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 29일 서울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자신의 책 <운명>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그렇다면 ‘문재인 대망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의 신선함이 신드롬을 불러왔다는 단순한 분석으로는 ‘급부상’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동시에 ‘문재인 신드롬’의 이면에는 대중들이 간과하고 있는, 문재인이 넘어야 할 정치적 한계와 검증해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또한 야권 대권주자로 우뚝 선 문재인 이사장 앞에는 여야 대권 경쟁주자들이 지금까지 숨기고 있던 수많은 칼들이 놓여 있다. ‘문재인 대망론’이 안고 있는 아킬레스건을 집중 분석해 보았다.
“문재인 이사장은 정치인으로서 여러 가지 강점을 가지고 있다. 아직 박근혜 전 대표에 비해 한참 지지율이 낮다고는 하지만, 본격적인 대선 경쟁이 펼쳐지면 현 지지율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문재인 신드롬이 신경 쓰이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나라당의 한 친박계 의원은 최근 대권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문재인 이사장에 대해 이런 속내를 전했다. 한나라당 내에선 근래 ‘문재인 대망론’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할지를 두고 여러 가지 의견이 오가고 있다고 한다. 한목소리를 내기 힘든 친이-친박계도 문재인 이사장을 ‘경계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은 입장이다.
문재인 이사장의 무서운 상승세는, 차기 대선구도가 ‘박근혜 VS 손학규’가 아닌 ‘박근혜 VS 문재인’의 경쟁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게 하고 있다. 문 이사장은 이미 일부 여론조사에서 손학규 대표를 앞선 데다 최근엔 처음으로 두 자릿수 지지율(11.7%)에 오르기도 했다(리얼미터 8월 8일~12일 조사, 손학규 대표 9.9%). 친박계 내에서도 “문재인 이사장의 파괴력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이미 여러 차례 개진되었다는 전언이다. 한 친박계 인사는 이에 대해 “문재인 이사장에 관한 자료를 이미 수집해 놓고 있다”며 “박근혜 전 대표 지지포럼 내에서도 문재인 이사장과의 대결을 염두에 둔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문재인 이사장을 경계해야 하는 입장은 민주당 손학규 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야권의 통합 논의에 따라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겠지만, 손 대표와 문재인 이사장이 후보 단일화를 두고 경쟁을 벌이게 되는 상황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경우의 수 중 하나이기 때문. 민주당의 한 전략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표 못지않게 문재인 이사장을 눈여겨 살펴보고 있다. 같은 야권에 속한 입장이기에 ‘문재인 대망론’이 과연 어느 정도의 폭발력이 있는지 유심히 분석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에둘러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 주변에서 들리는 바에 의하면, 손학규 대표 측에서도 ‘문재인 신드롬’의 대응 전략 마련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손학규 대표 측이 문재인 이사장과 같은 야권주자로서 ‘경쟁 및 공생관계’이긴 하지만 ‘경선’을 염두에 두고 ‘문재인 아킬레스건’을 집중 분석중인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여의도의 한 정치컨설턴트는 문재인 이사장의 취약점으로 “참여정부의 공과를 모두 떠안아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대다수 국민들이 ‘문재인=노무현’의 자연스런 공식을 떠올리기 때문. 문재인 이사장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시민사회수석비서관, 그리고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했던 인물이다. 아랫사람들과의 소통에 능했지만 ‘자기고집’도 셌던 노 전 대통령이 가장 귀담아 듣는 ‘목소리’ 중 하나가 바로 문재인 이사장이었다. 문 이사장은 참여정부 시절 이해찬 전 총리가 부적절한 관계에 있는 인사들과 내기골프를 쳤다는 소식을 듣고 고심하던 노 전 대통령에게 해임을 촉구했을 정도로 직언을 서슴지 않기도 했다.
이렇듯 노무현 전 대통령과 오버랩되는 그의 이미지는 강점이자 동시에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평가다. 앞서의 정치 컨설턴트는 “‘노무현 이미지’는 ‘문재인 대망론’을 떠받들고 있는 주된 축이기도 하다. 문재인 이사장의 경쟁주자들은 그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 집중 추궁할 것이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이 컨설턴트는 “이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묻히게 된 박연차 게이트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고, 이에 대응해야 하는 문 이사장이 매우 큰 고뇌를 느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노련한’ 기존 정치인들이 문재인 이사장에 대해 더욱 강도 높은 검증을 요구할 수도 있다. 선거에 출마한 적이 없는 문 이사장은 그동안 선출직을 한 단 번도 맡은 바 없고, 인사청문회 무대에도 오른 적이 없다.
