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문화재 궁장 권무석 선생 집안은 대대로 활방을 운영하며 국궁을 제작하고 있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최종병기 활>은 박해일, 류승룡과 같은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실제 영화를 이끌고 있는 진정한 주인공은 ‘활’이라는 평가다. 호란이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 펼쳐진 단순명료한 추격전. 그 추격전 안에는 기존 활극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생소한 ‘활 액션’이 농도 깊게 그려진다. 세간에서는 영화의 성공가도와 맞물려 우리 ‘국궁’에 대한 관심이 벌써부터 뜨거워지고 있다. 국궁은 수천년에 걸쳐 내려오고 있는 우리의 전통 궁술이다.
인간문화재 궁장 권무석 선생은 집안 대대로 활방을 운영하며 국궁을 제작하고 있다. <일요신문>은 궁장 권무석 선생의 활방을 직접 찾아갔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자 최근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국궁’의 숨겨진 비밀에 대해 자세히 살펴봤다.
영화 <최종병기 활>의 흥행열풍이 극장가를 휘몰아치고 있는 요즘, 국궁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나도 한번쯤 영화 속 ‘남이’(박해일 분)처럼 궁사가 되어 활시위를 당겨보고 싶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기자는 지난 9월 2일 서울 종로구 와룡동에 자리 잡은 궁장 권무석 선생(68·서울무형문화재 23호)의 활방 ‘국궁원’을 찾았다. 권 선생의 집안은 대대손손 국궁을 만들어 온 궁장 가문이다. 그는 예천 관아에 활을 납품하던 궁장 권계항 선생의 12대손이다. 아들 권오정 국궁원 대표(34) 역시 1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기자가 활방을 찾았을 때도 권 선생은 국궁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국궁은 영화 속 주인공 남이가 쥐고 있던 그것과 흡사했다. 10대 때부터 활을 다뤄온 권 선생은 인터뷰 내내 국궁의 우수성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우리 민족은 예전부터 동이족(東夷族)이라고 불렸다. 사실 동이족은 동쪽 오랑캐를 뜻하는 게 아니다. 동쪽에 사는 ‘큰 활(夷)’을 쏘는 민족이라는 뜻이다. 고구려 주몽부터 고려의 왕건, 신숭겸, 조선의 이성계까지 명궁의 계보가 이어지는 우리 민족은 활의 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로 우리는 명궁의 민족이다. 권 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은 예로부터 창(槍)을 중시했고, 일본은 검(劍)을 중시했으며, 조선은 활(弓)을 중시했다고 한다. 활은 끊어질듯 휘어지는 부드러움을 통해 강함을 드러낸다. 한민족의 성격과도 일맥상통한다.
역사 속 국궁은 끊임없는 외침에 맞선 우리의 진정한 최종병기였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국궁은 조선 병사들의 최종병기였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의 대결에서 활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혹자는 ‘포’를 말하지만 왜적의 주요 무기인 조총에 맞섰던 것은 분명 활이다. 조총의 사거리가 100m에 불과했지만 조선의 활은 140~150m를 넘었다. 특히 이순신 장군은 접근전을 피해 장거리에서 왜적의 목함을 불화살로 공격하는 기술을 잘 사용했다. 활은 명중률과 사거리, 연발능력을 따지면 조총을 능가하는 당대 최고의 무기였다. 조선의 활 제작술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뛰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권 선생의 주장처럼 당대 조선의 활 제작술은 주변국의 그것과 비교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당시 일본과 명·청 역시 활을 사용했지만 기술적으로 크게 뒤떨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조선의 국궁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국궁은 주변국의 활보다 훨씬 복잡한 단계를 거쳐 만들어진다. 그 제작술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국궁은 보통 물소뿔이 사용되기 때문에 각궁으로 불린다. 뽕나무, 물푸레나무(혹은 도토리), 대나무 등 각 부위에 맞는 다양한 나무가 사용된다. 활 안에는 쇠힘줄이 겹겹이 들어간다. 겉에는 물소뿔이 덧대어져 있다. 이 쇠힘줄과 물소뿔이 우리 국궁의 비밀이다. 쇠힘줄과 물소뿔은 아무리 당겨도 휘어지되 끊어지지 않는 강한 탄성을 갖고 있다.”
실제로 우리 국궁 안에는 쇠힘줄이 겹겹이 들어있다. 활 겉에는 다시 물소뿔이 덧대어진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유의 재료다. 엄청난 사거리를 자랑하는 국궁의 비밀 속에는 쇠힘줄과 물소뿔의 탄성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당시 청나라는 조선의 조공 중 국궁을 제일 먼저 꼽았다고 한다.
또한 국궁은 군사적 목적뿐 아니라 민간에서 널리 행해지던 스포츠였다고 한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나라가 국궁을 장려하면서 활터가 늘어났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스포츠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특히 운동 안하기로 유명한 조선의 사대부들도 유일하게 즐겼던 스포츠로 각광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한양 안에만 활터가 40개가 넘었다. 양반 사대부부터 남녀노소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즐기는 스포츠가 국궁이었다. 조선의 왕들도 궁 가까이 활터를 만들어 활시위를 당겼다.”
