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4년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의 사건 현장검증 모습. |
유 씨가 ‘사형수’ 신분으로 지낸 지도 벌써 7년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전무후무한 국내 살인의 역사를 쓴 유 씨는 여전히 뉴스메이커이며 그에 대한 악몽은 쉽게 지워질 것 같지 않다. 사회를 공분케 하는 강력범죄들이 발생할 때마다 많은 이들은 ‘유영철’을 떠올리고 있으며 그는 ‘사형존폐’ 논쟁의 핵심인물로 거론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유 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기자는 얼마 전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한 A 씨를 통해 그의 수감생활 및 근황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검거 후 한참이 지나도록 유 씨에 대한 뉴스는 끊이지 않았다. 유 씨의 가정환경부터 어린 시절, 고2 때 소년원 수감 이후 반복된 잦은 수감생활, 결혼생활과 이혼, 전 부인과 아들에 대한 얘기 등 그에 대한 모든 얘기가 뉴스거리로 부상했다. 또 조사 및 재판과정을 비롯해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도 화제가 됐다. 오죽하면 유 씨가 ‘언론플레이’를 즐긴다는 얘기까지 나돌 정도였다.
한동안 잠잠했던 그에 대한 소식이 들려온 것은 지난 4월 말이었다. 구치소 내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기사가 한참 후 단신으로 보도된 것이다. 그렇다면 꽤 오랫동안 언론과 접촉을 피해온 유 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걸까. 지난해 11월부터 최근 출소하기까지 유 씨와 유일하게 가까이 지냈다는 A 씨는 최근 기자와 만나 유 씨에게 있었던 일들과 그에게 전해들은 여러 가지 얘기들을 전해줬다.
A 씨에 따르면 유 씨는 여전히 구치소 내 요주의 인물이다. 유 씨는 구치소 관계자들과 심심찮게 갈등을 빚어왔으며 이로 인해 크고 작은 소동들이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중순에도 유 씨는 보안과장 순시에 불응해 조사수용을 당했다고 한다. 다른 수감자들과 달리 유 씨의 방은 CCTV가 장착되어 있어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24시간 감시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유 씨는 “카메라로 24시간 내내 감시하고 있으면서 그것도 모자라 순시를 오느냐. 왜 꼭 얼굴을 보려고 하냐. 생사만 확인하면 되지 않냐”고 소리를 치면서 홱 뒤돌아 앉았다는 것이다.
또 검방(수형자의 건강상태 및 신변 특이사항 등을 파악하는 검사) 당시 철사 같은 부정물품이 발견돼 30일간 징벌을 당하기도 했다. 징벌이 종료된 12월 중순 유 씨는 6년 동안 줄곧 생활하던 라인에서 다른 곳으로 전방조치됐다고 한다.
4월 초 유 씨는 또다시 소동을 일으켰다. 검방에 동행한 구치소 간부를 폭행하고 욕설이 섞인 폭언을 퍼부었던 것. A 씨는 평소 CCTV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이트하게 감시하는 등 구치소 측에 대한 내재된 불만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사건은 금세 다른 재소자들에게도 소문이 퍼졌고, 유 씨의 돌발행동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 이 사건으로 유 씨는 징벌이 끝난 지 얼마되지 않아 또다시 조사수용됐다고 한다. 당시 유 씨는 극도로 흥분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일단 진정실로 옮겨진 유 씨에게는 난동으로 인한 불상사를 막기 위해 혁수정이 채워지고 자해방지용 머리보호대까지 착용시켰다고 한다.
사실 유 씨의 난동 및 돌출행동은 검거 직후부터 있었다. 2004년 7월 긴급체포 직후 유 씨는 간질발작 연기로 도주를 시도했으며 거품을 물며 쓰러지는 식으로 조사를 거부하기도 했다. 또 “구치소를 옮겨 달라”며 사흘간 단식을 벌이기도 했다. 2004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2차 공판에서는 배석 중인 판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다음 재판에 나오지 않겠다고 했음에도 판사가 출석을 종용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법정에서 피해자 가족을 향해 달려들다 제지를 당한 적도 있다.
