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의 구명로비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로비스트 박태규 씨가 지난 8월 31일 밤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구치소로 이송되고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의 칼날이 심상치 않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신변을 확보한 검찰은 또 다른 정관계 인사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김 전 수석은 거물브로커 박태규 씨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이후 구속된 첫 번째 고위급 인사라는 점에서 소문만 무성했던 ‘박태규 리스트’의 실체가 수면위로 드러날지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정치권 주변에서는 여야 거물급을 포함해 정치인 10여 명이 ‘박태규 리스트’에 오르내렸지만 아직까지 검찰에 소환된 정치인은 없었다. 검찰은 리스트에 거론된 인사들 외에도 박 씨와 친분이 두터운 정관계 인사들을 파악하고 혐의 입증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실제로 <일요신문> 취재결과 박 씨는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 등 정관계 인사는 물론 법조계 거물급 인사들과도 자주 접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 씨가 이들 인사들을 상대로 ‘퇴출저지’ 청탁이나 로비를 펼쳤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고위층 인사들은 박 씨와 접촉한 사실만으로도 적잖은 구설에 오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안 전 대표 등 새로운 거물급이 등장하면서 새 국면을 맞고 있는 ‘박태규 리스트’ 수사와 맞물린 박 씨의 막강 파워인맥을 들여다봤다.
“박 회장(박태규 지칭)이 안상수 전 대표와 골프라운딩을 하는 등 수차례 접촉한 사실이 있다.”
최근 몇 년간 박 씨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다는 측근 A 씨가 기자에게 전한 말이다. 9월 20일 기자와 만난 A 씨는 박 씨와 안 전 대표가 수차례 접촉한 사실을 비롯해 박 씨가 접촉했던 정관계 및 법조계 거물급 인사들의 실명을 털어놨다.
A 씨는 “박 회장은 안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 언론인들의 모임에 안 전 대표를 초대하는 형식으로 처음 만난 이후 수차례 접촉을 했다”며 “박 회장과 안 전 대표가 골프회동을 한 것도 정확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A 씨는 특히 “두 사람은 주로 광화문에 소재한 J·M 한정식과 강남 경복아파트 사거리 인근의 H 일식집에서 만남을 가졌다. 안 전 대표와의 회동 자리에서 안 전 대표의 측근인 J 씨가 가끔 동석했다”며 구체적인 장소와 정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언론인 출신인 J 씨는 지방자치단체 정무부지사를 역임한 뒤 올 2월 안 전 대표의 특보로 임명되기도 했다.
A 씨에 따르면 한나라당 대표 재임시절 잦은 설화와 구설에 시달렸던 안 전 대표는 언론계에 막강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박 씨를 통해 ‘기사 축소’ 등 대언론 청탁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지난 1월 5·18 묘지를 방문한 안 전 대표가 묘지 상석을 밟아 파문이 일었을 때 박 회장과 전화통화에서 언론의 관심을 줄여달라고 부탁하는 말을 똑똑히 들었다”며 “박 회장은 안 전 대표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는 등 상당히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도 지난해 5~6월께 안 전 대표가 서울 시내 모처에서 박 씨와 몇 차례 접촉한 정황을 잡고 박 씨를 상대로 접촉 사실 및 청탁 여부 등을 집중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기자는 9월 21일 안 전 대표의 입장을 듣기 위해 의원회관으로 전화를 해 해명을 요구했지만 답변이 없었다. 이후 23일 다시 해명을 요구했으나 안 전 대표 측은 “의원님이 어제(22일) 해외국감 일정으로 출국을 한 관계로 부득이하게 입장을 내놓지 못할 것 같다”고 밝혔다.
김문수 경기지사도 박 씨와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다. A 씨는 “구체적인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박 회장이 지난해 서울시내 K 호텔에서 김 지사와 언론인들의 회동을 주선한 바 있고, M 한정식에서는 안 전 대표와 김 지사의 회동을 주선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기자는 김 지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끝내 답변을 하지 않았다.
지난 3월 안상수 대표(오른쪽)가 자서전 출판기념회에서 김문수 지사와 만나고 있다. 유장훈 기자
법조계 거물급 인사들도 박 씨와 접촉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A 씨는 “작년 가을에 박 회장이 법조계 인사들과 2박3일 일정으로 제주도 골프회동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내가 직접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었다”고 밝혔다. ‘당시 골프회동에 참석한 인사들이 누구냐’는 기자의 질문에 A 씨는 “K 전 장관과 유명 법무법인 대표인 J 변호사, 안 전 대표의 특보를 지낸 J 씨, 그리고 현직 검사 1명이 참석한 걸로 기억하고 있다”고 답했다.
