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님은 먼 곳에’ 지난 11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친박의 지원사격을 받은 홍준표 의원이 새 대표로 선출됐다. 사진은 이날 참석한 박근혜 전 대표.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하지만 그 대세론의 이면에는 신성불가침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누구도 ‘지존’의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충언을 하고 싶은 참모들도 언로가 막혀 답답해한다. 박 전 대표와 전화통화 한 번 하는 것이 일종의 권력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주변 보좌진이 의원들의 전화를 골라 받는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문고리 권력’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점점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날선 여론과 멀어지는 것은 ‘재수생’ 이회창의 대세론을 빼닮았다. 특정 실세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박 전 대표와 대화도 나눌 수 없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경선 패배의 악몽이 재현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세론을 가로막는 박근혜 전 대표 측근들의 ‘소통 블로킹’ 막후를 심층 추적해봤다.
한때 전여옥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의 최측근이었다. 그를 두고 “전여옥은 박근혜와 매일 독대하는 유일한 당내 인사라고 한다. 전여옥이 박근혜의 문고리를 너무 꽉 쥐고 있지 않느냐”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그는 박 전 대표 주변을 꽁꽁 싸고돌았다(그는 2005년 당시 김무성 유승민 의원과 함께 박 전 대표의 ‘문고리 권력 3인방’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홀연히 박 전 대표 곁을 떠났다. 그는 떠나면서 “박 전 대표는 두터운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정치권에서는 현재도 여전히 강고한 인의 장막이 박 전 대표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대표 시절과 지금이 달라진 게 있다면 인의 장막 구성원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핵심 의원들이 일정과 외부인사 접견 등을 대부분 관리했다면, 지금은 보좌진의 역할이 더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학재 의원이 비서실장 격을 맡고 있지만 대부분 일정 조정 등에 국한돼 있다고 한다. 오히려 의원들이 보좌진을 통해 박 전 대표의 동선을 확인하고 전화연결을 부탁하는 식이라고 한다.
최근 기자가 만난 친박계 핵심인사 Q 씨는 이런 현상에 대해 강도 높은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한때 박 전 대표의 지근거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일부 보좌진의 ‘견제’(?)에 밀려났다고 주장한다. Q 씨는 이에 대해 “친박계 의원들이 ‘문고리 권력’을 가진 일부 보좌진의 눈치를 보거나, 잘 보이기 위해 줄을 서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언젠가는 박 전 대표에게 이런 왜곡된 소통 방식에 대해 강하게 얘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Q 씨가 주장하는 일부 보좌진의 소통 블로킹은 보기에 따라 피해의식을 느끼는 당사자들의 불만표출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박 전 대표와 측근들의 소통 시스템을 보면 꼭 그렇게만 볼 수도 없는 문제점이 숨어 있다. 여기에서 박 전 대표와 측근들의 소통방식을 잠깐 살펴보자. 아무리 친박계 측근 의원이라도 박 전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할 수는 없다고 한다. 보좌진을 통해야 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하면 박 전 대표가 ‘골라서’ 다시 전화를 해주는 식으로 연락을 취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고르는’ 과정에서 일부 보좌진이 ‘필터링’을 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의 Q 씨는 이에 대해 “일부 보좌진의 경우 의원들의 전화를 박 전 대표에게 연결해 주는 과정에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는 것 같다. 박 전 대표가 전화를 직접 받지 않고 보좌진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어느새 그 과정에서 필터링하는 힘이 생긴 것이다. 의원들도 불편하지만 드러내놓고 불만을 얘기하지 못한다. 자칫 말 잘못 했다가 박 전 대표와 전화연결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 바로 멀어지게 되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아랫사람 눈치를 보는 것 아니겠느냐. 현재 일부 핵심 보좌진과 친한 친박계 의원들이 몇 명 있다. 그들은 박 전 대표와의 소통도 비교적 쉽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의원들이 보좌진에게 줄을 서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소통방식이 집권을 앞둔 유력 대권주자의 제대로 된 측근 관리방법인지 묻고 싶다”라고 말했다.
