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고양이>의 한 장면. |
개봉 일주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고지전>. 상영이 끝난 뒤 올라가는 엔딩크레딧을 보고 있으면 낯익은 이름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지난해 KBS 2TV ‘남격 합창단’으로 인기를 얻은 뮤지컬 감독 박칼린이 바로 그 주인공.
물론 <고지전>에서 박칼린의 모습을 볼 순 없다. 그는 <고지전>에서 남북 병사들이 교감하는 도구로 쓰이는 신세영의 노래 ‘전선야곡’을 가르치는 음악 선생님으로 이 영화에 참여했다. 장훈 감독은 “이 노래가 워낙 부르기 어려워서 박칼린을 초빙해 수업을 받게 했다”고 밝혔다. 이런 인연으로 박칼린에게 감사한다는 내용이 엔딩크레딧에 담긴 것이다.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고양이: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고양이)의 엔딩크레딧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의 이름이 나온다. 임순례 감독이 <고양이>의 연출부와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임 감독은 영화관계자로서 <고양이>에 참여한 것이 아니다. 사실 임 감독은 지난 2009년부터 사단법인 동물보호시민단체인 ‘카라’의 대표로 활동 중인데 관심 분야는 유기동물 보호. 그런데 <고양이>는 고양이가 영화의 주된 소재인 데다 유기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 제작진은 임 감독에게 ‘SOS’를 보냈고 임 감독의 전문적인 조언 덕에 별 문제없이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지난 2009년 3월 개봉된 배우 권상우 이보영 주연의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엔딩크레딧 마지막에 ‘고(故) 안재환 님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안재환이 세상을 등진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의 일이다.
안재환은 생전 <슬픔보다 더 슬픈이야기>의 시나리오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연출을 맡은 원태연 감독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왔다. 당시 원태연 감독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안재환을 기리기 위해 이름을 넣었다. 안재환은 이 영화에 흥미를 갖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지 못하고 떠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원태연 감독은 영화 촬영 도중 우연히 고인이 된 안재환과 마주하는 일도 있었다.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인 납골당 신은 경기도 소재의 한 납골당에서 진행됐다. 놀랍게도 이곳은 안재환의 납골함이 안치된 곳이었다. 원태연 감독은 “기막힌 우연이었다. 안재환의 납골함을 보고 나도 놀랐다. 그래서 영화 엔딩크레딧에 안재환의 이름을 올리기로 마음먹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08년 개봉된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의 관람을 마친 후에는 ‘고 지중현 무술감독께 이 영화를 바친다’는 한 줄이 스크린 가운데에 새겨진다. 지중현 무술감독은 2007년 9월 중국에서 이 영화를 촬영하던 도중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추석을 불과 이틀 앞둔 상황이었다. 당시 영화 홍보 관계자는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보도 시점을 늦춰 달라. 명절을 앞두고 아직 가족들에게 사망소식을 전하지도 못했다”고 울먹였다. 이 영화 시사회가 끝난 후에는 이 문구를 보며 눈시울을 붉힌 배우와 제작 관계자들도 적지 않았다.
영화가 끝난 후 엔딩크레딧을 지켜 본 관객들을 위한 또 하나의 보너스가 있다. 바로 히든(hidden) 영상. 상영 중 애매하게 마무리된 부분을 부연 설명하거나 속편을 예고하는 영상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얼마 전 국내 개봉됐던 <캐리비안의 해적4>는 잭 스패로우(조니 뎁 분)가 연인인 안젤리카(페넬로페 크루즈 분)를 외딴섬에 두고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과연 <캐리비안의 해적>은 5편이 만들어질까. 그 답은 10분 가까이 흐르는 엔딩크레딧을 보며 참고 견딘 관객만이 알 수 있다. 엔딩크레딧이 끝나면 외딴섬의 바닷가에 홀로 앉아있던 안젤리카의 앞으로 잭 스패로우의 형상을 본떠 만든 인형 하나가 떠내려 온다. 안젤리카가 이 인형을 집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마무리되는 히든 영상은 5편의 제작을 넌지시 알리고 있다.
히든 영상의 최고봉은 단연 마블코믹스의 히어로들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마블엔터테인먼트의 영화라 할 수 있다. 아이언맨, 헐크, 토르, 캡틴 아메리카 등 다수 히어로를 보유하고 있는 마블엔터테인먼트는 이들 히어로가 총출동하는 영화 <어벤져스>(2012년 개봉)를 만들기 위해 약 5년에 걸쳐 각 히어로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에 히든 영상을 삽입해왔다.
2008년 개봉된 <아이언맨>의 히든 영상에선 히어로를 관리하는 조직인 쉴드의 닉 퓨리 국장이 모습을 드러내 향후 히어로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이어서 개봉된 <인크레더블 헐크>에서는 헐크를 만든 썬더볼트 장군 앞에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등장했다. 또 하나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진 셈.
2010년 개봉된 <아이언맨2>의 히든 영상에서는 거대한 망치가 포착됐다. 이 망치는 올해 초 개봉된 영화 <토르:천둥의 신>의 주인공인 토르가 사용하는 무기인 묠니르였다. 얼마 전 개봉한 <퍼스트 어벤져>는 마블엔터테인먼트가 선보이는 궁극의 영화 <어벤저스>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캡틴 아메리카’ 스티븐은 적을 물리친 후 깊은 잠에 들었다가 2011년 미국 뉴욕에서 등장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향후 스티븐은 헐크, 아이언맨, 토르 등 히어로를 진두지휘하는 팀장이 된다.
<퍼스트 어벤져>를 수입배급한 CJ E&M 영화부문의 관계자는 “마블엔터테인먼트의 히든영상은 일반 관객들에게는 ‘보너스 트랙’에 불과하지만 마니아 관객들에게는 다음 영화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나도록 만드는 최고의 ‘미끼’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