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산그룹에‘형제의 난’이 벌어졌다. 박용오 명예회장(왼쪽)은 지난 21일 박용성 회장 등의 비자금에 관해 조사해 달라고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에 박용성 회장도 다음날 기자회견을 갖고 “이는 두산산업개발 경영권 탈취 미수사건”이라고 반박했다. 우태윤 기자 w | ||
1백년이 넘는 창업 역사와 4세대까지 이어지면서 ‘형제 간의 우애’ 경영을 자랑해온 두산그룹의 형제 오너들 간에 재산 싸움이 벌어진 것. 차례로 그룹 회장을 지낸 회장 형제들이 서로 공유했던 은밀한 비밀을 검찰에 고발하는 사상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형제 간의 재산 갈등을 밖으로 먼저 터트린 것은 두산그룹 오너 형제의 일원인 박용오 명예회장. 그는 동생인 박용성 회장-박용만 부회장라인에서 나라 안팎에 1천7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폭로했다.
물론 박용성 회장은 “터무니없는 음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관련자와 금액을 너무나 세세하게 적시하고 있다. 일각에선 지난 몇년간 두산이 주도했던 대형인수합병전에 박용오 회장이 주장하는 비자금의 용처가 겹칠 ‘가능성’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럴 경우 형제간 스캔들을 넘어서서 정·재계를 뒤흔들 대형 스캔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 정상급 그룹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지난 60년대 말 삼성그룹에서 이병철 회장의 2세 경영진 간에 벌어진 사건 이후 최대의 사건이다. 90년대 말부터 그룹의 주력 사업이던 맥주사업을 팔아가며 구조조정을 통해 회생한 뒤 한국중공업(두산중공업), 대우종합기계(두산인프라코어)를 잇따라 인수해 다시 정상궤도에 진입해가던 두산그룹이 정작 내부의 오너 경영진 간의 갈등으로 자칫 공중분해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지난 18일 두산그룹의 회장이 급작스레 박용오 회장에서 박용성 회장으로 바뀌면서부터다. 두산은 박승직 창업주에서 2대 박두병 회장까지는 장자 승계가 이뤄졌지만 3세대부터는 박두병 회장의 장남인 박용곤 명예회장, 2남 박용오 회장 등 형제 간 승계가 이뤄지고 있다.
박용성 회장은 3남이고 3세대의 세 번째 그룹 회장인 셈이다. 두산에선 급작스런 회장 교체가 형제간 회장 승계 전통에 의한 두산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박용성 회장은 회장에 지명된 다음날인 19일 제주도에서 두산그룹 형제승계의 전통을 ‘사우디 왕가 방식’이라고 자랑하기까지 했다.
눈길을 끈 또 한 가지는 박용성 회장의 그룹 회장 추대와 더불어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 박정원 두산상사BG 사장이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으로 승진한 것. 4세대 중에서 첫 번째로 회장 반열에 오른 것이다. 때문에 벌써부터 4세대로의 경영승계와 관련해 주목받고 있다.
이와 관련, 재계에선 두산의 형제간 분열이 더 심화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박두병 회장의 다섯 번째 아들인 박용만 부회장이 ‘아직도’ 부회장이다.
박용오 회장측에선 박용만 부회장에 대해 그의 바로 밑 동생인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과 “동복”이라는 표현을 썼다. 박용오 회장과 박용만 회장이 ‘동복’이라면 구태여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박용만 부회장(50)은 바로 위의 형인 박용현 전 서울대 병원장과 열두 살 차이다. 박정원 부회장(43)과 박용만 부회장은 일곱 살 차이가 난다. 때문에 박용만 부회장까지 그룹 회장 자리가 돌아올 수 있을 것이냐는 의문이 재계 일각에서 일고 있는 것.
두산측은 그동안 대외업무는 박용성 회장이, 그룹 살림은 박용만 부회장이 나눠서 하고 있다고 밝혀왔다. 박용오 회장도 검찰 진정서에서 박용곤 회장을 직접적으로 겨냥하지는 않았다. 주로 박용성-박용만 형제의 책임을 묻고 있다. 만약 검찰 수사를 통해 박용성-박용만 라인에 ‘사회적·도의적 책임’을 물을 경우 두산은 박용곤 회장의 재등장이나 전문경영인 등장, 또는 4세대 후계진의 전진 배치 등 기존 경영구도가 크게 바뀔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번 형제의 난으로 박용곤-박용성-박용만 라인과 완전히 등을 지게된 박용오 회장은 두산그룹에서 ‘추방’됐지만, 용성-용만 회장도 검찰 수사 결과에 명운이 갈리는 입장에 서게 됐기 때문이다. 이는 ‘순환출자-형제경영’이라는 두산그룹의 지배구조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가능성이 크다.
형제간 재산분할을 하든, 지주회사 체제로 가든, 지배구조 투명화를 선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누가 낙오할지, 낙오하는 쪽에서 또다른 반발이 터져나올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검찰에서 박용오 명예회장의 진정서의 진위를 어디까지 밝혀낼지, 지목된 비자금의 용처를 찾아낼지, 뚜껑이 열리고 있는 ‘판도라의 상자’에 정·재계의 시선이 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