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블레어 윗치>의 한 장면. |
인천시 연수동에 거주하는 대학생 이강현 씨(27). 그는 진정한 B급 호러영화 마니아다. 일반적인 심령물이나 스릴러의 섭렵은 물론, 일반 영화팬들이 소화하기 거북한 하위 장르영화도 즐겨본다.
그는 “요즘 같은 더운 날, 이색적인 호러영화 한 편은 괜찮은 피서가 된다. 특히 스트레스 받을 때는 유혈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고어무비가 당긴다. 다른 사람들이 욕할지 모르지만,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묘한 쾌감을 느낄 때도 있다. 일반적인 영화팬 대부분이 그 잔혹성 때문에 잘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국내에는 나와 같이 고어무비를 즐겨 보는 골수 호러 마니아층도 꽤 된다”라고 말했다.
이 씨가 즐겨본다는 고어무비는 호러영화의 대표적인 이색 하위 장르영화다. 고어(gore)라는 말 자체가 ‘피 범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어무비는 ‘다량의 피’가 시종일관 등장하며 ‘잘려나간 신체부위’ ‘천장의 피’ ‘장기 노출’ 등 현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잔인한 신체훼손을 감각적으로 표현해 사람들의 전율과 공포감을 극대화한다. 당연히 이 장르는 어느 사회에서든지 개봉할 때마다 숱한 화제를 뿌리며 논란의 불을 지피고 있다. 동양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강도 높은 연출 탓에 국내 영화시장에서는 극히 찾아보기 어려운 장르지만 골수 호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소리 소문 없이 공유되고 있는 장르다.
국내 최초의 본격 고어무비는 ‘2007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숱한 화제를 몰고 왔던 문제작 <도살자>다. 이 영화를 만든 호러전문 김진원 감독은 “고어무비 자체는 분명 사회적인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다만 고어무비도 등급은 있다. 단순히 극단적인 연출에만 신경을 쓴 작품은 고어무비 마니아들에게 하급으로 평가받는다. 포르노와 에로영화도 다르지 않나. 내러티브가 있고 새로운 시도가 있고 나름의 스토리 속에 분명한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 면에서 일반적인 영화팬들 사이에서도 많이 회자되는 <소우> 시리즈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대표적인 고어무비라 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2010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최고의 화제작이자 논쟁작으로 꼽힌 세르비아 작품 <세르비아 필름>은 화끈하게 고어무비에 도전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최신 고어무비다. 이 작품은 은퇴한 남성 포르노 스타가 큰돈의 유혹을 저버리지 못해 다시 포르노 영화를 찍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시종일관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각종 성행위는 물론 피의 향연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영화를 연출한 스르쟌 스파소예비치 감독은 자국의 포르노 산업에 대한 비판과 함께, 헤어 나오려 해도 나올 수 없는 세르비아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극적으로 표현했다.
물론 고어무비는 그 특유의 잔혹함 덕에 아무나 도전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다소 비위가 약한 독자들에게는 다른 장르를 추천한다. 보다 리얼한 공포감을 느끼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페이크 다큐 호러’ 장르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페이크 다큐 호러는 최근 호러 마니아들 사이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장르다. 말뜻에서 알 수 있듯, 이 장르는 연출된 상황을 실제 상황처럼 가공해 꾸며나가는 ‘페이크 다큐(가짜 다큐 혹은 날조 다큐)’ 기법을 활용해 가상의 공포상황을 실제 상황처럼 제작한 호러물을 말한다. 쉽게 말해 호러물계의 ‘리얼 버라이어티’쯤 되겠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지난 1999년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블레어 윗치>다. 세 명의 영화학도가 메릴랜드의 한 깊은 숲에 들어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차례로 사라지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세 명의 주인공은 사라지고 그들이 남겨놓은 필름만 1년 후에 발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블레어 윗치> 제작진은 개봉 당시 인터넷 마케팅 과정에서 작품을 ‘페이크 다큐’가 아닌 ‘리얼 다큐’로 소개하며 사람들을 속이는 기발한 수법을 썼다. 마냥 진짜인 줄만 알고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난생 처음 느껴보는 극도의 공포감을 경험했다. 배우들 역시 개략적인 대본에만 의지한 채 연기했다. 제작진들이 곳곳에 설치해 놓은 특수효과들을 배우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덕분에 배우들은 영화 속에서 정말 리얼한 공포감을 표출했다.
