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신문이 보도한 BMW 미니 쿠페의 ‘차체 뒤틀림’ 흔적들. 배경은 모터쇼장 모습. |
흠집 제거를 위해 시행한 간단한 도색에서부터 뒤틀린 차체교정, 심하게는 보닛교체까지 해 새 차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수입차들이 버젓이 새 차로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소비자 입장에서 제품의 하자를 입증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제기된 불량수입차 논란 실상에 대해 추적해봤다.
<일요신문>은 1007호 ‘BMW 사고차량 출고 논란’ 제하의 기사를 통해 불량 수입차 피해사례를 보도한 바 있다. 당시 기사를 통해 언급된 피해소비자는 최 아무개 씨다. 그는 지난 8월 6일 BMW 미니쿠페를 구입한 뒤 큰 피해를 겪은 바 있다. 장마철이 되자 차 천장에서 비가 계속 샜고, 공업사에 의뢰한 결과 차체 뒤틀림과 도색 흔적 등 사고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당시 최 씨는 BMW의 공식딜러인 ‘바바리안 모터스’ 측과 사고이력 여부를 두고 진실게임을 벌였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양측의 불량 수입차 논란은 지금까지도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소비자 입장에서 공식적으로 제품의 하자를 입증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었다.
당시 <일요신문>은 피해자 최 씨의 한 사례만을 보도했었다. 그런데 최근 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최 씨 이외에도 불량 수입차로 인한 피해자들이 수두룩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지난달과 올 초 <SBS뉴스>는 불량 수입차로 인한 소비자들의 피해실상을 두 차례에 걸쳐 보도했다. 수입차 시장의 전반적인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방송을 통해 소개된 윤 아무개 씨의 사례는 앞서 최 씨의 사례와 매우 비슷한 경우였다. 윤 씨는 최근 볼보에서 5000만 원을 주고 수입차를 구매했다. 그런데 보닛의 색깔이 다른 부분과 확연하게 구분됐다. 최 씨와 마찬가지로 윤 씨의 차 역시 일부 도색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볼보 측은 도색이력을 인정했지만 제품엔 하자가 없다며 교환 및 피해 보상을 거부했다. 최 씨와 마찬가지로 수입차 업체로부터 제대로 된 보상 및 교환 서비스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방송을 통해 소개된 황 아무개 씨의 사례는 더욱 심각했다. 지난해 그는 1억 5000만 원 상당의 벤츠 세단을 구입했다. 그런데 올해 성능 검사 차 찾은 공업사에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그의 차 보닛이 한 차례 교환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보닛 패널은 신차의 것과 다른 종이었고, 볼트에는 조여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업체는 보닛교환을 인정했지만 역시 고지의무가 없다며 보상을 거부했다.
이러한 수입차 업체들의 행태는 소비자 입장에서 뻔뻔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일요신문>과 <SBS뉴스> 보도 이후 실제 국토해양부 산하의 차량검증기관인 (사)한국자동차진단보증협회(보증협회)에는 불량 수입차에 관한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불량 수입차로 인한 피해자가 전국에 수두룩하다는 방증이다.
기자와 통화한 보증협회 언론·홍보담당 주성진 씨는 “불량 수입차 논란에 관한 언론사들의 보도 이후 우리 협회에 진단의뢰를 문의하는 소비자들의 전화가 폭주했다. 오전부터 퇴근까지 거의 업무가 마비되는 수준이다. 불량 수입차로 인한 피해 소비자들이 전국에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보도 이후 기자와 통화한 또 다른 피해고객 정 아무개 씨는 “보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나도 5년 전에 BMW 차량을 구입한 적이 있다. 당시 내 차량에도 도색흔적과 바퀴 축 뒤틀림, 내부 옵션 모니터 이상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견됐다. 당시 별 다른 피해보상도 받지 못하고 차를 다시 넘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무척 억울한 일이다. 나와 같은 피해자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보증협회 관계자는 “사실 불량 수입차 문제는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언론보도를 통해 최근 논란으로 번지고 있을 뿐 과거에도 소비자들의 피해사례는 꾸준히 있었다”고 말했다.
기자와 통화한 수입차 전문 공업사 관계자 역시 “불량 수입차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업계에서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수입차는 국산차와 다르게 장기간의 운반과정을 거친다. 현지 포트에서 국내 포트로 오는 과정뿐만 아니라 포트에서 판매점으로 오는 과정도 험난하다. 특히 포트에서 차를 내리는 과정에서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직접 사람이 운전해서 차를 내리기 때문에 자칫 교통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대부분 포트에 위치한 센터에서 간단한 도색부터 보닛 등 일부 부품을 교환하기까지 한다. 원칙상 사고이력을 남겨야 하지만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며 불량 수입차 유통과정의 은밀한 비밀을 털어놨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도색이나 보닛교환 등 생산 이외의 과정에서 제품의 하자를 교정할 경우 판매자는 소비자에게 반드시 고지할 의무가 있다고 한다. 이럴 경우 전시차량과 마찬가지로 고객에게 일부 금액을 할인해 주는 등 제품 하자에 따른 나름의 혜택을 보장해줘야 한다. 만약 판매자가 제품의 하자를 고객에게 고지하지 않을 경우 이에 따른 적절한 피해보상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소비자가 대형 수입차 업체를 상대로 피해를 제대로 보상받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앞서 피해자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업체가 제품의 하자를 인정한 경우에도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공업사 관계자는 “냉정하게 말하자면 일개 소비자가 대형 수입차 업체를 상대로 적절한 보상을 받기란 매우 어려운 문제다. 상당수 업체들은 대부분 버티기로 일관한다. 제품의 하자가 있어도 고지하지 않을 경우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지만 소비자가 제품의 하자를 직접 검증해야 한다. 쉽지 않다. 전문적인 검증기관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공업사들도 수입차 업체들의 눈치를 보는 입장이라 나서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보증협회 관계자는 “우리 협회는 차량을 검증하는 업무를 맡고 있지만 이는 자문업무일 뿐이다. 법적효력이 있는 공식자료를 소비자에게 발급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는 불량 차량들을 공식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자동차 진단평가사’ 양성을 추진하고 있다. 불량 수입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자동차 진단평가사 양성계획을 수립하고 수입차 업체의 유통과정과 소비자보호책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