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와 협력의지 강조하고 여성문제 더 무게…“지지율 반등 회의적”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대선가도에 복귀했다. 심 후보는 1월 17일 국회에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고 “결코 여기서 멈춰서지 않겠다”며 “다음 세대의 진보가 심상정과 함께한 진보정치 20년을 딛고 당당히 미래로 나갈 수 있도록 마지막 소임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날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숏컷’ 스타일로 나타나 심경의 변화를 외관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앞서 심 후보는 1월 12일 선대위에 “현 선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 시간 이후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숙고에 들어가겠다”고 통보한 뒤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돌연 잠적했다. 정의당도 긴급선대위회의를 열고 논의 끝에 주요 보직자들의 총사퇴를 결의했다. 선대위를 사실상 해체함과 동시에 당내 쇄신 방안 마련에 주력하겠다는 취지였다.
심 후보 칩거가 길어지면서 향후 행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후보 사퇴론까지 거론됐다. 하지만 심 후보는 16일 광주 화정동에 신축 중인 아이파크주상복합아파트 붕괴 사고 현장을 찾은 데 이어, 17일 국회 기자회견을 열면서 사퇴 가능성은 일단락됐다.
심 후보가 일정 중단에 들어간 것을 두고 정가에선 ‘지지율 쇼크’ 때문이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선대위 개편과 쇄신을 통해 지지율 반등을 이뤄낸 바 있다.
심 후보는 대선후보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최근 하락세를 보이며 3%대까지 떨어졌다. 이는 2017년 대선에서의 득표율 6.17%에 절반 수준이다. 특히 허경영 국가혁명당 후보보다도 낮은 지지도를 기록한 여론조사도 있었다. 정의당 내부에선 허경영 후보보다 지지율이 밀렸다는 결과에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좀처럼 오르지 않는 지지율에 심 후보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심 후보는 1월 12일 한국기자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제가 대안으로서 국민에게 아직 믿음을 드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답답하고 또 많은 고민이 된다”며 “곧 여러모로 성찰의 결과를 국민들에게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심상정 후보뿐만 아니라 정의당도 존재감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정의당 관계자는 “심 후보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원인은 복합적이고 입체적이다. 당내 인재가 많지 않다는 것과 지역기반이 부족한 점, 의제 설정 부재 등은 이전부터 지적 받아왔다”며 “이번 대선이 구도도 어렵고, 쟁점이 사라진 선거라는 특징도 있다. 정의당이 초점을 못 잡은 면도 있다. 그래서 심 후보가 방향전환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선거운동을 접고 깊은 고민을 한 것”이라고 전했다.
심 후보는 1월 17일 기자회견에서 “제대로 성찰하고 제대로 일어서겠다. 가치와 원칙을 더 선명하게 세우겠다”며 “시민과 폭 넓게 소통하고 더 솔직해지고 더 겸손해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할 세 가지 방향에 대해 △노동, 여성, 기후 위기 등 지워진 목소리를 대변 △정년 연장, 연금개혁 등 진보의 금기처럼 성역화된 의제 논의 △진영을 넘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회 공통의 가치 복원 등을 들었다.
하지만 심상정 후보의 대선일정 복귀와 선대위 쇄신이 효과를 거둘지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심 후보 말처럼 제대로 된 성찰을 통해 가치와 원칙의 방향성을 세웠는지 의구심마저 제기됐다.
심 후보는 1월 1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SK그룹 회장)을 만나 “제가 그동안 반대해온 것은 독점과 담합, 갑질 경제이자, 민주주의 밖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며 “헌법 규범의 토대 위라면 그 누구보다도 기업을 위해 협력할 의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업인 중에는 심상정이라는 정치인에 대해 반기업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서 심 후보는 자신의 대표 공약인 주4일 근무제, 산재 문제, ESG(환경·사회적 책무·지배구조 개선) 경영 등을 거론하긴 했지만, ‘친노동’을 내세우는 진보정당의 대선 후보가 대기업 총수를 만나 협력의지를 강조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여권의 한 전략통은 “정의당이 대기업 총수를 만남으로써 노동계·진보에 거부감을 느끼는 중도층에 다가가려는 전략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정의당의 기반은 노동계층이다. 단순 계산을 해도 대기업 총수와 노동자 중 어느 곳의 표가 더 많겠느냐. 오히려 기존 노동계 반발을 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여성 문제에 더 무게를 실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심 후보는 1월 18일 ‘기동성 있는 실무형 선거 대응 체계’로 전환하는 선대위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후보의 비서실장에 장혜영 의원을 추가 임명했다. 이로써 장 의원은 이은주 의원과 함께 비서실장 임무를 수행하게 됐다. 장 의원은 “2030 여성이 광범위하게 느끼고 있는 안전, 그리고 경제적 불안을 대변할 것”이라며 “정책의 대상에서 소외됐던 4050 여성의 삶, 그리고 이분들께서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기여해왔던 가치를 재조명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여권 전략통은 “편가르기의 옳고 그름에는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번 대선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는 젠더 갈등이다. 이대남(20대 남자)이 대선을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정의당이 지지율이 떨어지고 존재감이 사라진 것은 노동문제가 아닌 여성문제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선거운동 중단 전과 후의 선거 전략이 달라진 것 같지 않은데 지지율에 반등을 가져올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라고 꼬집었다.
실제 아직까지는 심 후보의 지지율에 큰 변동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1월 17일부터 19일까지 사흘간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를 보면, ‘대선후보 지지도’에서 심상정 후보는 전주와 같은 3%를 기록했다(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심 후보 지지율이 기울어진 운동장 탓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의당의 자체적 문제가 아니라, 현재 대선 지형이 진보진영에 불리하다. 정권교체 여론이 50%를 넘는다. 주관적 정치성향을 묻는 질문에도 ‘보수’라고 말한 응답자가 ‘진보’보다 5%포인트 정도 높게 나온다”며 “문재인 정권이 진보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에, 현 정권의 국정운영능력에 실망한 사람들은 진보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심 후보는 민주당보다 확실한 진보정당의 후보다. 그래서 불리한 조건인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신율 교수는 “심 후보가 단일화나 중도사퇴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2% 지지율로는 충격요법을 써도 크게 변하지 않고, 오를 방안이 딱히 없다”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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