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 등록말소·영업정지 거론에 화정 ‘철거 후 재건축’ 수천억 예측…타지역 일부 조합원 입찰 철회 요구도
지난 11일 광주 서구 화정동 화정 아이파크 신축 현장에서 39층짜리 건물 23∼38층 일부가 붕괴됐다. 당시 타설 작업 중이던 작업자 8명은 모두 대피했지만 그 아래에서 창호 등 공사에 투입된 작업자 5명은 실종됐고 1명은 숨졌다. 사고가 발생한 건물 시공사 현대산업개발은 불과 7개월 전인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재개발 구역 철거 과정에서 17명의 사상자를 냈다. 국민들의 질타가 쏟아졌고, 화정 아이파크 입주민들은 전면 철거 후 재시공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고 수습과 조사 과정에서 콘크리트 불량, 불법 재하도급 등 부실공사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법조계와 건설업계에서는 현대산업개발에 건설산업기본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혐의가 적용될 것이란 의견이 팽배하다.
특히 불법 재하도급 여부에 이목이 집중된다. 7개월 전 학동 철거 건물 붕괴 사고에서도 불법 재하도급이 확인된 바 있어서다. 경찰은 이번 사고 발생 전 현대산업개발과 계약한 업체 A 사가 아닌 콘크리트 펌프카 업체 B 사 직원 8명이 타설 작업한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타설은 건축시 구조물의 거푸집과 같은 빈 공간에 콘크리트를 부어 넣는 것을 말한다.
B 사는 A 사에 콘크리트 운반용 펌프카를 빌려주는 임대계약을 맺은 업체여서 타설을 할 수 없다. 타설은 골조 계약을 맺은 A 사가 직접 해야 한다. 콘크리트 운반에 이어 B 사가 타설까지 한 것이라면 ‘대리시공’이다. 이와 관련, 전재희 건설노조 노동안전실장은 “펌프카 업체는 인력을 투입할 수 없는데, 물량을 도급받아 타설했다”며 “하지만 국토교통부 적발건수도 적고 처벌이 약해 발주·설계·시공·감리자에게 안전관리 책임을 부여하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9조 제2항은 '수급인은 그가 도급받은 건설공사의 일부를 동일한 업종에 해당하는 건설업자에게 하도급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재하도급을 금지하는 것으로서 이를 위반할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다만 발주자가 공사품질이나 시공상 능률을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해 서면으로 승낙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고 돼 있어 여지는 있다.
건설업계에선 재하도급 계약이 만연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1차 하도급 업체는 단가를 낮추려고 2차 하도급 업체에 장비비와 인건비 등을 모두 포함해 ㎥당 계약(속칭 물량 떼기)을 한다. 2차 하도급 업체도 이익을 남기기 위해 일당 형태의 노동자를 고용한다. 이렇게 하면 4대 보험을 보장하지 않아도 돼 인건비 차액이 생긴다. 이는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 고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현대산업개발은 사고 초기 39층 콘크리트 타설 업체와 작업자 등이 A 사라고 주장했지만, 경찰 수사 후 입장을 바꿨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재하도급이나 고용관계 등이)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며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 투입도 확인을 못했다”고 말했다.
콘크리트 양생(타설 후 충분히 굳도록 콘크리트를 보호하는 작업) 불량과 관련해서도 현대산업개발 측은 처벌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노조 광주전남본부에서 공개한 사고 건물 콘크리트 타설 일지에 따르면 가을철(9~11월)에 타설된 25~34층 구간은 5~12일 간격으로 시공됐다. 겨울철에 시공된 고층부 35~38층 바닥의 콘크리트 양생 기간은 6~10일 정도인 것으로 드러났다.
겨울철엔 콘크리트가 잘 마르지 않아 양생을 위해 열풍 작업 등으로 굳히는 시간이 보통 10일 정도 소요된다. 지난 12일 현대산업개발 측은 “201동 타설은 사고 발생일 기준 12~18일 동안 충분한 양생 기간을 거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타설 일지를 보면 현장에선 이러한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혹한기 양생 기간이 충분하지 않자 하층부가 갱품(거푸집)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아래층들도 무너졌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69조는 건설공사 발주자 또는 시공사가 설계도에 따라 산정된 공사 기간을 단축해서는 안 되고,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위험한 공법을 사용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정해진 공법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도급인이 이를 위반하면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영하 3도 이하가 되면 콘크리트 타설을 할 수 없고 영상 4도 정도 되면 혼화제(콘크리트에 특정한 성능을 부여하는 데 쓰이는 첨가제)를 넣은 한중콘크리트(겨울용)를 사용해야 한다”며 “이번 붕괴 사고는 어떻게 품질 관리했는지, 정밀안전진단 결과를 철저히 조사해서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고로 현대산업개발이 진행 중인 모든 사업장의 공사는 중단됐다. 건설업계는 현대산업개발이 최근 수주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무산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붕괴 사고가 일어난 화정 아이파크를 전면 철거 후 재건축으로 진행하면 수천억 원대 추가 비용이 들 것이라고 업계는 예측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유형적 측면에서 보면 전체 철거 후 재시공으로 가닥이 잡힐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앞서 진행한 직접공사비는 모두 손실이 된다”며 “철거비도 상당할 텐데 화정 아이파크의 경우 고층 완성물에 철골구조물인 데다 안전진단을 받아가며 철거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더 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가장 큰 손실은 이미지 실추에 따른 향후 수주를 못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입주 예정자의 금전적 손실 및 실종자 수색 작업에 투입하는 지원 비용, 실종자 유족 보상금 등도 모두 현대산업개발이 부담해야 한다. 이번 사고로 영업에 직간접 피해를 받은 주변 상인들도 회사 측에 손실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경기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 재건축사업의 일부 조합원들은 시공사 입찰에 나선 현대산업개발에 입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수주전에 참여했거나 참여 의사를 밝힌 서울 성북구 돈암6구역, 동작구 노량진3구역 등의 여론도 현대산업개발에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의 주택 사업은 실적의 중심이다. 현대산업개발이 공시한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액은 2조 4360억 원이다. 이 가운데 주택부문(자체+외주) 매출은 1조 8490억 원으로 전체의 76%를 차지한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영업정지 여부와 처벌 결과가 나온 뒤 시장 신뢰 회복이 관건인데, 워낙 치명타를 입은 탓에 당분간 아이파크 브랜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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