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일선 산업현장의 피해가 막대하다. 국내 주요 전자공업단지로 손꼽히는 대구 지역의 산업단지들은 현재 피해규모를 산출하고 있다. 1400개의 업체가 들어서 있는 서대구 공단의 경우 현재(9월 16일 기준)까지 입주업체의 80% 가량이 정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전자업체가 몰려있는 대구 검단 산업단지의 경우도 입주업체의 60~70%가 피해를 본 것으로 전해진다. 청주 산업현장의 경우 현재까지 20억 규모의 피해가 난 것으로 산정되고 있다.
양식어민들의 피해도 심각하다. 올해 2월, 기록적인 폭설로 인해 한 차례 큰 피해를 입었던 강원도 강릉 양식단지 내 양식어민들은 이번 정전으로 인해 또다시 직격탄을 맞았다. 정전 시간은 불과 30분이었지만 양식장 내 산소 공급이 전면 중단되면서 물고기들이 집단 폐사한 것이다. 광어를 양식하고 있는 한동수산의 경우 삽시간에 넙치와 광어 1만 4000여 마리가 집단 폐사하면서 1000만 원이 넘는 피해를 입게 됐다. 해안가 횟집들 역시 산소공급 중단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횟집촌에는 산소공급이 중단됨에 따라 손으로 물바가지를 퍼나르는 기이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도심지에서도 정전으로 인한 피해가 곳곳에서 목격됐다. 신호등 작동이 중단되면서 한때 교통이 마비되는가 하면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들이 장시간 공포에 떨기도 했다. 사무실 내에서는 작업 중이던 데이터가 통째로 날아가는 정보사고도 잇따라 터져 나왔다. 산업 현장이나 양식장처럼 정전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지는 않았지만 소소한 피해와 정신적 피해를 계산하면 상당한 피해금액이 산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은 이번 정전사태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대해 집단소송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9월 16일부터 한국전력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에 착수했다. 경실련은 성명서를 통해 “이번 단전사태로 인해 피해를 본 국민이나 기업을 대상으로 정신적·경제적 피해에 대한 구제절차의 마련과 적정한 보상 역시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으며 현재 집단소송을 위한 피해자들의 사례를 접수하고 있다.
경실련 이외에도 많은 네티즌들이 집단소송을 위한 피해 정보를 교류하며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피해자들이 한전으로부터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행 ‘한국전력 전기공급약관’에 따르면 전력 공급 중단으로 피해가 발생해도 한전의 직접적인 책임이 아니라면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명시돼 있다. 한전이 알아서 보상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라는 해석이다. 한전의 책임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피해 보상액은 전기공급 요금의 최대 3배에 불과하다. 5시간 동안 한 가구의 전기 공급이 끊긴다 해도 받을 수 있는 피해보상액은 불과 800원이다.
현재 한전은 원칙상 피해보상 의무 규정에 대해 명확히 선을 그으면서도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자체적으로 배상계획에 대한 검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의 원인이 한전의 ‘사전 매뉴얼 무시’로 파악하고 있어 민사소송 절차를 통한 피해보상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