이 작품은 제작비가 불과 1500만 원밖에 안되는 B급 영화였는데 입소문을 타 결국 그 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할 만큼 대단한 화제를 모았다. 배급수익만 1억 달러를 올렸다.
김 감독은 “블레어 윗치와 같은 페이크 다큐 호러의 힘은 단연 리얼함에 있다. 이 장르가 갖고 있는 공포의 포인트는 고어무비의 잔혹함이나 심령물들의 신비감과는 전혀 다르다. 전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실제라는 가정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조마조마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블레어 윗치> 외에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한 <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와 같은 작품이 페이크 다큐 호러물 중에서는 수준급으로 꼽힌다. 심한 자극보다는 마음을 ‘쥐었다 놨다’하는 묘한 공포감을 경험하고 싶다면 한 번쯤 접해볼 만한 이색 호러장르다.
또한 적절한 공포감과 함께 웃음도 놓칠 수 없다면 ‘스플래터 무비’를 적극 추천한다. 스플래터(Splatter)란 본래 ‘튀기다’ ‘철벅철벅 소리를 내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단어다. 스플래터 무비는 사방에 피가 튀기는 영화란 뜻이다. 고어무비와 비슷하지만 그 표현 정도가 약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피식 웃게 하는 특유의 ‘유머코드’가 적절하게 섞여있다.
최근 ‘스플래터 무비’의 중심은 일본이다. 특히 국내에도 많은 골수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이구치 노보루 감독과 특수효과 전문집단인 ‘니시무라 공작소’의 작품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장르에서 근래 들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은 노보루 감독의 2007년도 작 <머신걸>이다. 영화 <머신걸>은 피투성이로 살해당한 여동생의 복수를 위해 나선 주인공 소녀의 액션 활극을 감각적으로 그렸다. 영화는 여주인공이 닌자와 야쿠자들에게 한 쪽 팔을 잃고 기관총을 신체와 결합해 전투에 나선다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설정으로 되어 있다. 시종일관 잔혹한 공포감과 더불어 배꼽 잡는 유머가 가득하다.
김 감독은 “일본의 스플래터 무비는 본래 미국자본의 투자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북미시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던 것. 그만큼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일본의 하위 장르적 이미지, 즉 포르노적 요소와 만화 같은 과잉 상상력이 가득 차 있다. 매우 특이한 호러물이다”라고 평했다.
혹자들은 이러한 호러무비들을 일컬어 마이너 장르로 폄하하거나 B급 영화라는 낙인을 찍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호러 마니아들은 말한다. “이것 저것 따지지 말라. 그저 네가 갖고 있는 세포의 전율을 느껴라.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라고.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입 벌린 상어 덮칠 땐 으~악
지난 2009년 최초의 3D 호러무비인 <블러디 발렌타인>을 시작으로 올해 어중간한 블록버스터급 호러무비는 3D 기술로 제작됐다. 국내에도 많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의 다섯 번째 시리즈가 곧 3D로 개봉한다. 특별한 스토리보다는 시각적 연출에 초점을 맞춘 작품의 특성상 그 리얼함이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또 호러장르하면 빠질 수 없는 괴수물도 3D로 개봉한다. 이미 지난해 <피라냐>라는 3D 괴수물이 영화팬을 찾은 바 있었다. 올해 9월에 개봉을 앞둔 <샤크 나이트 3D>는 괴수물의 단골손님인 상어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시커먼 바다 밑에서 펼쳐지는 상어와의 사투가 3D 기술로 리얼하게 그려진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