친박계 주변에선 한때 박 전 대표의 핵심 측근이었던 한 인사가 밀려난 것이 보좌진의 ‘농간’ 때문이었다는 루머도 떠돌고 있다. 이 인사는 박 전 대표의 보좌진 가운데 도가 지나친 사람의 ‘전횡’을 그대로 넘기지 못하고 문제를 지적하다가 그에게 ‘찍혀’ 박 전 대표의 눈밖에도 났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Q씨는 이에 대해 “평소 강직한 성품인 그 핵심 측근 인사의 경우 보좌진의 군기반장이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오버를 하면 그 자리에서 잘못을 지적했기 때문에 보좌진 사이에서는 껄끄러운 사람이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보좌진이 그 핵심 인사의 좋지 않은 이야기만 골라서 얘기하다 보면 나쁜 이미지가 축적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밀려났다는 얘기도 있더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세론’이 점차 대세가 돼 가면서 그와의 만남 자체가 곧 권력이라는 이상한 등식이 성립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에게 조언과 걱정을 해주고 싶은 인사들이 줄을 섰지만 만남의 과정은 지난하다 못해 불가능하기까지 하다는 푸념도 들린다. 상당수 친박계 인사들이 공통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박 전 대표에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박 전 대표를 잘 아는 사람들도 그의 비서진이 인의 장막을 너무 두껍게 치고 있어 소통을 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고 불만을 쏟아낸다. 몇몇 친박 인사들은 “박 전 대표가 언젠가는 가까운 비서진 때문에 큰 타격을 받을 날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까지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친박 측에서는 “(박 전 대표와) 언제든 연락할 수 있다. 외부활동을 할 때는 수행비서를 통하고, 자택에선 유선전화로 연결돼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현재 박 전 대표를 만나려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그렇다고 모두 만날 수도 없다. 하루 이틀 그들과의 만남이 미뤄지거나 불가능해지면서 차츰 불만이 쌓여 이런 얘기들이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되도록 공개 채널을 통해 만남을 가지려고 한다. 그가 당 대표 시절부터 몸에 밴 공개행보의 습관이 지금까지 굳어진 것이다. 일부 보좌진이 (호불호에 따라) 전화를 연결시켜주지 않는다는 둥의 얘기도 몇 번 통화에 실패한 사람들이 흘리는 악성루머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친박계 주변에서는 ‘일부 보좌진과 핵심 의원들이 인의 장막을 형성해 박 전 대표와 국민들의 소통 자체를 차단하고 있다’며 계속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박 전 대표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대로 현 시스템이 유지되는 것은 그가 지금의 보좌진을 그만큼 신뢰한다는 의미가 된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부 보좌진이 문제가 있다고 말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은 그들을 보호하는 최측근 핵심그룹이 뒤에서 버티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그룹이 결국 박 전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는 ‘최후의 실세’들인 셈이다.
소장파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이회창 대세론이 2번이나 실패했던 것은 그를 둘러쌌던 핵심그룹이 자유로운 소통을 차단하면서 생긴 부작용 때문이었다. 지금 박 전 대표의 소통방식은 이회창 대선 후보 때보다 더 심한 편이다. 이렇게 소수의 측근 그룹이 박 전 대표와의 소통 시스템을 제한하게 되면 자칫 큰 실수로 이어질 수 있다. 좋은 예가 박 전 대표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달성군수 지원유세를 나갔지만 패배했던 사건이다. 당시 후보공천을 두고 박 전 대표는 지역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부 측근들의 조언에만 의존했다가 신뢰도를 크게 떨어뜨렸다. 이런 일이 총선·대선에서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느냐. 지금과 같은 소통 시스템이면 박 전 대표는 참모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실패할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두 번의 실수 ‘리플레이’
이회창 대세론은 두 번이나 실패로 끝났다. 당시 한나라당 선대위 간부였던 한 의원은 이회창 후보를 둘러싼 인의 장막이 결국 그를 실패자로 만들었다고 진단한다. 그는 이에 대해 “1997년 당시 이 후보 주변에는 김영일 박성범 백남치 변정일 서상목 하순봉 황우여 등 이른바 ‘7인방’이 인의 장막을 형성하고 이 후보의 모든 정보채널을 차단하고 있었다. 2002년에도 이 후보를 둘러싼 인의 장막은 걷히지 않았다. 인의 장막에서 밀려난 의원들은 이 후보를 떠나 놀고 있었다. 따로 노는 집안이 제대로 될 리가 있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박근혜 전 대표도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다는 말들이 많다. 일부 보좌진과 친박계 핵심 의원들 몇 명이 박 전 대표를 에워싸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성국 정치평론가는 이에 대해 “2008년 공천 학살을 거치고 살아남은 박 전 대표의 핵심 측근들은 굉장히 방어적이고 폐쇄적으로 변했다. 생존을 위해선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대세론이 굳어지고 있다. 기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몇몇 핵심 참모들의 폐쇄적 소통 방식으로 가서는 이회창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문제제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회창-박근혜, 두 전·현 대세론의 주인공을 둘러싼 인의 장막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회창 후보 보좌진은 실무적인 일정 조정 정도의 역할에 그쳤지만 박 전 대표의 경우 직접 소통 채널 등과 같은 핵심적인 역할도 하게 되면서 권력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에서 박 전 대표의 소통 시스템이 더 고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회창-박근혜의 대세론을 이끌고 있는 지지율에도 차이가 눈에 띈다. 박 전 대표의 경우 지난 2007년 대선 이후 3년 반 동안 평균 25~35% 지지율을 보이며 다른 후보들을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다. 하지만 한때 고건 전 총리가 40%, 이회창 후보가 50%를 넘는 고공행진을 했던 것에 비하면 지지율 자체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그리고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그리 튼튼하지 못하다는 분석도 있다. 여론조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근 몇몇 일간지의 대선후보 여론조사를 면밀히 분석해본 결과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층 이탈 가능성이 18% 정도 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탈이 예상되는 박 전 대표의 지지층 가운데 18%는 개혁성향이어서 보수-진보의 싸움으로 갈 경우 박 전 대표가 더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