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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6ㆍ2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곽노현 당선자와 박명기 교수가 서로 얼싸안으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
지난해 6월 2일에 있었던 18대 서울시 교육감선거는 말 그대로 죽음의 레이스였다. 선거 레이스 초반, 무려 17명의 예비 후보자들이 난립하면서 어느 누구도 당선을 예측할 수 없었다.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했다.
당연히 진보와 보수진영 할 것 없이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일화’가 불가피했다. 당시 진보진영에서는 곽노현 방통대 교수를 필두로 이삼열 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이부영·최홍이 서울시 교육위원,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 등이 출마했다.
선거 과정에서 진보진영 단일화 과정은 크게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첫 번째 단일화 과정은 지난해 4월 14일에 있었다. 당시 단일화는 ‘민교협’ ‘민노총’ ‘진보연대’ ‘참여연대’ 등 100여 개의 진보계열 시민단체가 참여한 ‘2010 민주·진보 서울시교육감 시민추대위’가 주도했다. 선출방식은 여론조사 50%, 추대위 의견 20%, 시민공청단 투표 30%로 짜여져 있었다.
하지만 당시 박명기 후보와 이삼열 후보는 곽노현 후보가 민교협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형평성 문제로 단일화 경선 참여를 거부했다. 결국 1차 단일화 과정에는 곽노현, 이부영, 최홍이 등 세 후보만 참여했다. 경선과정에서 곽 후보는 두 후보를 압도하며 단일후보로 선출됐다.
1차 단일화에 성공한 곽 후보 측은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최종 단일화를 꼭 이뤄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이삼열 후보는 최종 후보자 등록 직전 대의명분을 앞세워 자진사퇴했다.
이후 진보진영 최종단일화는 곽 후보와 박 후보 두 사람으로 좁혀졌다. 두 후보 진영의 치열한 신경전이 지속되던 중 박 후보가 최종단일화 협상에 나섰다. 그리고 기나긴 산고 끝에 선거를 2주 앞둔 5월 19일 박 후보는 사퇴를 결정했다. 백낙청 서울대 교수 등 진보진영 원로인사들이 중재협상에 발 벗고 나서 이룩한 결과였다.
하지만 단독출마 결심이 확고했던 박 후보의 갑작스런 사퇴 선언을 의아해하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최근 박 교수가 곽 교육감으로부터 2억 원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지만 워낙 급작스레 진행된 단일화 과정 탓에 당시에도 의혹이 시선이 쏠렸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 진통 끝에 두 사람의 단일화가 성사되자 교육계 주변에서는 ‘두 후보 간에 돈거래가 있었다더라’ ‘곽 후보가 박 후보의 선거 비용을 보전해주기로 했다더라’ 등의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그렇다면 박 교수를 비롯해 당시 단일화 과정에서 탈락하거나 스스로 사퇴한 후보들은 이후 어떤 행보를 걸었을까. 우선 최종 단일화후보였던 박 교수는 현금 2억 이외에도 올해 서울시 교육청 자문위원으로 선출되면서 나름의 입지를 보장받았다.
1차 단일화 과정에서 탈락했던 이부영·최홍이 후보는 교육감 후보를 사퇴한 뒤 곧바로 지역구 교육의원 선거에 뛰어들었다. 두 후보는 진보진영에서 단일후보 지위를 보장받으면서 각각 제3 선거구(노원·중랑·도봉)와 제6 선거구(관악·구로·금천)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교육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최 후보는 현재 교육의원들의 수장에 해당하는 한국교육의원총회 의장직을 맡고 있다. 반면 이 후보는 진보진영 단일후보로 선출됐지만 선거에서는 낙선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진보진영은 곽노현 후보로 단일화에 성공해 선거정국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반면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경선 초반 12명의 예비후보가 난립하면서 결국 최종 단일화에 실패했다.
보수진영은 지난해 5월 6일 이원희 전 교총 회장, 김경회 서울시 부교육감, 김성동 전 교육과정평가원장, 김호성 전 서울교대 총장 등이 참여한 1차 후보단일화를 거쳐 이원희 후보를 선출했다. 하지만 보수진영에서 큰 파이를 갖고 있던 남승희 명지전문대 교수, 김영숙 덕성여중 교장이 단일화를 거부하면서 반쪽짜리 단일화로 전락했다. 이 와중에 1차 단일화에 참여했던 김성동 후보가 사퇴를 번복한 뒤 단독 출마를 강행해 단일화 의미를 더욱 퇴색시켰다.
결국 보수진영에서는 오성삼 건대 교수, 이경복 서울고 교장 등 중간에 사퇴하거나 사퇴 후 지역구 교육의원 선거로 발길을 돌린 정채동 교육위원 등을 제외하고 이원희, 남승희, 김영숙, 김성동, 이상진, 권영준 등 6명의 최종후보자가 난립하면서 자멸을 자초했다.
최종 당선자인 곽노현 후보와 2위를 기록한 보수진영의 이원희 후보와의 득표차는 1.1%에 불과했다. 보수진영의 남승희·김영숙 후보는 각각 10%를 상회하는 득표수를 기록하며 보수진영의 표를 분산시켰다. 결국 당시 서울시교육감선거는 진보와 보수 진영의 단일화 성패가 당락을 결정짓는 변수로 작용하고 말았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단일화 성공 진보진영 교육감들
바람몰이 6곳 당선
서울시교육감선거 외에도 각 지역 교육감 선거에서도 단일화에 성공한 진보진영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다. 12개 지역구 중 절반(6개)이 진보 교육감으로 채워졌다.
김상곤 후보와 장휘국 후보는 각각 경기도와 광주시 교육감선거를 앞두고 일찌감치 진보진영 단일후보로 추대되면서 무혈입성에 성공했다.
전북에서는 감승환 후보가 강승규·김의수 후보와의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교육감에 당선됐다. 전남의 장만채 후보는 고진형·박두규 후보와 막판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강원의 민병희 후보 역시 김인회 후보와 단일화해 대접전 끝에 보수진영 후보를 따돌렸다.
이 외에도 당시 단일화에 성공했던 진보진영 후보들은 부산과 인천 등 전통적으로 보수진영이 우세한 지역에서 선전을 펼치며 보수 후보들을 위협했다. 진보진영의 단일화 바람은 전국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분석됐다. [한]
바람몰이 6곳 당선
서울시교육감선거 외에도 각 지역 교육감 선거에서도 단일화에 성공한 진보진영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다. 12개 지역구 중 절반(6개)이 진보 교육감으로 채워졌다.
김상곤 후보와 장휘국 후보는 각각 경기도와 광주시 교육감선거를 앞두고 일찌감치 진보진영 단일후보로 추대되면서 무혈입성에 성공했다.
전북에서는 감승환 후보가 강승규·김의수 후보와의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교육감에 당선됐다. 전남의 장만채 후보는 고진형·박두규 후보와 막판 단일화에 성공하면서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강원의 민병희 후보 역시 김인회 후보와 단일화해 대접전 끝에 보수진영 후보를 따돌렸다.
이 외에도 당시 단일화에 성공했던 진보진영 후보들은 부산과 인천 등 전통적으로 보수진영이 우세한 지역에서 선전을 펼치며 보수 후보들을 위협했다. 진보진영의 단일화 바람은 전국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분석됐다. [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