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청계재단에 기부한 영포빌딩. 청계재단은 이 빌딩 101호에 입주해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 대통령 차명보유 논란이 일었던 다스의 자회사 ‘홍은프레닝’과 주소지가 같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그런데 청계재단이 들어오기 전 ‘홍은프레닝’이라는 회사가 먼저 이 사무실을 쓰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홍은프레닝은 ‘로열패밀리’들이 대주주로 있는 다스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자회사다. 다스는 2003년 대원프레닝을 인수, 홍은프레닝으로 이름을 바꾸고 이 대통령 고려대학교 동기인 안순용 씨를 대표이사로 내세웠다. ‘MB 집사’ 김백준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이 회사 감사로 근무한 기록도 있다.
2007년 대선에서 뉴타운 개발과 관련해 특혜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던 홍은프레닝은 2008년 3월부터 고 김재정 씨가 대표를 맡았다. 또한 2009년 3월엔 강동구 성내동에 있던 사무실을 영포빌딩 101호로 옮겼다. 지난해 2월 김 씨가 사망하자 그의 부인 권 아무개 씨가 홍은프레닝 대표직을 이어받았다. 권 씨는 남편이 가지고 있던 다스 지분 48.99% 중 청계재단에 상속된 5%를 제외한 43.99%를 물려받기도 했다.
청계재단이 영포빌딩에 입주할 당시 7개월 먼저 들어온 홍은프레닝은 ‘개점휴업’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언급한 빌딩 관리인은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집기들이 먼지가 쌓여 있었다”고 털어놨다. 청계재단이 영포빌딩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것도 사실상 비어있는 사무실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 처남댁인 권 씨 측과 마찰음이 들렸다고 한다. 병세가 위중한 남편을 대신해 홍은프레닝을 맡고 있던 권 씨가 사무실을 청계재단에 내어주게 되자 ‘불만’을 토로했다는 것이다. 권 씨 사정에 밝은 한 여권 관계자는 “(권 씨가) 재기를 모색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사무실마저 빼앗기는 상황이 되자 섭섭한 감정을 가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렇다고 딱히 별 수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이 대통령 측에) 의사 표시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현재 부동산 등기부상 청계재단과 홍은프레닝 주소지는 같다. 그러나 지난 9월 22일 직접 영포빌딩을 방문해 본 결과, 건물 어디에서도 홍은프레닝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주소만 같을 뿐 청계재단이 사무실을 독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영포빌딩 근방 음식점에서 주차 관리를 하고 있다는 한 40대 남성은 “기부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끼리는 ‘MB 빌딩’이라고 부를 만큼 이 건물이 대통령 소유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1층엔 대통령 재산으로 운영되는 재단이 사용하는 사무실이 있다고 소문이 나 있다”면서 “홍은프레닝이라는 회사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101호 사무실은 거의 블라인드가 처져 있어 뭘 하는 곳인지 정확히 모른다. 안에서 근무하는 사람을 제외하곤 외부 손님도 거의 없는 것 같다. 경비도 삼엄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 측에선 영포빌딩을 둘러싼 이 대통령과 처남댁 사이의 불협화음에 대해 “전혀 사실과 다르다”라고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야권에선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고 김재정 씨의 유산 상속을 놓고 양측이 벌였던 신경전의 연장선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 전국 알짜배기 부동산을 사 모았던 김 씨의 재산은 적게는 수백억, 많게는 수천억 원대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 재산 중 일부가 이 대통령 소유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결국 검찰이 직접 규명에 나섰지만 속시원히 해명되지는 않았다. 당시 수사에 관여했던 한 전직 검찰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김 씨 보유 부동산의 실소유주라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도 “권력 향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검찰이 유력한 대통령 후보에 대해 조사를 철저하게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다 김 씨가 지난해 2월 사망하자 정치권과 사정기관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 재산이 누구에게로 상속될지에 쏠렸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과 처남댁인 권 씨가 유산 처리를 놓고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는 말도 들렸다.
이에 대해 청와대 민정팀 관계자는 “우리가 무슨 바보냐. 지켜보는 눈들이 한두 개도 아닌데…. 모든 재산은 법이 정해진 절차에 한 치도 어긋나는 것 없이 처리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일요신문>이 고 김 씨의 부동산 등기부를 살펴보니 대부분 부인 권 씨에게 상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3년 호화파티 논란을 일으켰던 경기도 가평의 이른바 ‘현대별장’, 165만㎡에 달하는 충북 옥천군 이원면 일대의 임야 모두가 권 씨 명의로 바뀌었다. 김 씨 일가가 거주하고 있던 30억대 청담동 고급 빌라는 장남 김 아무개 씨에게로 이전됐다. 이처럼 부인과 아들이 재산을 물려받은 이상 문제될 게 없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의도 주변에선 김 씨 유산 문제가 여전히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고 김 씨 재산의 정확한 규모가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겉으로 드러난 상속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꾸준히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야권은 이 대통령과 처남댁 사이의 내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영포빌딩 101호 문제와 구설이 끊이지 않았던 상속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양측 사이에 조금씩 금이 생기는 것 같다. 고 김 씨의 다스 지분 중 5%를 청계재단에 기부하는 것을 놓고도 티격태격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5%이긴 하지만 그로 인해 이 대통령 측이 권 씨를 제치고 최대주주에 오를 수 있었다”면서 “당사자만큼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권 씨 측이) 언젠가는 터트리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 역시 지난 4월 “이 대통령과 처남댁이 재산문제로 말썽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향후 고 김 씨 유산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