기자는 이들 인사들에게 박 씨와의 제주도 골프회동에 대해 사실을 확인하고자 여러 통로를 통해 해명을 요구했지만 K 전 장관만이 연락을 해 왔다. 9월 21일 기자와 통화한 K 전 장관은 “터무니 없는 얘기다. 장관까지 지낸 내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결례다”며 매우 불쾌해 했다. 기자가 ‘박 씨를 알고는 있느냐’고 묻자 K 전 장관은 “조금은 안다. 하지만 알고 모르고를 떠나 골프회동은 터무니 없는 얘기니깐 사실 여부를 잘 파악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A 씨는 또 “박 회장은 지난 4월 강원도지사 보궐선거 때 엄기영 후보와 2~3차례 접촉한 바 있고, 지난해 11월 G20 정상회의 때는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B 씨와도 접촉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A 씨의 폭탄 증언이 어디까지 진실이고 또 그들이 골프회동 때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 만남이 로비가 목적이었는지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일부 인사들은 정말 언론인들과의 만남에서 자리를 함께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러나 김두우 전 수석의 수사가 탄력을 받으면서 ‘박태규 리스트’가 재부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A 씨가 폭로한 새로운 인사들에 대한 수사 또한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검찰은 김양 부산저축은행 부회장(구속)이 “박 씨가 정·관계 로비 대상자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거액의 로비자금을 받아갔다”는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검찰은 박 씨가 김 부회장으로부터 정관계 및 금융당국 고위 인사들을 상대로 부산저축은행 퇴출을 저지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지난해 4~10월 10차례에 걸쳐 17억 원을 받은 혐의로 9월 16일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김 부회장의 진술을 토대로 박 씨의 측근들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해 조사하는 한편 서울 청담동 자택 주변 고깃집과 박 씨가 자주 이용했던 음식점의 매출전표를 확보해 구체적인 로비대상을 추려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마무리짓기 위해 핵심 참고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A 씨를 소환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A 씨는 “검찰에 출두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내가 출석해서 박 회장이 접촉했던 정관계 고위인사들을 폭로할 경우 사건은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검찰이 내 진술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수사를 할지도 의문이다. 또한 박 회장이 만난 사람들이 모두 로비의 대상이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박씨 귀국 전 증거 은닉? “포터 두 대로 물증 싹 치워” 검찰이 박 씨의 거주지 두 곳을 압수수색하기 전에 이미 박 씨가 증거가 될 만한 물건들을 모두 빼돌렸다고 A 씨는 전했다. 당시 박 씨는 캐나다 밴쿠버에 머무르고 있었다. 캐나다 밴쿠버는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그의 둘째아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A 씨에 따르면 박 씨는 귀국하기 일주일 전쯤에 국내로 전화를 해서 포터 두 대를 이용해 의심을 살 수 있는 물건들은 사전에 모두 치웠다고 한다. A 씨는 “당시 박 회장이 국제전화로 ‘모두 갖다 버려라’고 해서 치웠고 포터 두 대가 동원됐다”고 전한 뒤 “귀중품들이라 버리지 않고 다른 곳에 보관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의심이 가는 장소 한 곳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A 씨는 박 씨의 활동에 대해서 가족들도 잘 몰랐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검찰은 자진출두한 박 씨의 큰아들을 조사했지만, 특별한 소득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는 박 씨의 평소 언어습관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A 씨에 따르면 박 씨는 대화를 하거나 통화 중엔 상대의 풀네임을 거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대화 중의 인물에 대해서는 항상 ‘김’ ‘박’ ‘안’ 등 성 씨만 거론해서 상대를 알리고 이름이나 직책을 언급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로비 상대와 대화를 나눌 때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지켰다고 한다. 따라서 측근은 물론 가족들도 박 씨가 바깥에서 누구를 만나는지를 정확히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게 A 씨의 전언이다. [홍] |
박씨와 언론 커넥션 개봉박두 검찰 언론인 4~5명 ‘조준’ 거물 로비스트인 박태규 씨는 정관계는 물론 언론 법조 연예계 등 사회지도층 전반에 막강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박 씨는 ‘언론계 마당발’로 불릴 정도로 언론인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박 씨는 유력 언론인과의 막강 인맥을 통해 정관계나 재계 법조계 인사들과의 인맥 형성을 도모했던 것으로 <일요신문> 취재결과 드러났다. 실제로 박 씨가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와 김문수 경기지사를 접촉할 수 있었던 것도 언론인 모임과 연결돼 있었다. 박 씨는 자신과 친분이 두터운 언론인들과의 모임을 주선한 뒤 안 전 대표와 김 지사를 초청하는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두 사람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박 씨가 정관계 및 법조계 인사들을 접촉할 때 동행했던 J 씨 또한 언론인 출신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박 씨가 언론계 인맥을 동원해 어떤 식으로든 로비에 활용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박 씨의 ‘언론 커넥션’ 실체를 은밀히 파헤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팀은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4~5명이 박 씨의 로비 행각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을 포착하고 사실관계를 파악 중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박 씨와 언론인 간의 커넥션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당시 이귀남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박 씨와 언론계 출신 전·현직 청와대와 정부 고위 인사들의 관련성에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지낸 김두우 전 수석을 비롯해 동아일보 정치부장을 지낸 이동관 대통령 언론특보, 주간조선 편집장 출신인 신재민 전 문화관광부 차관 등의 실명을 거론하며 박 씨와 아는 사이라고 주장했다. 박 씨의 측근인 A 씨는 “박 회장은 오랫동안 언론사 사장들은 물론 방송국 보도국장과 신문사 편집국장 등과 교류하면서 끈끈한 친분을 유지해 왔다”며 “이들 언론인들 모임에 실세 정치인들을 참석시키는가 하면 가끔 골프회동도 주선했다”고 전했다. 박 씨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의 칼날이 서서히 언론계를 겨냥하고 있는 형국이다. 박 씨와 친분이 있는 언론인들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