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씨티은행의 ‘한미노조’ 조합원들이 ‘부당이득’ 등을 이유로 경영진을 규탄하고 있다. | ||
왜 직원들이 숨기고 싶은 회사의 비밀을 나서서 밝힌 것일까. 여기에는 노사간의 갈등이 한몫하고 있다. 사측을 고발한 노동조합은 씨티와의 합병이 끝난 지금도 ‘한미은행’의 명칭을 고수하고 있을 정도다. 사측 또한 통합에 따른 예상되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강경대응으로 맞서 파국을 자초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노조와 사측의 대립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 4월20일의 인사발표 때부터. 한미은행 노조는 이를 ‘4·20 인사테러’라고 부른다. 한미은행 출신을 뺀 채 구 씨티은행 출신 인사들 위주로 승진 인사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노조측에 따르면 직원들 중 한미은행 출신은 2천8백36명, 구 씨티은행 출신은 8백47명으로 한미 출신이 3배 이상 많은데도 승진비율은 씨티은행이 3.5배로 많았고 간부구성비도 21 대 3으로 구 씨티은행 출신이 많아졌다고 한다.
또 한미 출신의 부행장 5명이 부행장보로 격하되면서 사실상 임원의 지위에서 탈락한 반면 수석부행장은 구 씨티은행 출신이 대부분 임명됐다. 이렇게 한미은행이 한국씨티은행으로 출범한 이후 한미 출신에 대한 차별이 본격화되었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이번 검찰고발에 대해 한미은행 노조측은 “경영진의 부도덕한 영업행위가 결과적으로 고객의 발길을 돌리게 만들고 결국 지점망 폐쇄 등 고용불안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고발을 결심하게 되었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노조는 이번 검찰고발에 앞서 지난 6월에도 한국씨티은행이 해외로 한미은행 인수자금을 대부분 유출시켰다고 주장해 사측과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 주장은 이번 검찰고발을 통해 서서히 주목을 받고 있다.
씨티그룹의 한미은행 인수과정은 다른 외국계 자본의 국내 은행 인수와는 다른 특이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미국계 다국적 금융지주사인 씨티그룹(Citygroup Inc.)은 2004년 2월23일 자회사인 씨티뱅크N.A.가 100% 출자한 COIC를 통해 기존 칼라일과 JP모건 등이 가지고 있던 한미은행 주식 36.55%를 인수한 후 주식 공개매수를 통해 99%까지 지분을 확보했다. 이후 구 씨티은행은 영업권을 양도한 후 청산됐고 한미은행이 ‘한국씨티은행’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COIC가 한미은행 인수를 위해 지불한 비용은 이 4조원이다. 이후 한미은행은 기존 씨티은행의 국내지점 15개의 영업을 양도받으며 1조3천억원의 비용을 지불했다. 결과적으로 씨티그룹은 한미은행을 인수하면서 든 비용 중 1조3천억원을 다시 회수한 셈이다.
이후 한국씨티은행은 씨티뱅크N.A.의 런던지점과 싱가포르 지점에 2∼3%의 저리로 1조8천억원을 장기대여했다. 또 계열사인 씨티파이낸셜에 7천3백50억원을 지원했다. 노조는 “결국 씨티그룹은 내부자금을 모두 해외로 유출하고 현재 한미은행에는 1천3백50억원밖에 남지 않았다. 한국씨티은행이 최근 4.3%의 고금리 특판예금을 도입한 것도 단시간 내에 내부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씨티은행과 금감원은 “한국씨티은행과 씨티뱅크N.A.는 원화콜론과 외화대여금으로 1조6천억원의 신용공여를 하고 있는데 이 거래는 유휴자금을 최소화하기 위한 계열회사간 자금거래로 자본유출과는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다. 2∼3%대의 낮은 이자율에 대해서도 통상적 리보(LIBOR) 금리를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미은행 노조는 ‘국부 유출’이라는 이슈에 이어 변동금리 상품에 대한 부당이득으로 경영진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처럼 꼬인 사측과 노조 간의 사이는 양측의 합의로 해결될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노조가 씨티그룹의 경영 간섭을 배제한 독립경영을 요구하는 데 반해 씨티그룹이 이를 포기할 가능성은 별로 없는 상황이기 때문.
한미은행 노조는 대주주의 경영권을 포기하도록 요구하는 이유에 대해 씨티은행이 국제적으로 확장을 거듭하는 동안 현지화에 실패해 물의를 일으키는 것을 원인으로 들고 있다.
씨티그룹은 지난해 일본에서 고객들에게 대출과 동시에 채권상품을 사도록 하는 이른바 ‘꺾기’ 행위로 국채입찰을 금지당했고, 소매금융 사업부가 주가조작에 사용된 자금을 대출한 것이 적발돼 영업정지를 당하자 소매금융 사업부를 현지에서 철수시킨 바 있다. 지난해와 올해 초에는 유럽과 중국에서 금융사고가 잇따르기도 했다.
한국씨티은행도 국내 시중은행들과는 달리 까다로운 절차를 고객들에게 요구하도록 규정을 바꾸고 있어 노조와 마찰을 빚고 있다. 이에 대해 노조측은 “현 경영진은 한국의 현지사정에 맞는 토착화보다는 미국 본사의 규정(policy)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노조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현 경영진의 독자적 권한은 거의 없는 상태라고 한다.
사측 또한 “현 노조는 파업만 하려 들고, 회사 내부 정보를 공개하는 상식 밖의 일을 저질렀는가 하면 경영권을 보장해달라는 등 이해하기 힘든 요구를 내놓고 있어 타협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