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11일 박철언 전 장관을 만나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고록과 관련된 논란의 진실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8월 11일 박 전 장관의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그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와 통화 중이었다. 김 여사는 상도동 측의 반응에 대해 속상한 심정을 토로하고 있었다. 출간 배경을 비롯해 일각에서 제기하는 의혹들에 대해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는 듯했다. 박 전 장관은 김 여사를 위로하고 있었다. 국민들에게 진실이 무엇인지 밝힐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였다. “YS가 그래도 돈에 있어서만큼은 깨끗하다고 믿어온 국민들이 이번 회고록 출간으로 적잖이 당혹스러워 할 것 같다”는 얘기도 나왔다.
박 전 장관에 따르면 김 여사는 YS 측의 반응에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며 속상해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직 대통령의 이름 석자를 걸고 국민 앞에 진실을 증언한 것인데 정치적 색안경을 끼고 진실을 매도하는 YS 측의 태도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는 얘기다.
박 전 장관은 책 출간 배경과 관련해 “10여 년 전부터 준비해온 것으로 내가 초고를 본 게 4~5년 전이다. 두 정권에 걸쳐 참모역할을 했던 인사들 사이에서는 3000억 원 부분을 비롯해 민감한 정치비사를 빼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나는 낱낱이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회고록으로서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겠나. 여러 부분에 대한 조율을 거치다보니 시간이 걸렸는데 이제는 때가 됐다는 판단이 섰다. 이번 출간은 폭로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며 정치적 의도와도 무관하다”고 밝혔다.
인터뷰는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대선자금 3000억 원 부분에 집중됐다. 박 전 장관은 “나는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던 얘기로 엄연한 사실이다. 수표와 메모 등 각종 자료를 통해 개인적으로 돈을 받은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박 전 장관은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이라는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YS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40억 원+α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YS 측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공식대응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에 박 전 장관은 불편한 심기를 표했다. “YS를 무조건적으로 비방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꾸 정치적 의도 운운하는데 노 전 대통령 측근 중 나를 포함해 정치판에 나올 사람 아무도 없다. 또 장기 와병 중인 노 전 대통령이 뭐하러 거짓을 썼겠나. YS가 당을 통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받은 돈이 3000억 원이다. 국민과 역사 앞에 마땅히 밝혀야 될 부분이고 불법 정치자금과 관련해 정치판에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반응하는 게 이해가 안된다. 진실은 반드시 드러난다. 이런 식이라면 YS는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YS 측의 공식대응 조짐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할 경우 자승자박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회고록 내용이 거짓이라면 명예훼손에 해당되는데 입증가능한 엄연한 진실이므로 걱정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박 전 장관은 YS 측의 태도에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으로서 잘못된 부분은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진솔함을 기대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자금이 필요해서 개인적으로 받았다. 정상적인 루트를 통하지 않은 것에 대해 역사와 국민 앞에 참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하는 게 옳다. 당의 공식자금이었다면 입금 및 지출내역이 있어야 하는데 그 내역에 대해 전혀 밝혀진 바 없다. 사과하고 남은 돈의 행방에 대해 밝히면 된다. 이미 공소시효도 지나지 않았나. 담백하게 인정하면 되는 문제 아닌가. 사실 마음만 먹었으면 벌써 폭로할 수 있었다. 과거 수사 당시 폭로했다면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을 것이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그 치욕을 당하면서도 그 부분에 대해 오랫동안 침묵해왔다. 그런데도 YS 측에서 20년 전의 일을 지금 와서 밝히는 저의가 뭐냐고 따지고 든다면 실로 후안무치한 것이다.”
특히 박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통해 과거 기업 등으로부터 돈을 조달한 사실을 인정했음을 거론하며 치부를 솔직히 밝히고 사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 역시 과거 ‘월계수회’라는 사조직을 만들어 활동했던 것에 대해 깊이 뉘우치고 있다는 말도 했다. 늦게나마 치부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은 추후 정치판에 좋은 선례를 남길 뿐 아니라 비자금과 관련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게 만드는 바탕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회고록에 DJ(김대중 전 대통령) 비자금에 대한 내용이 빠진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박 전 장관은 “남북문제를 포함해 다양한 사안들과 관련해 나는 비밀리에 DJ와 자주 접촉을 해왔다. 그런데 DJ는 내 앞에서 자금이 필요하다고 하거나 돈 얘기를 부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노 전 대통령이 일부러 그 내용만 뺀 것은 아닐 것이다. 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비공식적이고 비정상적인 루트를 통해 3000억 원을 받은 YS와 20억+α설이 오가는 DJ와는 금액적으로도 큰 차이가 나지 않나. 설령 20억+α가 사실이라해도 그런 부분까지 회고록에 쓴다면 써야 할 자질구레한 정치 뒷얘기들은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박 전 장관은 YS에 대한 인간적인 서운함도 언급했다. “YS가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았나. 노 전 대통령의 3당 통합을 통해 정치적 기반을 잡고 엄청난 재정 지원을 받은 사람이 YS다. 표적수사나 정치보복은 그렇다 치자. 장기 와병 중인 노 전 대통령을 찾아와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는 것이 인간의 도리 아니겠나. ‘YS 대통령 만들기’에 그렇게 공을 들였건만…. 최소한의 인간적인 기대마저 무너뜨린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한편 박 전 장관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의 건강은 여전히 좋지 않다고 한다. 박 전 장관은 “특별히 악화된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거동이 어려우며 언어장애까지 와서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법이 연구·개발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영혼의 절규 그대로 옮겨”
박철언 전 장관이 <따뜻한 동행을 위한 기도>라는 두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첫 번째 시집인 <작은 등불하나>가 출간된 지 7년 만이다.
한 평 철창속으로 일회용 커피 한 봉을 건네주던 교도관의 따뜻한 손길을 떠올리며 처음 펜을 들었던 그는 격동의 정치사에서 물러난 현재 한결 넉넉하고 부드럽게 변했다.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시로 옮기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번 시집에 실린 89편의 시를 통해 그는 일상의 삶에서 그냥 지나쳐버리기 쉬운 시간의 한 자락을 붙잡고 그곳에 머물며 자신의 느낌을 소박한 언어로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그를 일컫는 수많은 직함 중에서 ‘시인 박철언’으로 불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시집 출간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누구를 감동시킨다는 생각으로 쓴 것은 아니다. 바쁜 생활 속에 틈틈이 나만의 공간에서 또는 여행길 대자연 속에서 평화와 소박함이 아름답게 가슴을 파고들 때, 한없는 외로움이 밀려와 몸부림칠 때, 마음이 복잡하거나 힘들 때, 꾸밀 것도 감출 것도 없는 솔직한 내 영혼의 절규를 그대로 옮겼을 뿐이다.”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