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2010년 6월까지 조사된 국방부의 ‘성범죄 처벌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 2년 동안 군대 내·외에서 총 336건의 성범죄가 발생했다. 이 중 265건은 군인이 민간인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이고, 나머지 21%에 해당하는 71건은 군인들 간에 발생한 성범죄 사건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피해자들 대부분은 ‘병사’들로 전체의 84%에 달하는 60건이 이들을 상대로 성범죄가 발생했다.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의 상급자들로 최고 계급은 중령이고 가장 낮은 계급은 일병이었다. 이등병이 동급자를 상대로 또는 하급자가 상급자를 상대로 성범죄가 발생한 건수는 없었다. 군대는 상급자가 명령으로 성적 행동을 지시하더라도 하급자가 이에 반항하기가 쉽지 않다. 이는 반대로 상급 가해자가 하급자를 손쉽게 다룰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한마디로 ‘상명하복’의 수직적 구조인 군대 특성상 상급자가 지위를 이용해 하급자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지난 2010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해병 고위급 장교에 의한 병사 성폭행 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피해자 어머니가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면서 알려진 이 사건은 2010년 7월 9일 새벽에 발생했다.
해병 모 사단의 고위급 장교였던 A 대령은 군 휴양소에서 술을 먹고 부대 내 관사로 복귀하던 중 운전병인 피해자 이 아무개 상병(22)을 차량 뒷좌석으로 끌고 가 강제로 키스를 했다. 또 바지를 벗기고 성행위를 강요하는 등 강제추행을 저질렀다. 당시 이 상병은 그 사건의 충격으로 자살을 시도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등 피해가 심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간부에 의한 성범죄 사례는 이뿐 아니다. 2009년 4월 경기도 모 보병부대의 B 중사는 이 아무개 일병을 사무실과 집으로 불러 “포상휴가를 보내주겠다”며 강제로 구강성교를 하기도 했다.
또 강원도 모 부대의 C 하사는 2009년 3월부터 2010년 1월 사이에 친근감의 표현이라는 명목으로 소속 부대 병사 8명에 대해 성기를 만지는 등 강제추행을 저질렀다.
그렇다고 가해자가 모두 간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하는 병사들 간에 발생한 성범죄가 총 52건으로 간부에 의해 발생한 8건보다 더 많았다. 더군다나 병사들 사이의 성범죄는 생활관과 복도, 체육관 등 공개된 장소에서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실제로 올 2월에 제대한 예비역 육군 병장이라고 밝힌 D 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부대 내 가장 흔한 성추행 사례로 “생활관에서 귀를 깨문다든지 볼을 쓰다듬는 행위 등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 모 부대 소속 E 병장은 2009년 1월∼4월까지 “군기가 빠졌다”는 이유로 후임병 4명을 80여 차례에 걸쳐 지속적으로 폭행했다. 이 과정에서 후임병을 생활관 침대에 눕히고 성기에 치약을 바르거나 샴푸를 뿌려 거품을 내 손으로 만지는 등 성추행도 했다.
F 상병은 2010년 4∼5월 모 일병과 함께 밤 경계근무를 서던 중 성행위를 강요하다 거부하는 피해자 앞에서 자위행위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구강성교를 해주지 않으면 분대원들을 갈구겠다”며 협박까지 했다. 심지어 대검 손잡이에 피해자 성기를 끼우고 고무링을 감기도 했다.
군에서 군인 간에 발생한 성범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중요하다. 대부분의 성범죄가 동성 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게이’나 동성애자들 간의 문제로 치부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가 안게 된다.
군 복무시절 행정병으로 근무했다던 홍 아무개 씨(31)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군대에서는 남성 간에 이뤄지는 강간 사건을 ‘강간’이라고 하지 않고 ‘계간’이라고 해서 다루더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행 군 형법 92조에 ‘계간 기타 추행을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계간(鷄姦)’은 닭 계(鷄)자를 써서 동성애 행위를 닭에 비유해 폄하하는 말이다. 이는 군에서 군대 내 성범죄를 ‘성 군기 위반 사고’로 칭하며 ‘사건’이 아닌 단순한 ‘사고’로 처리하는 것처럼,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저지르는 성범죄를 단순히 동성애자들의 문제로 치부하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보통 이런 부대 내 성폭력이 ‘사건화’되기 위해서는 ‘소원수리함’을 통한 보고나 부대정밀진단 등 자체 설문조사를 통해 신고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될 경우 피해자는 제2차 피해를 당하거나 아예 피해사실을 말할 수 없게 된다. 이와 관련 인권위의 한 관계자는 “2004년에도 인권위에서 군 성범죄 실태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폐쇄적인 군 특성상 피해자의 인권이 보호되기가 쉽지 않았다.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보호 장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성 군기 위반 사고와 관련한 처벌을 강화하는 한편 전문 상담관을 확대 배치하고 고충처리를 활성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