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회의 자료를 바라보고 있다. 박 전 대표는 비공식 공부모임 ‘5인 스터디 그룹’과 4년 가까이 만나면서 정책과 관련해 상당한 ‘내공’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친박계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오는 9월 추석 연휴를 대권 행보 시작의 D-데이로 잡고 있다는 구체적 일정도 제시하고 있다. ‘추석’은 박 전 대표에게 쓰라린 경험이 있다. 지난 2006년 10월 추석연휴 직전 터진 북한의 핵실험으로 박 전 대표는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처음으로 지지율이 역전당한 뒤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경선패배로 이어졌다. 그래서 내년 8월 경선이 1년여 남은 시점에서 구체적인 집권 청사진의 일부를 밝혀 대세론을 굳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 방법은 국정감사와 같은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최근의 경제위기에 대한 차기주자의 해법을 국민들에게 상세히 설명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9월 추석연휴를 전후해 조기부상하려는 내막을 따라가 봤다.
친박진영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 8월 9일 당내의 민감한 현안에 대해 작심한 듯 ‘사견’을 쏟아낸 것을 ‘대권 레이스의 터닝 포인트(전환점)’로까지 보고 있다. 이날 박 전 대표는 국회 상임위 출석을 앞두고 매우 이례적으로 기자들과 거의 ‘간담회’ 수준의 인터뷰를 가졌다. 특히 내용도 홍준표 대표의 권한인 최고위원직 인선 혼란과 공천 물갈이 등과 같은 당내의 핫이슈만을 골라 명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이는 홍 대표의 권한에 대한 일종의 월권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의 가이드라인 제시라는 점에서 박 전 대표의 행보에 확실히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친박진영도 인정하고 있다.
친박측의 한 핵심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이번에 언급한 것은 보기에 따라 일반적인 수준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판단할 땐 그동안의 어떤 언급보다도 진일보한, 일종의 구체적인 지시사항이라고 본다. 회견 내용을 듣고 우리도 상당히 놀랐다. 그동안 당 대표가 결정할 사항에 대해서는 일종의 금기처럼 언급을 자제해왔는데 이번 최고위원직 인선 논란 언급은 내년 대선까지 연결된다는 점에서 이해 당사자의 입장으로 확실히 정리를 했다”라고 말했다.
친박진영에서도 예상치 못한 박 전 대표의 조기 부상은 일단 외부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최근 미국 발 금융(재정)위기에 국내 경제도 휘청거리고 있다. 박 전 대표는 현재의 위기를 국가비상상황 전 단계로 규정하고 ‘위기관리’ 차원에서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안다. 금융위기가 오지 않았다면 공개 활동 시기도 예정대로 올해 말쯤으로 갈 수 있었지만 박 전 대표가 예상보다 활동 시점을 앞당긴 것 같다. 이는 금융위기가 지금이 시작 단계이고 결국 자신의 집권 때부터 본격적인 위기가 올 것으로 보고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박 전 대표의 행보가 빨라지긴 했지만, 여기에는 그동안 갈고 닦은 정책공부의 내공을 바탕으로 ‘이제 하산할 때가 됐다’라는 본인의 자신감이 더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친박계의 한 중진 의원은 지난 9일 박 전 대표의 현안 언급 가운데 금융위기에 대한 그의 ‘재정문제 강조’를 보고 “준비가 잘돼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미국의 경제 위기는 과도한 정부부채가 금융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재정 건전성’이 해결책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특히 그가 중도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올인’하고 있는 복지정책은 재정 건전성과는 본질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양날의 칼이다. 박 전 대표가 금융위기에 대해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재정 건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정부가 중장기적인 재정 건전화 대책을 세워야 한다”라고 밝힌 부분은 매우 시의적절한 지적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박 전 대표는 지난 대선 경선 패배 이후 4년 가까이 격주마다 스터디를 하고 전문가 그룹을 만나 의견을 청취하는 등 정책 연구에 매진해왔다. 성균관대 안종범, 숙명여대 신세돈, 연세대 김영세, 서강대 김광두, 영남대 최외출 교수 등이 주축이 된 비공식 공부모임 ‘5인 스터디 그룹’은 박 전 대표의 실질적인 핵심 브레인이다.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한 인사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의 공부량이 상당하다. 이제 더 이상 공부해야 할 테마가 없을 정도로 경제금융 관련 정책을 거의 섭렵했다. 특히 복지와 필연적으로 상충될 수밖에 없는 재정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인 안종범 교수에게 수차례 단독 과외도 받았던 것으로 안다. 교수들과의 공부모임도 박 전 대표의 몇 수를 내다보는 질문에 굉장히 심도가 깊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여당 지도부의 리더십 혼란과 중구난방 식의 정책 남발 등도 박 전 대표의 조기부상 필요성(공개 활동 강화)을 높여주고 있다. 특히 홍준표 대표의 총선 물갈이, 최고위원 인선 논란 등 좌충우돌 리더십에 대한 견제를 통해 여권의 무게중심을 박 전 대표가 직접 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서울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최근 황우여 원내대표가 사전 조율 없이 무상보육론까지 주장하는 등 여권 지도부가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고 있는 것 같다. 