조선의 찬란한 국궁 문화는 일제의 말살정책으로 한때 큰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궁장들과 궁사들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명맥을 어렵게 이어오고 있다. 예전보다 활터와 궁사들이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전국에는 3만여 명의 국궁 마니아들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그렇다면 국궁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권 선생은 제일 먼저 예의를 중시하는 국궁 고유의 정신을 꼽았다. 그는 “예전 활터에서는 ‘구계훈’이라는 궁도범절이 중시됐다. 과녁을 맞히는 것보다 상호간 예를 중시했다. 또한 활터에는 10대 청소년부터 80대 노인까지 어울려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예절교육이 병행됐다”고 말했다. ‘나’를 갈고 닦는 수단이라는 의미다.
또한 국궁은 생각 외로 운동량이 많다. 기자가 활시위를 당겨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팔은 물론 온몸에 엄청난 힘이 들어갔다. 권 선생은 “활은 많은 힘이 소요된다. 또 활은 호흡의 운동이다. 호흡을 하는 동안 자연스레 내장이 아래위로 움직인다. 위장병 예방에는 물론 활 탄성에 따른 전신 진동효과로 혈압에도 큰 도움이 된다. 현대인의 스포츠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국궁은 재도약기에 있다. 권 선생은 오래전부터 경찰대학, 육사 등에서 국궁교육을 실시하며 대중화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정부는 국궁을 ‘향토핵심지원사업’으로 지정해 국궁의 대중화와 글로벌화를 위한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머지않아 우리의 국궁이 태권도처럼 세계를 호령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여궁사 활약 진짜 변화구 화살 가짜
<일요신문>은 궁장 권무석 선생의 아들 권오정 국궁원 대표의 조언을 통해 영화 <최종병기 활>의 허구와 진실을 파헤쳐봤다.
▲ 주인공 박해일의 동생으로 나오는 문채원은 여자임에도 뛰어난 궁술을 자랑한다. |
영화 속에서는 조선의 궁사 남이(박해일 분)와 만주족의 궁사 쥬신타(류승룡 분)가 각 민족을 대표하며 대립각을 세운다. 실제 영화 속에 사용된 활은 국궁과 청궁의 개량 활이었다. 영화에서 만주족과 조선은 궁술에 있어서 마치 대등한 실력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궁술은 만주족을 월등히 앞섰다고 한다. 만주족이 범접할 수 없는 뛰어난 활 제작술은 물론 임진왜란 이후 대중화된 활터 문화 속에 남이와 같은 신궁들은 수두룩했다는 것이다. 권 대표는 “영화에서 청과 조선의 궁술 실력이 비등하게 그려지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조선의 궁술은 당대 최고였다. 조선의 무과 시험 8개 과목 중 6개 과목이 궁술로 채워졌을 정도다”고 말했다.
▲‘여성 궁사 문채원’ 조선시대 규수들도 활을 쐈을까
영화에서 박해일의 동생으로 나오는 문채원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궁술을 자랑한다. 과연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여성 궁사들이 있었을까. 보수적인 조선시대 아녀자들이 활을 잡을 수나 있었을까.
놀랍게도 조선시대 많은 양반집 규수들이 활을 즐겼다고 한다. 운동 중에서 유일하게 여성들이 남성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스포츠가 바로 활이었다. 영화 속 문채원처럼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여자 궁사들이 역사 속에서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나무를 통째로 날리는 공포의 화살 ‘육량시’ 실존했나
영화 속에서 만주족 수장 쥬신타로 분한 류승룡은 ‘육량시’라고 하는 공포의 화살을 사용한다. 그 힘은 나무 하나가 통째로 박살나는 정도다. 과연 공포의 화살 ‘육량시’는 존재했을까.
실제로 육량시는 있었다. 조선의 문헌에 따르면 육량시의 무게는 무려 220g로 일반 화살이 20~30g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무게였다. 그 만큼 다른 화살에 비해 가공할 만한 힘을 자랑했다. 무게 때문에 아무나 다룰 수 있는 화살도 아니었다.
▲활시위를 비틀어 쏘면 변화구처럼 화살이 휠까
많은 관객들이 영화에서 가장 놀랍게 본 장면은 화살이 야구공의 변화구처럼 휘어서 날아가는 장면일 것이다. 박해일은 이러한 변화구 화살을 쏘기 위해 활시위를 비틀어 쏜다. 마치 야구 선수들이 변화구를 던지기 위해 공을 비스듬히 채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다. 실제 화살은 상하곡선으로 날아간다. 간혹 자세가 나쁠 경우 화살이 흔들리기는 하지만 영화 속 화살처럼 좌우방향으로 꺾이지는 않는다. 영화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픽션을 가미한 것이다. 다만 궁사들이 화살의 비거리를 높이기 위해 활시위를 비트는 기술은 존재한다고 한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