한 정치 컨설턴트는 이에 대해 “문 이사장이 대선에 나선다면 그에 대한 정치권 및 보수 언론들의 검증이 본격화 될 것이다. 대선후보 검증 과정은 어떤 돌발변수가 발생할지 모른다. ‘흠집 내기’를 위한 근거 없는 의혹 제기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스스로도 정치무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만큼 깨끗한 품성의 문 이사장이 이를 요령 있게 피해 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이사장을 바라보며 고건 전 총리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문 이사장이 ‘권력의지’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고 전 총리의 전철을 밟게 될 수도 있다는 부정적 시각이다. 고 전 총리는 2007년 대선을 1년 4개월여 앞둔 2006년 이 즈음, 당시 이명박 후보에 이어 박근혜 후보와 2위 자리를 두고 경쟁할 만큼의 유력 대선 주자였다. 그러나 2007년 1월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며 정계를 떠난 바 있다. 당시 고 전 총리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멍석을 깔아주어도 나서지 못 한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이사장이 고 전 총리와의 차별성을 보이기 위해서는 정치 전면에 먼저 나서 스스로 검증을 받고 대권주자로서의 정치력과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평가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문재인 이사장은 단기적 상승가능성은 크지만 이를 대선까지 이어가려면 우선 내년 총선에 직접 출마해 대선 승리에 대한 가능성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노무현 향수’를 가진 표심을 최대 20% 내외로 보는데 아직 문 이사장은 친노 표심 전부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총선에 직접 출마해 부산·경남 지역에서 당선된다면, ‘1차 관문’은 통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조직 부재’도 문 이사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노무현 재단, 국민참여당, 시민사회세력, 민주당 일각 등으로 분화된 친노계가 일사불란하게 문 이사장을 위해 뛰어줄지도 미지수라는 평가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문 이사장 개인의 잠재력이나 매력은 충분하나, 대선은 개인이 뛰는 레이스가 아니다. 튼튼한 조직력이 동원되어야 하는 것인데 문 이사장은 현재 그런 조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 역시 “민주당이 문 이사장에 대한 영입 제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이유도 대선 후보 경선 흥행을 위한 것 아니겠느냐. 손학규 대표나 정동영, 정세균 최고위원 등 민주당 소속 대권주자들의 조직이 문재인 이사장을 대권 후보로 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평했다.
문재인 이사장이 과연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현재의 돌풍을 이어가 대권주자로 나설 수 있을까. 그의 참신하고 곧은 이미지가 기존 정치판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현실은 어딘가 씁쓸하다. ‘문재인 대망론’을 바라보고 있는 지지자들의 마음 한 편에 걱정이 담긴 것은 바로 ‘정치인답지 않은’ 문재인, ‘그 자신’ 때문일지도 모른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문재인, 4ㆍ27 재보선 전후 큰 심경 변화”
―일부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이사장 지지율이 야권 주자 중 1위를 기록했는데 원인이 뭐라고 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 기본적일 것이다. 또 문 이사장은 ‘자신이 정치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거꾸로 국민들이 지지를 보내주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말씀도 하신다. 세 번째로는 문 이사장이 통합민주진보세력을 이루기 위해 나서고 있는 모습이 이명박 정부에 실망한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 아닌가 한다.
―문 이사장의 대선 출마 여부가 가장 큰 관심사다. 최근 문 이사장을 보면 분명 이전과는 다른 각오가 느껴지는데,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보나.
▲4·27 재보선을 전후로 문 이사장의 심경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문 이사장은 작년 6·2 지방선거를 치르며 야권의 후보연합과 단일화 과정에 역할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졌었다. 하지만 기존 방식으로는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가 어렵겠다는 판단을 했고, 이대로 가면 승리할 수 없다는 위기감과 절박함이 생기신 것 같다.
―야권통합 논의가 순탄하게 풀릴 것인지 걱정과 기대가 오간다.
▲문재인 이사장도 그렇지만 우리는 내년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 야권통합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정권을 가져오더라도 진보진영이 분열한다면 참여정부 때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먼 미래까지 내다볼 때 통합은 필수적이다.
―문 이사장의 ‘권력의지’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는데.
▲권력의지에는 여러 측면이 있다고 본다. 내가 꼭 대통령이 되어야겠다는 ‘권력의지’라면 그건 별로 없으신 것 같다. 하지만 역사적 소명의식으로 야권통합을 이뤄내고,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하겠다는 의미의 권력의지라면 분명히 갖고 있다. 본인만이 권력을 쟁취해야 한다는 권력의지란 게 과연 옳을까 하는 생각이다. 또 참여정부 때도 그랬지만 다음 대선에서는 국민들도 수평적인 권력을 원할 것이라고 본다.
끝으로 김 사무국장에게 “내년 총선에 출마할 생각은 없는가”라고 물었더니, 그는 “잘 모르겠다. 일단 야권통합 논의에 함께하며 최선을 다하겠다”는 답을 건넸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