다. 이의리는 기자단 투표에서 총점 417점을 얻어 368점을 얻은 경쟁자 최준용(롯데 자이언츠)을 제쳤다. 총 득표에선 최준용이 이의리보다 1표 많은 100표를 획득했지만, 1위 표 61장을 받은 이의리가 1위 표 42장의 최준용을 총점에서 앞섰다. 이의리의 올해 성적은 4승 5패, 평균자책점 3.61. 19경기에서 총 94⅔이닝을 던졌다.
이의리는 데뷔와 동시에 KIA 선발진 한 자리를 꿰차면서 신인왕 레이스를 독주했다. 후반기엔 부상에 시달리면서 시즌 초반의 기세에 못 미쳤지만, 지난 8월 도쿄올림픽에서 쟁쟁한 선배들을 능가하는 배짱 있는 투구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김경문 야구대표팀 감독이 "한국 야구의 차세대 왼손 에이스"라고 공언했을 정도로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실제로 그는 올림픽에서 도미니카공화국과 녹아웃 스테이지 1라운드, 미국과 패자 준결승전에 차례로 선발 등판했다. 특유의 침착한 경기운영을 앞세워 두 경기 모두 5이닝을 채웠고, 올림픽 야구에 참가한 투수 중 탈삼진 1위(18개)에 오르기도 했다. 이의리가 롯데 필승 불펜의 주축으로 20홀드를 올린 최준용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비결이다. 2년 차인 최준용과 달리 이의리가 올해 입단한 '순수 고졸 신인'이라는 점도 플러스 점수를 받았다.
이의리의 수상은 KIA 구단에도 큰 의미가 있다. 이의리 전까지 KIA가 배출한 신인왕은 해태 시절이던 1985년 이순철(현 SBS 해설위원)이 마지막이었다. 해태는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많이 우승하고 정규시즌 MVP도 여러 명 배출한 '스타 군단'이었지만, 신인왕과는 좀처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이의리는 이후 36년 만이자 KIA로 팀 이름을 바꾼 후 처음으로 타이거즈 프랜차이즈가 배출한 신인왕에 올랐다.
이의리는 수상 후 "데뷔 첫 승을 따내고 나서 이순철 위원님에게 '타이거즈의 마지막 신인왕 기록을 깨 드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말을 실현하게 돼 기분이 좋다"며 활짝 웃었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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