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처럼 원유나 농산물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 환율은 물가와 가장 밀접하다. |
그런데 8월 들어 미국 경제가 난리 나면서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원화로 달러를 바꾸려는 수요가 늘면서 반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화 평가절하다. 1달러에 1050원씩 쳐줬는데, 이젠 1060원 넘게 값을 매겨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이 같은 환율의 움직임은 국내의 달러 및 원화 수요에 의해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변수는 글로벌 경제에 있다. 양대 기축통화인 달러와 유로화 움직임에 따라 출렁이고, 최근 들어서는 일본 엔화와 심지어 중국 위안화의 변화에까지 영향 받는다.
원화강세의 가장 큰 원인은 사실 미국 달러화의 가치하락이다. 미국 달러화가 국제시장에서 가치가 떨어지면 원화가치는 상대적으로 올라간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치유하기 위해 미국이 막대한 양의 달러를 풀게 되고, 이 덕분에 한때 1500원을 넘었던 원·달러 환율은 1050원대까지 떨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화두는 미국의 긴축이다. 금리를 올리는 긴축이 아니라, 국가 재정에 ‘펑크’가 나면서 더 이상 돈을 풀기는커녕, 풀어놓은 돈을 거둬들여 빚을 갚아야 할 처지가 됐다는 뜻이다. 달러를 회수한다는 것은 달러화가 줄어든다는 것으로 가치상승, 즉 달러강세를 시사한다. 달러가 강세면 원화는 약세다.
여기까지만 해도 그나마 쉽다. 그런데 유로화나 일본 엔화가 끼어들면 점점 더 복잡해진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유로화는 달러의 대체자산이다. 따라서 달러가 약하면 유로화는 강하고, 달러가 강하면 유로화가 약한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요즘은 유로도 헐값이다. 남유럽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시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최근 몇 년 새 가장 강한 통화는 달러와 유로의 동시보완재인 일본 엔화다. 일본 경제라고 어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나 유럽보다는 낫다. 재정적자는 심하지만, 빚 대부분을 국내에서 국민들에게 조달한 것이라 부도위험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달러 약세와 유로 약세 속에서 원화강세가 나타나더라도, 일본 엔화의 강세가 더 가파르게 진행된 것이다. 엔화강세는 우리나라 수출에는 도움이 된다. 해외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싼 통화를 가진 국가에서 만든 제품이 더 높은 가격 경쟁력을 갖기 때문이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이 늘어 달러유입이 늘게 되고 이는 다시 환율하락으로 이어진다. 환율이 갖는 자연스런 국제수지 균형의 기능이다.
환율이 실생활에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역시 물가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원유나 농산물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 환율은 물가와 가장 밀접하다. 일단 달러강세, 즉 원화약세 상황에서는 물가가 오르는 효과가 있다. 1배럴당 원유값이 100달러 그대로 유지돼도 원·달러 환율이 900원에서 1000원으로 오르면 원화로 환산한 1배럴의 값은 9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상승한다. 지난 2008년 환율이 1500원을 넘었을 때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 원화강세가 좋은 것일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원화가 강해지면 해외에서 팔리는 우리나라 상품의 값이 올라간다. 수출에 불리해진다는 뜻이다. 원화강세 추세가 되면 기업들이 채산성이 떨어진다며 ‘몽니’를 부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너무 강해도, 너무 약해도 안 되는 게 환율이다.
환율제도는 고정과 변동 두 가지다. 고정은 외화와 자국 통화의 교환가치를 국가가 정하는 방식이다. 외화 유출입에 따른 환율의 급변동으로 인한 경제의 출렁임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제도는 교환가치가 웬만큼 적정할 때에만 통한다. 적정가치를 크게 벗어나면 1997년 외환위기 같은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달러가 800원일 때 100만 달러를 빌려왔는데, 1년 후 실제 교환가치는 약 1000원쯤으로 올랐지만, 환율은 그대로 800원이라면 빌려온 사람은 2억 원의 이득을 본다. 100만 달러를 갚기 위해 달러를 바꿀 때 실질적으로는 10억 원이 들어야 하지만 8억 원만 들기 때문이다. 손해는 정부의 외환보유액이 본다. 외환위기 전 국내 대기업들은 이를 이용해 달러 빚을 가져다 썼다.
이렇게 되면 국내에 투자한 외국인 입장에서는 불안해진다. 국내 대기업들이 외환보유액을 털어먹어버리면 투자금과 이익을 달러로 환전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외환보유액이 남아있을 때 먼저 달러를 확보하자는 움직임이 벌어지게 되고, 이는 결국 외화 대 이탈로 이어진다. 국내 대기업에 달러 빚을 빌려준 외국인도, 달러로 돌려받지 못할까봐 빚을 서둘러 회수하게 된다. 1997년 외환위기의 메커니즘이다.
외환위기 이후에는 변동환율제를 택해 시장에서 환율이 정해진다. 그래도 조정은 이뤄진다. 물가안정이나 수출확대를 위해서다. 성장보다는 복지에 무게를 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물가안정을 위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시중에 풀리도록 원화강세를 용인한다. 수출기업들의 해외 가격경쟁력 약화가 부작용으로 거론됐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수출확대를 위해 시중에 풀린 달러를 외환보유액으로 흡수해 원화약세를 지향했다. 요즘 수출기업들의 이익이 늘었지만, 물가는 크게 오른 이유다.
전문가들조차 예측이 가장 어려운 게 유가와 환율이다. 경제 원리뿐 아니라 정치적 이해에 따라서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원화의 방향은 강세가 우세하다. 달러 공급, 경상수지 흑자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연말께 1000원 초반까지 가리란 전망이 많다.
하지만 최근 미국이 재정지출을 줄이기로 하면서 달러가 줄어드는 달러강세, 즉 원화약세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경기가 어려운데 미국이 공격적으로 돈을 흡수할 가능성은 아직 낮다는 게 중론이다. 외국인의 한국주식 매도도 달러수요 증가, 즉 원화약세의 요인이다. 하지만 외국인이 지속적이고 공격적으로 한국주식을 팔 상황은 아닌 만큼 이로 인한 원화약세는 제한적일 수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