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가 5일 오전 여의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열린 55주년 기념식에서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윤성호 기자 |
지난 10월 3일 치러진 국민참여경선은 박영선 후보를 낸 민주당과 시민사회세력의 대표주자로 나선 박원순 후보와의 맞대결로 서울시장 선거의 1차전이나 다름없었다. 한나라당의 입장에선 박영선 후보나 박원순 후보 어느 편이든 만만치 않은 싸움이 예고돼 있던 상황. ‘여성 대 여성’의 대결로 가느냐, ‘비정치인 출신 후보 대 정치인 후보’의 대결로 가느냐를 두고 주판알을 튕기고 있던 한나라당은 결국 박원순 후보가 야권단일후보로 선출되자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였다.
한나라당 내에선 ‘여성후보’끼리의 맞대결로 갈 경우 나경원 후보가 한수 앞선다는 분석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 보좌관은 “인지도 면에서나 지난해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치렀던 경험 면에서나 박영선 후보에 비해 나경원 후보의 경쟁력이 높다는 평가를 하고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후보끼리의 대결은 나경원 후보에게도 부담감이 적지 않았다. ‘어머니상’을 내세우며 복지정책을 설파하려던 전략이 주효하지 못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 ‘SOS’를 요청해야 하는 박근혜 전 대표에게도 여성주자들끼리의 선거전은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박원순 후보가 상대 주자로 결정되자 나 후보 측은 본격 검증 전략을 가다듬고 있는 모습이다.
박원순 후보의 가장 앞선 경쟁력은 시민사회운동가로서의 참신함이다. 박 후보는 한국 시민운동의 상징적 존재로 알려져 있다. 그가 시민운동을 시작한 것은 1994년 참여연대를 설립하면서부터다. 참여연대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른 참신하고 개혁적인 방법으로 새로운 시민운동의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법개혁운동, 소액주주운동, 낙선·낙천 운동 등은 참여연대를 상징화하는 대표적 활동이었다. 기존의 운동권 세력을 넘어서 중산층을 사회운동 참여자로 아우르는 동기부여를 함으로써 시민사회운동 참여자의 폭을 넓힌 점은 가장 높게 평가받는 성과이기도 하다.
참여연대에서 머무르지 않고 시민사회사업을 확장해간 점은 그의 추진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002년 그는 참여연대 활동을 돌연 중단하고 ‘아름다운 재단’과 ‘아름다운 가게’ ‘희망제작소’를 만들어 기존의 사회비판 활동에서 나눔 운동과 지역발전 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참여연대에 오래 몸담았던 한 인사는 박원순 후보에 대해 “부드러워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상당히 강직하고 카리스마가 있어 일을 해결하는 능력이 대단하다”고 평하기도 했다.
시민사회운동가로 이름을 알리며 명성을 쌓아온 그는 참신한 인물을 원하던 기존 정치권에게는 매력적인 대상이었다. 실제로 그는 그동안 여야 모두로부터 수차례 러브콜을 받아온 바 있다.
반면 박원순 후보는 ‘비정치인 후보’라는 장점이자 약점을 안고 있다. 정치인 신분인 나경원 후보가 본질적으로 넘어설 수 없는 최대 무기인 참신함을 갖고 있으나, 본격적인 검증무대에 올라설 경우 이 참신함은 오히려 독이 될 수가 있다는 평가다. 한 정치 컨설턴트는 “박원순 후보에 대한 검증이 본격화될 경우 그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 잣대는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기준보다 엄격할 것이다. 시민사회운동가라는 신분이 박 후보에 대한 기대수준을 높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미 그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이 박 후보에 대한 참신성과 도덕성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현재 박원순 후보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 의혹은 크게 네 가지다.
박 후보의 부인 강 아무개 씨가 운영해온 인테리어 회사 ‘P&P디자인’에게 아름다운 재단 및 아름다운 가게의 일감을 몰아주었다는 의혹이 첫째다. 한 구인정보 사이트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강 아무개 씨가 99년 설립한 것으로 알려진 P&P디자인은 설립 첫 해에 참여연대 사무실 설계와 시공을 맡은 이후 아름다운 재단과 아름다운 가게의 공사를 20여 건 맡은 것으로 나와 있다. 이에 대해 박 후보 측은 “아름다운 가게는 전국에 120여 개 있다. 초기에 자금이 부족할 때 선금을 주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이 업체에 공사를 많이 맡긴 것이며 정상궤도에 오른 후에는 공사를 맡기지 않았다”고 해명한 바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일종의 내부자 거래로 볼 수 있다”며 도덕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상황.
두 번째로, 부인 강 씨가 운영했던 P&P디자인의 현대모비스에 대한 시공수주 실적도 상식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앞서 사이트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P&P디자인은 2000년 현대모비스 본사 대회의실 설계·시공 및 2001년 현대모비스 본사사옥 이전 설계·시공, 2002년 현대모비스 전국 기아프론트 개선공사 설계·시공 등 ‘현대모비스’ 관련 시공을 여러 건 성사시켰다. 설립 이듬 해인 2000년을 시작으로 2004년까지 꾸준히 현대모비스 본사를 포함해 영업소, 부품대리점, 연수원, 농구단 숙소 등 16건의 설계·공사를 수주한 것으로 나와 있는 것.
