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풀기 위한 충동적 방화 많아…검거율 39.7%로 낮은 데다 처벌도 솜방망이
3월 5일 오전 1시 8분쯤 강원 강릉시 옥계면에서 시작된 불이 삽시간에 강릉과 동해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범인은 60세 남성 A 씨. 그는 2시간여 동안 가스 토치를 들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집을 포함해 빈집의 유리창을 깨고 농막 등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이날 주민의 신고를 받고 곧바로 A 씨를 체포했다. 체포 당시 A 씨는 가스 토치와 헬멧, 도끼, 부탄가스 등을 들고 있었다.
A 씨는 잡혔지만 불길은 잡히지 않았다. 화마는 강릉 옥계를 넘어 동해 일대까지 퍼져 인근 산림과 200여 동의 가옥 등 건물로 번졌고 110여 명의 주민이 대피했다. A 씨의 모친도 산불을 피하는 과정에서 숨졌다. 90시간 만에 꺼진 불이 집어삼킨 산림은 4000ha(헥타르). 축구장 약 5600개 규모다.
경찰은 8일 A 씨를 현주건조물방화와 일반건조물 방화, 산림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주민들이 오랜 기간 자신을 무시해 범행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 등을 감안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산림청은 산림보호법에 따라 이번 사건을 엄중히 다스리겠다고 밝혔다. 산림보호법 제53조에 따르면 산림보호구역에 불을 지른 자는 7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자기 소유의 산림에 불을 지른 경우에도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벌금형은 없으며 오로지 징역형만 규정한다. A 씨의 경우 특별법 우선원칙에 따라 산림보호법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한 해 평균 발생하는 474건의 산불 가운데 상당수는 범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검거한다고 해도 실제 처벌 수위는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산불 620건 가운데 검거한 가해자는 246명으로 검거율은 39.7%에 그쳤다. 산불 원인 중 가장 많은 것은 입산자의 실화로 지난해 발생한 산불 가운데 217건이었다. 하지만 실화자 중 검거된 경우는 32명(14.7%)에 불과했다. 또, 담뱃불이 원인이 된 산불 75건 가운데 원인 제공자가 붙잡힌 경우도 17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거율이 22.7%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산속에는 폐쇄회로(CC)TV가 거의 없을 뿐더러 목격자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은 까닭이다.
실수로 불을 내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는 조항이 있지만, 실제 판례를 살펴보면 기소유예나 벌금형의 처분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실화의 경우 방화보다 범인을 찾기도 더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방화의 경우 재범 확률이 높은 편이다. 의정부지방법원은 2020년 5월 포천시 한 야산에 불을 지른 B 씨에게 징역 3년 6월을 선고했다. B 씨는 전화 통화를 하다가 화가 난다는 이유로 타인 소유의 야산 다섯 군데를 돌아다니며 불을 지른 혐의를 받았다. 그런데 B 씨는 2016년 부친의 집에 불을 질러 징역 2년 6월을 선고 받고 복역한 바 있다. 법률상 처단형의 범위는 징역 2년 6월부터 최대 22년 6월이었으나 법원은 징역 3년 6월 선고했다.
방화범들은 개인적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불을 지르거나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대검찰청 ‘2021 범죄 분석’ 통계에 따르면, 2020년에 발생한 방화사건은 총 1210건이었다. 방화범의 83.9%는 남성이었으며 연령별로는 ‘51~60세’가 29.7%로 가장 많았고, ‘41~50세’(21.8%)와 ‘61세 이상’(15.9%), ‘31~40세’(12.4%)가 그 뒤를 이었다.
범행 동기는 ‘우발적’이라는 대답이 44.6%로 전체 절반에 달했다. 말 그대로 홧김에 혹은 충동적으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질렀다는 것이다. 이어 ‘기타’(20.8%), ‘미상’(15.6%), ‘현실불만’(7.0%), ‘가정불화’(5.3%), ‘호기심’(2.8%) 순이었고, 실화에 해당하는 ‘부주의’(1.9%)는 순위가 가장 낮았다.
실제로 2020년 3월 취업 문제로 부모님과 다툰 C 씨는 이후 분풀이를 위해 전라남도 여수시 한 임야에 미리 준비해 간 터보라이터와 가스라이터로 총 6번에 걸쳐 불을 질렀다. 같은 달 대전의 D 씨는 아내와 다툰 뒤 화가 난다는 이유로 충청남도 논산의 한 임야에 불을 질러 약 4500만 원의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광주지방법원과 대전지방법원은 2020년 5월과 10월 두 사람에게 각각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초범이라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산불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겨울철과 봄철의 경우에는 산불 위험이 높은 산림에 일반인의 출입을 막는 등 적극적인 대응과 동시에 관련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림청도 산불 원인자에 대한 검거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산림청은 봄철의 경우 전체 산림의 약 30%인 222만 ha를 입산통제구역으로 지정해 놓고 있으며 위반자 단속을 철저히 하고 산림보호법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산속에서의 취사나 모닥불을 피우는 행위와 담뱃불에 의한 산불, 불법 소각에 의한 산불 등을 감시하기 위해 드론을 대거 동원하기로 했다.
한편, 4일 발생한 울진 산불은 삼척 동해안으로 퍼져 8일째 진화 작업을 펼치고 있다. 경찰 등은 담배꽁초에서 발화한 것으로 보고 용의자를 찾고 있다. 최초 발화는 한적한 도로 옆 배수로에서 시작됐는데 배수로 안쪽은 물이 메말라 있었고 불 탄 나뭇가지와 낙엽이 남아있었다. 산림청은 경찰의 도움을 받아 메마른 배수로에 담배꽁초가 떨어져 발화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CCTV를 확인했고, 10일 발화 지점 인근을 지난 차량 4대의 번호와 차종을 파악한 데 이어 차주 주소지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산림청은 앞으로 합동감식 등을 통해 용의자가 특정되면 경찰 등 관련 기관에 수사를 의뢰할 방침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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