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 22일 영업정지된 토마토저축은행 본점에서 가지급금 지급이 시작된 가운데 은행 밖에서 예금자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안을 살펴보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금융계의 부정과 비리를 뿌리 뽑겠다.” 한상대 검찰총장이 지난 9월 20일 전국 특수부장 회의에서 던진 일성이다. 그로부터 이틀 뒤 출범한 합동수사본부는 한 총장의 이러한 의지를 그대로 반영했다. 검찰 내 대표적인 ‘금융통’ 권익환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1부장이 수사본부 단장에 임명됐고 윤대진 대검 첨단범죄수사과장(1팀장), 주영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부장(2팀장), 이선욱 금융조세조사1부 부부장(3팀장) 등 정예 검사들이 속속 합류했다. 여기에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국세청 경찰청 등으로부터 인력을 지원받아 ‘매머드 급’ 수사본부가 꾸려졌다. 대검 중수부의 한 고위 간부는 “한 총장이 의욕을 갖고 만들었고, 그만큼 내부에서도 기대가 크다. 인적 구성이나 규모를 봤을 때 최고의 수사팀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면서 “최재경 중수부장이 수사본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합동수사본부의 타깃은 9월 18일 영업정지를 당한 7개 저축은행들이다. 모두 금감원으로부터 고발을 당한 곳이다. 또한 간신히 영업정지는 면했지만 시중 6개 저축은행 역시 수사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대규모 예금 인출사태(뱅크런)를 감안해 1차 수사 대상에서는 제외했다고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한 은행들은) 대주주와 경영진의 부정 대출, 은닉 재산, 정관계 로비 혐의 등이 포착됐다. 재무지표가 건전하더라도 불법 여부가 발견돼 고발한 은행들도 있다”고 전했다. 수사본부는 9월 23일 7개 저축은행 본점 및 경영진 자택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면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현직 은행장, 참고인 등이 잇따라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밖에 수사본부는 중수부 및 일선 지검들이 진행해 온 또 다른 저축은행들의 비리도 일부분 이첩받아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특히 수사본부는 저축은행들이 무분별한 대출을 할 수 있게 된 배경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초부터 잇따라 불거지고 있는 저축은행 비리 사태를 구조적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수사진들은 지난 2006년 8월부터 실시해오고 있는 ‘8·8클럽’에 대한 자료들을 분석 중이다. 8·8클럽이란 ‘자기자본비율 8% 이상, 고정이하 여신비율 8% 미만을 충족하는 저축은행에 대출한도를 완화해주는’ 제도다. 수많은 저축은행 예금주들은 “금융당국이 보장한 8·8클럽 가입 저축은행이라서 안심하고 돈을 맡겼는데 뒤통수를 맞았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실제로 이번에 영업정지를 당한 7개 저축은행 모두 지난해까지는 8·8클럽 기준을 충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이번 부실사태는 8·8클럽을 악용한 저축은행과 이에 대한 감독·관리를 소홀히 한 금융당국의 합작품”이라면서 “언제든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원인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 8·8클럽 도입 여부를 놓고 금융권에서도 찬반 여론이 뜨거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규제완화 및 서민금융대책 차원에서 실시해야 한다는 여론과 무분별한 대출로 부실 은행이 양산될 것이란 우려가 맞섰던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금융감독원장이었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8·8클럽이 PF 대출 증가의 계기가 됐는지 모르지만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8·8클럽 논의를 전후로 몇몇 저축은행과 참여정부 유력 인사들 사이에 은밀한 관계가 형성됐다는 뒷말이 나왔다고 한다. 유력 저축은행 고위 임원은 “우리를 포함한 몇몇 저축은행들이 로비스트 등을 기용해 참여정부 실세들과 줄을 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금융권은 말할 것도 없고 청와대, 국회에 소속된 정치인 이름이 오르내렸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수사팀이 주목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PF 대출 기준 완화를 통해 외형을 확대하려는 일부 저축은행의 로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합동수사본부는 압수수색 등을 통해 확보한 자료들과 피의자 진술 등을 토대로 8·8클럽 실시 전후에 벌어졌던 일들을 체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본부는 부산저축은행, 전일저축은행 등에 연루된 거물급 로비스트 박태규·이철수 씨 등으로부터도 관련 내용을 확인하고 있다. 또한 당시 실무를 맡았던 금융권 관계자들도 조만간 수사본부가 차려진 서울고검으로 부른다는 방침이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아직 의혹만 있는 상태다. 구체적인 이름이 나온 것은 없다”면서도 “최근 몇몇 의미심장한 진술들이 나와 수사에 속도가 붙고 있다. 아직 초기라 밝힐 순 없지만 (로비설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적지 않은 후폭풍이 불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수사본부 움직임에 여권에선 반색하고 있는 기류가 감지된다. 그동안 부실 저축은행 책임론을 둘러싸고 벌여온 야권과의 공방에서 우위를 점할 수도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야권은 저축은행 사태를 이명박 정부의 건설 경기 확장에 따른 부작용과 현 금융당국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때문으로 규정해 왔다. 특히 김두우 전 수석, 최영 전 강원랜드 사장,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 등 이 대통령 측근들이 줄줄이 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돼 옷을 벗어 곤혹스러운 처지에 있는 청와대 내부에서는 이번 수사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모습이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정권 출범하기 전부터 곪아 있었는데 지금 우리가 원흉이 돼 억울하다.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겠느냐”면서 “우리도 성역 없이 (수사를) 받은 만큼 야권 역시 ‘표적수사’ ‘보복수사’ 등을 운운해선 안 될 것이다. 청와대는 수사본부에 일절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당 중진 의원은 “검찰이 현 정부 실세는 손대지 않고 깃털만 잡아들이고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수사가 참여정부를 무차별적으로 겨냥할 경우 좌시하진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