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3년 5월 20일 참여정부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왼쪽)과 김두관 행자부 장관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여기에다 문 이사장이 보여주지 못하거나 숨기고 있는 권력 의지를 김 지사는 솔직하게 그려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잘나가던 문 이사장이 자의나 혹은 타의로 대선 문턱에서 주저앉을 때 김 지사가 가장 매력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야권이 온통 ‘문재인 대망론’의 환상에 빠져 있을 때 민주당의 ‘전략 고수’들은 냉정하게 김두관의 경쟁력과 표계산을 하고 있다. 문재인의 바람 뒤에서 은밀하게 부상 중인 김두관의 힘을 집중 분석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비상장 황제주’라면 김두관 경남 도지사는 ‘상장 우량주’쯤 된다. 문 이사장은 여전히 현실정치에는 반쯤 발을 걸친 채 야권대통합의 밀알 역할을 명분으로 분위기를 살피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단 한 발자국의 정치행보도 내딛지 않은 상황에서 단기간에 대선주자 야권 1위를 차지한 것만 봐도 그의 파괴력은 메가톤급이다.
반면 김두관 경남지사는 상장은 됐지만 문 이사장에 비해선 주가가 높은 편이 아니다. 일단 대선주자 지지율면에서 김 지사는 문 이사장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심지어 그는 현직 도지사의 사퇴 부담 때문에 차차기 대선주자로 분류될 만큼 마이너에 속한다. 정치적 위상도 문 이사장이 노무현 정권의 실질적 넘버 투로 활약했던 반면 김 지사는 행자부 장관을 거친 참모 정도였다. 인맥과 조직도 문 이사장은 참여정부 요직을 거쳐 ‘전국구급’으로 분류되지만, 김 지사는 주로 경남을 발판으로 한 ‘지역구급’ 정도에 그친다.
이렇게 ‘산술적으로’ 조목조목 따져봤을 때 김 지사가 문 이사장을 누르고 야권의 대권주자로 올라서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대선은 수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복잡한 방정식이다. 당연히 앞서의 산술적 계산이 적용되기 힘들다. 김 지사의 숨은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는 전문가들이나 현역 의원들은 현실적인 관점에서 김 지사의 경쟁력을 바라본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두 사람의 경쟁력을 냉정하게 비교해 봤을 때 김 지사가 더 구체적 비전과 득표력을 갖춘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에서도 원희룡 최고위원 등은 “문재인이 아닌 김두관을 주목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 지사는 대권을 넘볼 만한 매력적인 스토리, 충실한 권력의지, 숨은 고정 지지층면에서 문 이사장을 앞서고 있다는 것이다.
김 지사는 마을이장에서 출발해 군수-장관을 거쳐 도지사에까지 오른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다. 고졸출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공신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대선 정국의 얘깃거리다. 여기에 김 지사는 구체적인 정치 성과물을 낸 저력이 있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노 전 대통령이 못다 한 지역주의 장벽을 허물고 사실상 50년 만의 지역 정권교체를 이뤄낸 것.
한나라당도 김 지사의 이런 득표력을 상당히 경계하고 있다. 소장파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김 지사는 한나라당 텃밭인 경남에서 48%라는 놀라운 득표율을 보여주었다. 이달곤 후보가 약체이기도 했지만 야권단일후보를 만든 과정이나 선거 전략 등 모든 면에서 김 지사의 정치력이 돋보인 선거였다. 그가 내년 대선 때 야권 단일후보로 나온다면 문 이사장보다 더 빡빡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지사는 문 이사장이 범접하지 못하는 투철한 권력의지도 갖고 있다. 김 지사를 오랜 전부터 잘 알고 있는 한 국회출입기자는 이에 대해 “김 지사는 원외에 있을 때 여의도 진입에 상당한 의욕을 보였지만 끝내 좌절했다. 결국 도지사 당선으로 선출직 꿈을 이뤘는데, 이런 실패와 성공 과정을 거치면서 현장정치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는 권력욕이 아니라 투철한 권력의지를 견지해 자신의 뜻대로 정치를 바꿔보려는 긍정적인 힘”이라고 말했다.
김 지사는 또한 ‘바람 같은’ 문 이사장의 지지층과는 달리 남해군수 때부터 이어져온 탄탄한 고정 지지층을 가지고 있다(지난 2003년 결성된 지지조직 두드림은 노사모에 버금가는 헌신적인 팬클럽으로 통한다). 이는 눈에 보이는 과시용 세력이 아니라 미래의 표 확장성을 의미한다. 한 일간지가 대권주자 인터뷰를 차례로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독자들이 가장 많이 본 인터뷰 기사가 의외로 김두관 지사 대담이었다고 한다. 특히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도 그의 인터뷰기사가 가장 인기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렇게 열거한 김 지사의 장점만 보면 당장 내년에 대권 고지로 달려가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치전문가들은 “김 지사가 대선을 고려한다면 올해 말쯤 도지사직을 사퇴하고 바로 총선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럴 준비 기간이 짧고, 무엇보다 중도사퇴의 명분이 약해 차라리 차차기를 겨냥하는 게 낫다”라고 말한다. 김 지사가 대권 도전을 위한 전제조건은 충분하게 가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추진하기에는 굉장히 무리한 정치 스케줄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김 지사 측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정치권 관계자 Q 씨는 이에 대해 “그런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지만 너무 도식적이다. 준비 기간이 짧다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이 광주경선 이후 급부상한 것을 보면 맞지 않는 얘기다. 그리고 대선 출마를 위해 사퇴를 하는 것도 모르는 얘기다. 김 지사로선 대선용 사퇴가 가장 명분이 없는 정치행위로 볼 것이다. 하지만 김 지사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정치적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권력욕에 사로잡혀 중도사퇴를 하는 것과, 자신이 나서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해서 선택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김 지사가 최근 주변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안 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는 설도 있음)”라고 말했다.
