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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업계에서는 정 사장에 대한 징계가 가벼운 수준에서 그칠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정 사장이 해킹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데다 후속 조치에 성의껏 임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금감원은 금융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불어넣고자 중징계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징계 여부에 대한 결정이 늦어진 것도 금감원이 중징계냐 경징계냐를 두고 고민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대캐피탈과 정 사장이 소명할 기회가 아직 있고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이긴 하지만 만약 금감원이 통보한 결과대로 징계 수위가 결정된다면 정 사장뿐 아니라 현대차그룹 차원에서도 작지 않은 타격이 될 듯하다.
우선 ‘기관경고’를 받은 현대캐피탈은 징계가 그대로 결정된다면 앞으로 3년간 보험업, 금융투자업, 금융지주, 신용카드업, 상호저축은행업에 진출하기가 어려워진다. 보험업·금융투자업 감독 규정 등에 따라 ‘기관경고’는 대주주 자격 요건의 결격 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녹십자생명 인수를 추진 중이다. 이는 그룹 차원에서 추진하는 일이지만 훗날 현대차그룹이 금융계열사를 묶을 때 현대캐피탈의 기관경고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녹십자생명이 지분 매각을 재검토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현대차 측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부인하지만 저축은행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는 하반기에 그룹 차원에서 저축은행 한 곳을 인수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은행을 인수함으로써 카드, 캐피탈, 증권, 보험과 함께 금융 소그룹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징계 확정시 저축은행 인수를 추진한다고 해도 현대캐피탈은 활용할 수 없게 된다.
정태영 사장으로서도 이번 징계는 큰 오점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인사상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징계가 확정돼도 사장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인사권자인 정몽구 회장의 결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둘째 사위라는 점과 현대카드·캐피탈을 성장시킨 공을 인정받아 정몽구 회장이 인사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룹 차원에서 금융 계열사를 확장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전망되던 정 사장은 이번 징계로 입지가 좁아질 공산이 크다. 정태영 사장은 금감원이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과정에 있던 지난 7월 미국 시장 진출을 도모하는 등 크게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심 금감원 징계 여부를 기다리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이 정 사장에게 너무 과한 조치를 취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것은 인정하되 범인 검거와 사후 조치를 신속히 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당국은 금융사가 사상 초유의 해킹을 당한 것을 가벼이 넘길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또 해킹 방지에 대한 대책과 조치가 미흡했다는 것도 금감원의 지적 사항이다. 이번 기회에 금융사에 경각심을 불어넣자는 의미도 짙다.
현대캐피탈 측은 “정태영 사장과 회사에 대한 소명자료와 이견서를 모두 제출할 것”이라며 “지금으로선 할 일을 하고 최종 결정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