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상득 특사와 만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
지난 9월 27일 청와대엔 각 사정기관 최고위급 인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임태희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이날 회동은 ‘권력형 비리 근절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정진영 민정수석, 권재진 법무장관, 임종룡 국무총리실장, 홍정기 감사원 사무총장, 이현동 국세청장, 조현오 경찰청장,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등이 참석했다. 임태희 실장은 기자들에게 “사정기관의 수직적·수평적 정보 교환을 강화하기로 했다”면서 “앞으로 민정수석실에서 사정기관이 갖고 있는 측근이나 고위공직자 관련 정보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해서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즉, 청와대의 사정컨트롤 역할을 보다 강화해 측근 비리를 엄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야권에선 이러한 청와대 움직임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사실상 정보보고 라인을 독점해 사정기관을 장악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좋게 말해 대책 회의지 사실상 사정기관 수장들 불러다가 경고한 것 아니겠느냐”면서 “우리도 정권을 잡아 봐서 안다. 권력 향배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정기관들을 단속하는 것이 임기 말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 역시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한마디로 (사정기관들이) 말을 잘 안 듣는다. 일부 기관들은 이 대통령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이 때문에 사정기관들을 다잡는 차원에서 청와대로 부른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청와대가 내부 점검에 나선 까닭은 최근 들어 고급 정보들이 정치권과 언론 등으로 새고 있는 징후들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이 “정권 초는 이러지 않았는데 지금은 통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소외됐거나 승진에서 불리한 처우를 받았던 각 사정기관 라인들이 속칭 ‘빨대’로 의심을 받고 있다. 비TK·호남 출신 등은 물론 권력 다툼에서 밀렸던 여권 소장파 등이 여기에 속한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정권 초 우리가 밀어냈던 인사들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현재 청와대는 이들이 건넨 자료들이 민주당의 일부 ‘저격수’ 의원들과 여권 파워게임에서 패한 세력들에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민정수석실은 이상득 의원 파일을 ‘탑 시크리트’로 분류하고 관리를 해왔다. 대통령을 뜻하는 ‘VIP’와 동급으로 취급했다는 의미다. 따라서 청와대로선 이 의원 첩보가 유통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예로 <일요신문>은 지령 1009호에서 이 의원에 대한 극비 검찰 조사가 무산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 후 청와대에서 이 기사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채널을 가동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만큼 ‘형님’과 관련된 내용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그동안 수차례의 권력 싸움에서 이 의원이 모두 이긴 것을 봐라. 그만큼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면서 “현 정권이 손발은 내주더라도 이 의원만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로서는 이 의원이 마지노선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야권 역시 정권 초부터 이 의원에 대한 소문을 집중적으로 캐왔지만 여권 핵심부의 ‘철저한’ 대응으로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 민정팀 관계자는 “아무리 사소한 첩보라도 일단 우리가 나서서 확인한다. 이 의원 주변 인물 리스트를 작성해 정기 체크하는 것은 물론이다. 사전에 확실히 예방하고, 극비로 확인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보안이 지켜진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임기 말에 접어들면서 캐비닛 깊숙한 곳에 보관돼 있던 ‘이상득 파일’ 중 일부가 방어벽을 뚫고 나오기 시작했다. 여권이 ‘비상’에 걸렸음은 물론이다.
특히 새어나온 자료 대부분이 여권 내 ‘반 SD계’로 건네졌을 가능성이 커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 의원과의 파워게임에서 밀렸던 이들이 반격을 위한 ‘히든카드’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당에서 저격수로 꼽히는 한 의원실 관계자는 기자에게 “우리에게 (이 의원 관련) 정보를 준 곳을 밝힐 순 없지만 한나라당 의원이다. 이는 여권 내에서 이미 내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이 의원 관련 의혹들은 아직 저축은행 사태에 불과하지만(<일요신문> 1009호 참고)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날 것이란 게 중론이다. 특히 최측근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이 ‘이국철 게이트’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 비리’ 등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는 점도 이 의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야권이 박 전 차관을 넘어 이 의원을 향해 비수를 들이댈 채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의원과 박 전 차관이 애착을 갖고 추진해 온 ‘자원 외교’가 도마에 오를 공산이 커 보인다.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을 뿐 ‘팩트’가 나오진 않았는데 얼마 전 민주당이 구체적인 자료들을 확보했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다. 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는 9월 29일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박 전 차관이 자원 외교를 빙자해 아프리카에서 재벌 기업을 데리고 전세기 타고 돌아다닌다. 그 뒤에 형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청와대가 더욱 사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한나라당 고위층에서조차 ‘이상득 비토론’이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9월 28일 측근 비리와 관련해 “이상득-박영준도 예외 없다”며 강도 높은 수사를 촉구한 바 있다. 이에 민주당은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이규의 수석대변인은 “홍 대표가 실명을 거론한 것은 측근비리 몸통이 이 의원과 박 전 차관임을 밝힌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여권 핵심부는 불쾌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야권에 공세의 빌미를 줄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여권 내부 권력투쟁의 불씨를 건드려 이 대통령 레임덕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들어 한나라당 안팎에서 대두되고 있는 이 의원의 총선 불출마설이 확산될 수 있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야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집권 여당 대표가 그렇게 경솔하게 발언해서 되겠느냐. 대통령이 친인척 비리 척결을 다짐한 이상 믿고 가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단 청와대는 내부 점검을 강화해 이 의원 정보 유출을 최대한 억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현재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각 사정기관의 기강 확립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 마련에 착수한 상태다. 일단 안에서부터 새는 바가지부터 솎아내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국철 SLS 그룹 회장의 경우와 같은 갑작스런 ‘폭로’를 방지하기 위해 이 대통령 참모와 친인척 주변 인사에 대한 스크린 역시 원점에서 실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와는 별개로 여권 핵심부가 ‘분위기 전환용’ 사정정국을 조성할 것이란 얘기도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의 친정체제가 구축됐다는 평을 받고 있는 검찰이 그동안 확보한 내사 자료들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비자금 수사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정재계가 검찰 움직임에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벌써부터 서초동 주변에서는 서울중앙지검이 수사하고 있는 S 그룹을 포함해 몇몇 재벌과 이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정치권 인사들이 조준될 것이란 관측이 파다하다. 여권 핵심부가 ‘이상득 의원 구하기’의 일환으로 어떠한 전략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