한편 김 지사 측 일각에서는 “문 이사장이 자신의 ‘애매모호한’ 권력의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대선에 나가지 못할 것”으로 전망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 문 이사장과 김 지사는 대선에 대해 서로 충분히 교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지사는 이 과정에서 문 이사장과의 세 대결보다는 상호합의를 통한 추대를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의 Q 씨는 이에 대해 “두 사람만이 공감하고 있는 특유의 정서가 있다. 앞으로 대선정국이 급박해지면 그것을 토대로 대결이 아니라 합의를 이끌어낼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치권력 속성상 문 이사장이 자신의 모든 것을 김 지사에게 그저 주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 지사는 최근 참모들에게 대선과 관련해 일절 언급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민감한 사안인 동시에 현재로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음을 나타내는 뜻이기도 하다. 앞서의 Q 씨는 이에 대해 “문 이사장이 자신의 의지대로 중도탈락하거나, 결정적인 실수 또는 지지율 거품 조정 등으로 인기가 떨어지고 대선정국에서 이탈할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그런 상황이 올 때까지 강태공 식으로 기다리는 게 합리적인 전략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지사는 강태공 전략과 함께 대선정국을 대비한 세력 확장도 꾀하고 있다. 그는 이번 10월 재보선에 자신의 최측근을 지방의 군수 선거에 내세우는 것을 필두로 내년 총선에서도 경남의 10개 이상 지역구에서 ‘김두관 키즈’를 당선시킨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민주당 비례대표 선정 때도 김 지사가 일정지분을 챙기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문재인 이사장은 현재 비상장 최고의 기대주다. 하지만 그가 상장의 문을 여는 순간 전혀 새로운 시장과 맞닥뜨려야 한다. 반면 김두관 지사는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 7단쯤 되는 고수다. 바둑으로 치면 문 이사장은 가능성이 높은 세력(어음)인 반면, 김 지사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실리(현찰)인 셈이다. 초박빙의 대선 승부에서 야권의 선거전략 고수들이 진짜 선수로 김두관을 주목하는 이유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이해찬이 호남·김두관 가교?
호남이 김두관 지사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김 지사와 호남관계를 보기 위해서는 이해찬 전 총리의 행보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는 말들이 나온다. 현재 야권에서 김 지사와 가장 친분이 깊고 그를 물밑에서 열심히 지원해주는 정치인으로 이 전 총리가 첫 번째로 꼽힌다. 지난 7월 이 전 총리는 6·2 지방선거에서 야권단일후보였던 김두관 지사의 당선을 두고 “1987년 양김분열 이후 민주진보진영이 모두 모여 이뤄낸 최초의 승리”이자 “한국 정치의 중대한 사건”이라며 김 지사를 극찬한 바 있다.
동교동계와 친분이 깊은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이 전 총리가 현재로선 문재인 이사장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김 지사에 대해 차차기를 준비해야 좋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지 입장을 바꿀 것으로 본다. 문 이사장을 불변의 대권후보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김 지사를 현실성 있는 카드라고 보고 있고 실제로 두 사람은 굉장히 사이가 좋은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야권 일각에서는 이 전 총리가 동교동 호남적자들과 접촉하면서 김 지사를 야권의 단일후보로 밀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 전 총리는 지난 8월 21일 밤 제주도 서귀포시의 최고급 레스토랑 핀크스 비오토피아에서 김대중 정권 때의 핵심인사였던 천용택 전 국정원장, 권노갑 전 고문, 김원기 전 국회의장과 저녁회동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곳은 지난해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인수한 곳으로 보안이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이 전 총리 측은 회동 사실에 대해선 함구했지만 김 지사 측과의 차기 대권 교감설과 관련해서는 “좋은 지사로 활약하면 성과를 내고 차차기를 내다볼 수 있을 것”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권노갑 전 고문 측은 제주도 회동 사실을 인정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2주기 기념식 행사를 마치고 수고했다는 의미로 네 분이 저녁식사를 했다. 평소 네 사람은 수시로 자주 만난다. 하루에 몇 번씩 만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날 모임 땐 정국 얘기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앞서의 민주당 의원은 이에 대해 “네 사람 모두 김대중 정권 때 핵심 인사였는데, 요즘 들어 그렇게 자주 만날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특히 회동 인사 면면을 보면 DJ의 복심 권 전 고문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버지였던 김원기 전 의장 그리고 국정원 수장이었던 천 전 원장이라는 점에서 호남의 옛 실세들이 김두관 지사를 의제에 올려놓고 ‘어게인 노무현’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