충격적인 것은 4월 난동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 씨가 자해소동까지 벌였다는 사실이다. A 씨는 4월 13일 유 씨가 화장실 유리창을 파손해 자해를 했다고 전했다. 기동대를 포함한 직원들이 출동했을 때 유 씨는 오른쪽 이마가 찢어져 피를 흘리고 있었고, 곧장 진정실로 끌려갔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전 구치소 내 화장실 유리창문은 실리콘과 나사를 이용해 고정됐다. 또 유 씨는 CCTV 외에도 경비교도대 직원으로부터 24시간 내내 감시를 당하게 됐으며 5월 초 또다시 전방조치가 이뤄졌다고 한다.
A 씨는 유 씨의 구체적인 감방생활에 대해서도 전했다. 유 씨는 주로 독방에서 만화를 보거나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일요신문>을 포함해 구치소 안에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신문이 있지만 한 스포츠 신문에 연재되는 만화를 무척 좋아해서 자비로 구독해 보고 있다고 한다. 독특한 내용의 성인 소설도 무척 좋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유 씨는 “내가 주문한 책이 왜 안 나오냐”며 직원과 종종 언쟁을 벌였는데 자신이 원하는 책이 구매가 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고 사책 담당자에게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책을 모두 반납해버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A 씨는 유 씨가 영치금으로 녹차만 구매한다고 전했다. 맹물을 마시지 못해 녹차를 물에 타서 마신다는 것이다. 다른 재소자들처럼 먹을 것을 구매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사형수가 호의호식하면 뭐하겠나. 나는 죄인인데…”라며 말끝을 흐린다고 한다. 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식사 때도 육식은 일절 하지 않는다고 한다.
A 씨에 따르면 유 씨는 사동 밖으로 일체 나가지 않는다. 접견에도 응하지 않으며 수감자들의 유일한 낙이라 할 수 있는 운동시간에도 방안에 남아있다. 수감 초기 키우던 물방개와 개구리의 먹이를 위해 운동시간에 벌레를 잡는 것을 보고 누군가 “당신은 유영철이니까 벌레도 잡지마”라고 하는 얘기를 들은 후 운동시간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A 씨는 유 씨가 이발과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길게 자라있으며 수척해진 모습이라고 전했다. “건강에 큰 문제는 없는 듯하지만 치질로 고생을 하고 있어 매번 뜨거운 물을 잔뜩 넣어줬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A 씨는 유 씨에게서 다정하고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다른 재소자들과는 일체 말을 섞지 않고 교류도 없었지만 ‘사형수’에 대한 편견 없이 싹싹하게 구는 A 씨에게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성장과정, 어머니와 동생 얘기를 비롯해 이런저런 얘기들을 들려줬다는 것이다. 유 씨는 일어를 잘하고 다방면에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어 A 씨를 놀라게 했는데 이따금 음담패설을 들려주는 등 입담도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A 씨에게 브랜드 티셔츠를 사주거나 선물받은 양말을 주기도 했는데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손수 오려 만든 카드까지 줬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토록 무서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고 A 씨는 전했다.
하지만 유 씨에게서는 삶에 대한 의욕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게 A 씨의 전언이다. A 씨는 “그는 부인과 아들 사진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내 존재를 알게 될 것이 가장 두렵다’고 했다. 또 ‘출소하면 고향인 고창 사진 좀 찍어 보내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4월 말 의무과에서 만났을 때 그는 ‘8월에 나간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이 말이 자꾸 신경이 쓰인다. 보통 사형수는 ‘죽어야만 담장을 벗어난다’고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유 씨는 언론에 대해 심한 반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사거리를 위해 자신을 철저히 이용한 언론의 습성을 언급하며 배신감과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 수감된 지 7년째를 맞이하지만 여전히 종교는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샘물교회로부터 매주 전도지가 오지만 유 씨는 받는 즉시 폐기했다고 한다.
교화위원들에 따르면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빨간 명찰’을 달고 3년 정도가 지나면 서서히 눈에서 독기가 빠진다고 한다. 또 종교에 귀의하고 참회의 시간을 보내는 등 ‘순한 양’으로 거듭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유 씨는 뜨거운 눈물을 쏟는 등 직접적인 참회의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A 씨에게는 “피해자들이 꿈에 나타난다”는 말을 가끔 했다고 한다.
어쩌면 구치소에서 그가 벌인 크고 작은 소동은 현재 그의 복잡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들과 고향을 언급한 그의 마음에도 작은 동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팬레터 받았을 뿐인데…
또 사소(청소 등을 담당하는 사동 도우미로 소지라고도 불림)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다가 적발돼 또다시 조사수용을 당했다는 것이다.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