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역사환경 보존 심의 안 받아” vs 건설사·지자체 “소급효금지원칙 위배”…1300 입주 예정가구 발동동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에서 왕릉뷰 문제가 불거진 곳은 대광이엔씨(시공 대광건영), 제이에스글로벌(시공 금성백조), 대방건설, 3개 건설사가 짓고 있는 아파트 19개 동이다. 입주 예정 가구는 1373가구. 지난해 7월 문화재청이 “김포 장릉 역사환경 보존지역에 있어 관련 심의를 받아야 했지만 건설사들이 이를 지키지 않았다”며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리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사적 제202호인 김포 장릉은 조선 인조의 아버지인 추존왕 원종과 부인 인헌왕후가 묻힌 무덤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조선 왕릉 40기 중 하나다. 조선 왕릉 40기는 단일 유산이 아닌 연속 유산이다. 즉, 논란이 불거진 19개 동으로 인해 김포 장릉이 세계문화유산에서 탈락하면 국내 모든 조선 왕릉이 세계문화유산 지위를 잃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행법상 문화재 반경 500m 이내에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아파트를 지으려면 문화재청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또 해당 구역에서 20m 이상 건축물을 지으려면 문화재청장의 개별심의를 받아야 한다. 검단신도시 4-1구역의 3개 아파트 단지 19개 동은 장릉에서 각각 213m, 375m, 395m 떨어져 있다.
문제는 이 법이 2017년 1월 강화됐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당시 반경 500m 이내에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20m 이상 건축물을 지으려면 문화재청장의 개별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현상변경 허용기준을 강화했고, 검단신도시 사업시행자였던 인천도시공사는 그보다 2년 5개월 전인 2014년 8월 이미 현상변경 허가를 완료한 상태였다.
검단신도시 주택건설 인허가권자인 인천 서구청 관계자는 “현상변경허가는 대물적 허가로 승계가 가능하다. 2017년 1월 문화재청 고시의 규제 내용을 적용해 다시 허가받게 하는 것은 법치국가원리와 소급효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소급효금지원칙은 새 법이 제정되기 전에 발생한 행위까지 거슬러 올라가 처벌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이다.
문화재청이 2017년 1월 단독고시한 현상변경 허용기준 강화 규정과 경기도 문화재 보호조례도 상충한다. 경기도 문화재 보호조례 제5조 1항 나에선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범위를 ‘주거지역은 문화재의 외곽경계로부터 200m 이내의 지역’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르면 19개 동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이 아닌 셈이다.
심지어 고시는 조례보다 하위 개념이다. 고시는 행정기관이 결정한 사항 또는 일정한 사항을 공식적으로 일반에게 널리 알리는 행위로 법규의 성질을 가지지 않는다. 조례는 지자체가 스스로 제정하는 법의 일종으로 지방의회의 의결을 통해 제정하는 자치규범으로서 법규의 성질을 가진다. 이와 관련, 금성백조 관계자는 “애초에 국토교통부에서도 경기도 조례에 따라 (문제가 된 4-1구역을 포함해) 검단신도시 개발 부지를 지정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시공사 측은 문화재청이 ‘건설사들이 문화재가 있는 걸 알면서 무분별하게 건설을 진행했다’고 한 부분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금성백조 관계자는 “문화재청은 금성백조, 대광건영, 대방건설이 민간 토지처럼 이용해 아파트를 지었다고 비판하는데 검단신도시 부지 매각 당시 현재 건설사들이 선정됐으며 그 과정에서 문화재가 있어 아파트를 짓는 데 한계가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2014년 시행자인 인천도시공사는 검단신도시 부지 매각 공고를 냈고 국내 많은 건설사가 참여했다. 건설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부지 매각 공고 등의 경우 전산 프로그램을 이용한 무작위 추첨, 일명 ‘뺑뺑이’ 방법을 활용해 신도시 공사 건설사를 선정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건설사들은 인천 서구청에서 준공 승인을 하면 예정대로 입주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금성백조의 ‘예미지트리플에듀’는 오는 6월, 대광건영의 ‘대광로제비앙’은 오는 8월, 대방건설의 ‘디에트르에듀포레힐’은 오는 9월이 입주 예정일이다. 대방건설 관계자는 “문화재청의 공사중지명령이 법원 판단대로 집행정지돼 현재 막바지 공사가 진행 중이고, 수분양자들이 입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금성백조 관계자는 “검단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인근에 초등학교, 중학교가 설립됐고 초등학교는 오는 9월 개교한다. 학교의 경우 공공주택에 몇 가구가 들어서는지에 따라 설립 여부가 확정되는데 만약 19개 동의 수분양자들을 받지 않고 (문화재청 말대로) 철거하면 학교도 없어져야 한다”며 “(인천 서구청에서) 준공 승인이 나면 예정대로 입주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준공승인을 관할하는 인천 서구청도 “시공사가 준공 승인을 신청하면 공사가 제대로 진행됐는지 등을 판단해 절차대로 준공 승인을 낼 예정”이라고 전했다.
문화재청은 입주가 이뤄져도 진행 중인 소송은 끝까지 이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보인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입주해도 건설사와 소송은 끝내지 않을 것”이라며 분개했다. 앞서 금성백조, 대광건영, 대방건설은 문화재청에 공사중지 명령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2심 법원은 건설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문화재청은 즉각 재항고했다.
건설사와 관할지역이 모두 입주를 진행하겠다는 뜻을 보이면서 수분양자들의 피해는 줄어들 전망이다. 다만 공사중지 명령 취소 소송의 대법원 판단이 나지 않은 상황이라 긴장은 늦출 수 없다고 수분양자들은 전한다. 문제가 된 아파트 입주 예정자협의회 관계자는 “문제가 하루 빨리 마무리되길 바라는 마음”이라며 “문화재청과 건설사 간 소송 결과와 함께 전·현직 문화재청장들에 대한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도 지켜볼 것”이라고 전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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