현대모비스 측은 이와 관련해 “P&P디자인이 몇 번 공사를 맡으며 현대모비스 CI 매뉴얼을 충분히 숙지해 업무편의상 관계를 유지한 측면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박원순 후보 역시 “P&P디자인이 다른 업체와 공동으로 현대모비스(구 현대정공) 공사를 수주했는데 다행히 좋은 평가를 받아 공사를 지속, 확대할 수 있었다”며 “이후 현대정공이 현대모비스로 개명하고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공사를 진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한 언론을 통해 박원순 후보의 손위 동서가 현대모비스에서 공사발주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임원이었다는 사실이 보도되며 의혹이 증폭됐던 상황. 보도에 따르면 P&P디자인이 2000∼2004년 현대모비스 관련 공사 16건을 수주했을 당시 강 씨의 형부 A 씨가 현대모비스에서 총무·관재·인사 등을 담당하는 임원이었다고 한다. A 씨는 현재 퇴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박원순 후보 측은 “박 변호사 부인이 병원이나 작은 곳의 인테리어만 하고 있으니 대기업 계열사 공사 수주에도 도전해 보라고 연을 닿게 해준 것 같다. 그러나 수의 계약이 아니고 공개경쟁 입찰로 (공사를) 따낸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 박원순 후보가 지난 5일 살림정치 여성행동참여마당에서 여성과 관련한 정책을 참석자들로부터 전달받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세 번째는 박원순 후보가 살고 있는 강남의 고가 아파트에 대한 논란이다. 박원순 후보는 압구정동의 한양아파트에 거주해오다가 4년 전쯤부터 방배동 신동아럭스빌 아파트에 월세로 살고 있다고 한다. 박 후보가 살고 있는 신동아럭스빌 아파트는 60평대로 박 후보 가족은 보증금 1억 원에 월세 250만 원을 내며 살고 있는 상태.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시민운동가의 삶과 맞지 않는 것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박원순 후보 측은 “1983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여유가 생겨 이태원에 아파트도 사고, 동교동 단독주택에 살기도 했지만 1993년 시민운동에 투신한 이후에는 집을 보유한 적이 없다”며 “자가 주택자에서 전세·월세로 살고, 그나마 보증금마저 빼내 써야 하는 실정”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한편 지난 6일 박 후보의 부인 강 씨를 만나기 위해 박원순 후보가 살고 있는 방배동 신동아럭스빌 아파트에 두 차례 찾아가 보았으나 집을 비운 상태였다(박스 기사 참조).
네 번째로, 딸이 고가의 학비가 드는 스위스로 유학을 간 것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에서는 “무슨 돈으로 유학비용을 댔느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후보 측은 “딸이 서울미대에 2002년에 입학해 다니다가 중간에 서울법대로 전과한 뒤, 스위스의 한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아 1년 예정으로 유학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원순 후보 ‘개인 신상’에 관한 위와 같은 의혹 외에 박 후보자 자체에 대한 ‘인물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일각에서는 박 후보가 서울시장 후보군으로서 입지를 다지는 데에 안철수 원장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는 것. 즉 ‘안철수 효과’로 인한 반사이익 덕분에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관계자는 “안철수 원장이 불출마 선언을 하기 이전 박원순 후보의 지지율은 미미했다. 안 원장이 불출마 선언 뒤 지지의사를 밝히면서 지지율이 상승한 것 아니냐. 상당부분 안 원장에 대한 표심이 현실적 대안으로 박 후보를 선택한 결과”라고 꼬집기도 했다.
‘야권통합후보’로 나섰으나 민주당과 기타 야권의 친노계가 절대적 지지를 보내줄 것인지의 여부도 관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상임선대위원장 직을 수락했고, 후보직을 두고 경쟁했던 박영선 의원이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돕고 있으나 민주당 내에선 ‘야권 후보’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이 상당히 거세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역시 박원순 후보를 돕고 있으나 야권통합을 놓고 경쟁관계에 있는 친노계와 민주당의 ‘일시적 협력관계’가 서울시장 선거 이후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는 불안한 형국이기도 하다.
결국 박원순 후보는 서울시장 ‘당선’이라는 1차적 목표를 넘어서 ‘야권통합’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느냐는 장기적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그가 치열한 정치권의 시험대를 통과할 수 있느냐는 이제 박원순 후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야권 전체의 화두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 잡아넣는 일이 체질에 맞지 않았다”며 검사 임용 뒤 6개월 만에 사표를 썼던 박원순 후보가 과연 혹독한 검증 난타전에서 살아남아 서울시에 입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월세 250만원? 시세 600만원!
▲ 박원순 후보가 살고 있는 방배동 신동아 럭스빌 아파트 전경.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이에 대한 입장을 직접 들어보기 위해 지난 6일 두 차례 박 후보의 집을 찾아가 보았으나 박 후보와 부인 강 씨를 비롯한 가족들은 모두 집을 비운 상태였다.
경비실 관계자에 따르면, 유학 중인 것으로 알려진 박 후보의 딸도 현재 함께 이곳에 살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박 후보가 살고 있는 ‘7XX호’의 인터폰을 누르니, 한참 뒤 일을 돕고 있는 아주머니가 “집에 아무도 안계시다”는 대답을 건네왔다. 아파트의 한 관계자는 “사모님이 일을 다니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 거의 밤늦은 시간에야 댁에 들어오시는 것 같다”고 전했다. 법인등기부상 부인 강 씨의 회사인 ‘P&P디자인’은 지난해 12월 1일자로 해산된 상태다.
이와 관련해 “박 후보의 부인 강 아무개 씨가 현재도 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있느냐”고 문의했더니, 박원순 후보 캠프 송호창 대변인은 “지난해 12월 이후 사업을 그만두고 현재 일을 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아파트 60평형은 매매가 13억 원대, 전세가는 6억~7억 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박 후보는 60평형인 ‘7XX호’에 보증금 1억 원, 월세 250만 원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인근 공인중개소에 문의해보니 이 아파트의 월세 시세는 1억 원에 600만~700만 원이라고 한다. 박 후보 측이 밝힌 월세가격은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것이어서 시세 차이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