이를 보는 박 전 대표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차기 주자로서 여권의 향후 정책은 그와의 조율 속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는데, 당 지도부가 제각각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복지와 관련된 정책은 박 전 대표의 최우선 관심 사항인데 황 대표 등이 당내 위상을 높이기 위해 관심 끌기 식으로 발표하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더구나 앞으로는 총선 승리를 명분으로 당 지도부가 더욱 조율 없는 정책을 쏟아낼 가능성이 크다. 이런 혼란은 박 전 대표의 대권 행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당 지도부 때문에 박 전 대표가 예상보다 일찍 나서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당 지도부를 적절하게 견제하는 것이 자신의 대권행보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정무적 판단이 작용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대권주자의 조기부상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극도로 공개 활동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금융위기라는 초유의 외부변수가 그를 조기부상의 무대 위로 올려놓고 있다. 이에 박 전 대표는 몇 년 동안의 정책 내공 쌓기에 따른 자신감과 당 지도부의 좌충우돌 리더십을 견제하는 카리스마의 두 채찍으로 대세론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9월 국감 때 정책 ‘뚜껑’ 추석 연휴가 D-데이
최근 친박계 일부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공개 활동 시작 D-데이를 9월 추석연휴를 전후로 잡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여론의 큰 흐름이 잡히는 추석과 설이 정치인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여론형성의 기회다. 하지만 ‘추석’은 박 전 대표에게 뼈아픈 명절이다. 지난 2006년 10월 추석연휴 전 박 전 대표는 유력한 라이벌 이명박 서울시장을 지지율에서 여유 있게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연휴 직전 북한의 1차 핵실험이 터지면서 상황이 역전돼 버렸다. 북한 핵실험 이후 ‘남성 후보의 경륜’에 대한 여론의 평가가 높아지면서 박 전 대표와의 지지율이 역전된 뒤 1년 동안 이명박 후보는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추석이 박 전 대표에게는 역전의 빌미를 제공했던 여론 변화의 변곡점이었던 셈이다.
친박계 인사들도 당시를 떠올리며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했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지지율이 한번 뒤집어진 뒤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격차가 벌어졌다. 처음에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박 전 대표가 유력한 대권주자이긴 했지만 너무 일찍 나서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해왔기 때문에 언론 노출을 자제하고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이 오판이 발목을 잡았던 것 같다. 박 전 대표가 추석 이후에도 한동안 상황을 안이하게 판단해 공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서 이명박 후보와의 격차를 좁힐 수 없었고, 결국 그것이 이명박 대세론으로 이어지는 빌미가 됐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부적으로 조기 캠프 구성론이 우세한 편이다. 오는 9월 추석이면 경선이 1년도 남지 않았을 때다. 2006년 추석의 악몽을 재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추석 연휴에는 대세론을 굳히기 위한 1차 승부수를 던져야 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사실 박 전 대표는 외교안보 등 외생변수에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2006년 추석 전의 북한 핵실험에 이어 2007년 8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23인 피랍 사건(2명 희생)으로 이명박 후보와의 역전 기회를 또 다시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2007년 8월 경선 전 3주 내내 온 국민의 시선이 무장단체 탈레반으로 쏠리면서 안보정국이 조성됐고 결국 그것이 경선 패배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2006년 이명박 캠프에 참여했던 친이계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최근 미국 금융위기가 일어나자마자 신속하게 당내의 민감한 현안과 경제위기 등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은 것을 잘 보라. 여성이라는 유약한 이미지 때문에 외교안보와 국제 금융위기 같은 외생변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지난 2006년 경선에서 일정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다분히 의식했다고 본다. 그래서 이번에는 국제 금융위기에 대처해 즉각 대안을 제시(재정 건전성 문제 거론),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는 치밀한 전략을 동원했음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친박 측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오는 9월 정기국회를 통해 박 전 대표가 경제와 복지 관련 정책을 소상하게 밝힐 것으로 말해 왔다. 박 전 대표 본인도 지난 9일 현안을 언급할 당시 정책발표 시점에 대해 “9월(정기국회)에 국정감사가 있잖아요”라고 말한 바 있다.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