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쥔 윤 측 여론조사 거절, DJP연합 방식 등 검토…투표용지 인쇄 전 직접 만나 파격 제안 가능성
야권 단일화 논의의 운을 뗀 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다. 안철수 후보는 2월 13일 유튜브 생방송을 통해 ‘100% 여론조사 국민 경선’으로 단일화 후보를 가르는 방식을 제안했다. 안 후보가 지난해 4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때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치렀던 방식으로, 당시 여론조사 기관 2곳에서 각각 ‘적합도’(800명)와 ‘경쟁력’(800명)을 조사한 결과를 합산해 승패를 결정했다. 여권 지지층을 배제하는 역선택 조항은 넣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안 후보 제안에 난색을 보였다. 역선택에 의한 민심 왜곡 가능성이 우려되는 데다, 선두를 달리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대등한 위치에서 단일화를 논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이유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이양수 수석대변인은 안 후보 기자회견 뒤 “국민경선이라 지칭해 제안한 방식은 정권교체를 원하는 국민적 요구에 오히려 역행할 위험을 안고 있다”고 했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2월 14일 YTN 라디오 방송에서 “(안 후보가) 여론조사의 대부분은 1위 윤석열, 2위 이재명, 3위 안철수, 4위 심상정으로 순위가 굳어져 있는데 이를 야권후보 선정방식으로 별도로 여론조사해서 결정하자고 한다”며 “금메달 빼앗아가는 올림픽 같다”고 평가했다.
국민의당은 연일 묵묵부답인 윤석열 후보 결단을 압박하는 모습이다. 안 후보는 2월 15일 “답을 기다리고 있다”며 “빠른 시일 내에 결단을 내려달라”고 재촉했다. 최진석 국민의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2월 15일 ‘단일화 결렬, 무산을 공식 선언할 수 있냐’는 질문에 “공식 선언할 수도 있다”며 배수진을 쳤다.
정작 윤 후보는 ‘후보 간 담판’을 주장하며 “말씀 드릴게 없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급할 게 없다는 내부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 지지율은 상승세를 이어가는 반면 안 후보는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안 후보가 우위를 보이던 야권 단일 후보 적합도 또는 경쟁력 조사에도 최근 윤 후보가 선두를 달리는 양상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코리아정보리서치가 뉴스핌 의뢰로 2월 12일 실시한 야권 단일후보 적합도 여론 조사에서 윤 후보는 41%, 안 후보는 34%를 기록해 윤 후보가 7%포인트(p) 앞섰다. 20대와 4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층에서 윤 후보의 지지율이 안 후보의 지지율보다 높았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단일화 결렬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은 2월 15일 “이번에는 국민의힘 쪽에서 단일화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윤 후보가 독자적으로 홀로 해도 당선이 가능하다는 자신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분석했다. 이어 김 전 위원장은 “(단일화 없이) 그대로 갈 것”이라고 단일화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전망했다.
양측은 대선 막판 단일화 논의가 정치적 이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우선, 국민의당은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안 후보의 캐스팅보트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본다. 대선 막판까지 거대 양당 못지않은 존재감을 발휘할 것이란 얘기다. 단일화를 먼저 제안한 만큼 단일화 실패 책임론에서 자유롭다는 점도 거론된다.
국민의힘 역시 단일화 시기를 뒤로 미룰수록 나쁠 게 없다는 계산이다. 안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큰 만큼, 대선 막판 자연스레 흡수할 수도 있다는 말도 내부에선 적지 않다.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이 직접 단일화와 관련해 선대위 내부에 입단속을 시켰다는 얘기도 돈다. 단일화 이슈를 키울수록 안 후보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읽힌다.
선대위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급할 게 없는데 우리가 나설 필요가 없다”며 “안 후보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고 윤 후보는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단일화를 언급할수록 안 후보 몸값만 올라간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불리한 경선 방식을 치를 이유도 없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야권의 단일화 이슈에 더불어민주당은 불안한 눈치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월 14일 “국민의힘에서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는 거부했지 않느냐”며 야권 단일화 성사 가능성을 낮게 봤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월 15일 “안 후보 제안에 국민의힘 당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그냥 취급을 안 하고 있다”며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은 단순히 정치 공학적인 것이 아니라 안 후보가 주장하는 과학기술강국 대한민국이라는 어젠다를 대폭 수용하겠다”고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따라 당분간 양측의 수싸움은 치열하게 벌어질 전망이다. 현재로서는 윤 후보가 안 후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다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안 후보에게 총리 및 일부 내각 임명권 등을 보장하는, ‘김대중·김종필(DJP) 연합’ 식의 단일화가 검토되고 있다. 또 국민의당에 지방선거 공천권을 부여하는 방안도 오르내린다.
DJP연합 모델은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단일화를 말한다. 김대중 후보는 국무총리와 경제부처 장관 지명권, 내각제 추진 등 상당한 지분을 김종필 총재에게 약속했다. 이 연대로 김대중 후보는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1.5%p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다만 안 후보는 “DJP연합 분야는 제 고려사항이 아니다”라면서도 “만나자는 제안이 오면 그때 생각해보겠다”라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정가에선 오는 6월 지방선거 공천권이 단일화 테이블에 오를 경우 협상이 꼬일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안 후보는 최근 전국 152개 지역구에 지역선대위원장을 임명하며 당 조직을 재정비한 상황이다. 이를 두고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포석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앞서 국민의힘 관계자는 “안 후보의 단일화 제안을 두고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DJP연합 때와 다르다. 대선을 앞두고 공천권을 논할 만큼 안 후보의 영향력이 크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어찌됐건 윤 후보와 안 후보는 대선 투표용지 인쇄일인 2월 28일 전에 직접 만나 담판을 지을 것으로 점쳐진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윤 후보가 안 후보에게 파격 제안을 할 것이란 말이 이미 파다하다. 실제 윤 후보는 “서로 신뢰가 있다면 10분 안에도, 커피 한잔 마시면서도 끝낼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한 바 있다.
김수민 정치평론가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협상에서 윤석열 후보가 키를 갖고 있다. 하지만 단일화를 한다고 안 후보 지지표가 윤 후보에게 갈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 반드시 단일화가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을 윤 후보가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국민의힘이 안 후보의 제안을 받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지지율 격차가 크고, DJP연합 때와는 조건이 완전히 다르다. 안 후보 역시 총리직을 받으면 차기 대선 후보로 뛰기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에 (DJP연합 모델은) 크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이어 김수민 평론가는 “협상 조건으로는 안 후보가 선거법 개정안 정도는 내밀고 윤 후보가 이를 받아야 (단일화가) 성사되지 않을까”라고 전망했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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