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의 한 장면. 작은 사진은 미국에서 체포된 용의자 아더 패터슨의 방송 화면 캡처 모습. |
14년 전 이태원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사건 당시 미 육군 범죄 수사대(CID)는 아더 패터슨을, 한국 검찰은 에드워드 건 리를 각각 범인으로 지목했다. 재판 내내 패터슨과 에드워드는 서로 상대방이 피해자를 살인했고, 자신은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다고 주장했다.
에드워드는 경찰 조사에서 “한국 남성이 화장실에 들어가자 패터슨이 따라 들어갔다. 그가 얼마 뒤 나와서는 ‘내가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반면 패터슨은 “내가 주머니칼을 자랑하며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고 에드워드가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화장실에서 한 남성을 찔렀다”고 상반된 진술을 했다.
재판 과정에서 참고인들의 증언도 엇갈렸다. 1심 재판에서 패터슨의 친구 랜디 라본은 “패터슨이 나에게 ‘재미삼아 사람을 찔렀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친구 제이슨은 “마지막으로 칼을 에드워드가 갖고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지법은 에드워드 리를 범인으로 최종 지목했다. 피해자 부검 결과 상처의 방향이 위에서 아래로 향하고 있어 피해자보다 체격이 큰 에드워드가 찔렀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거짓말 탐지기 역시 에드워드에게 불리한 결과를 나타냈다. 결국 서울지법은 1심에서 에드워드 리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아더 패터슨은 증거인멸을 이유로 1년 6월을 구형받았다.
아더 패터슨은 1년간 복역한 뒤 이듬해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된 뒤 1999년 8월 24일 돌연 미국으로 출국한다. 담당 검사의 과실로 그에 대한 출국 금지 연장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틈을 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1999년 9월에는 에드워드 리가 증거 부족으로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법당국의 부주의가 용의자 두 명을 모두 놓치는 뼈아픈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당시 18세에 불과한 청소년들이 재미삼아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도 충격이었지만 수사당국이 제대로 수사를 못했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담당 수사관들이 영어로 제때 심문하지 못하면서 초기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고, 신빙성이 의심되는 거짓말 탐지기가 재판 결과에 참조되었다. 애초 범인으로 지목됐던 에드워드가 무죄로 풀려나고 나머지 용의자마저 미국으로 떠나버리자 유족들의 억울함은 이루 말할 길이 없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2009년 9월 사건을 주제로 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하면서 사건은 다시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된다. 한 차례 혹독한 비난을 받았던 검찰은 뒤늦게 미국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하며 재수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2년이 흐른 뒤 지난 10월 10일 법무부는 패터슨이 5월경에 미국 경찰에 의해 검거됐다고 밝혔다.
10월 12일 공개된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한국에서 달아난 범죄 용의자 아더 패터슨의 송환문제에 관해 구금을 승인하며 보석은 허용치 않는다”며 그가 곧 한국으로 송환될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알려진 것과 달리 본격적인 인도 재판은 내년에나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패터슨을 한국 법원에 세우기까지 오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통상 미국의 범죄인 인도 재판은 단심으로 진행되지만 패터슨이 재판 결과에 이의를 제기해 신원보호청원을 할 경우 길게는 4년까지 걸릴 수 있다. 더욱이 패터슨 변호인 측은 그가 합법적으로 미국에 왔다고 주장하며 한국 송환을 최대한 미룰 태세를 갖추고 있다.
공소시효도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다. 살인사건의 경우 공소시효는 사건 발생일로부터 15년까지로 현재 6개월 정도 남은 상태다. 법무부는 용의자가 형집행정지 기간 중 도피할 목적으로 출국했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시효가 중지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표면상으로 패터슨이 출국금지가 풀린 상태서 합법적으로 자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살인사건 공소시효 논란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패터슨이 한국으로 송환된다 하더라도 유죄 판결을 얻어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2009년 SBS 시사고발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인터뷰에 응한 패터슨은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미국서 대학을 졸업했고 결혼도 할 예정이다. 나는 에드워드가 유죄고 내가 무죄라는 걸 알기에 걱정 안했다”고 말해 범행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사건의 또 다른 용의자였던 에드워드 측은 패터슨의 범행을 확실시하고 있다. 에드워드의 친구라고 밝힌 최 아무개 씨는 10월 13일 MBC <뉴스데스크>와의 인터뷰에서 “패터슨이 사람을 자기가 죽였다. 조중필 님을 죽였다고 얘기한 것을 제가 들은 것만 몇 차례가 넘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음날 인터뷰에서는 패터슨이 범행을 시인한 녹취록이 남아있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향후 재판에 가장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방송에서는 사건의 또 다른 용의자였던 에드워드가 유족들에게 쓴 편지를 함께 공개했다. 유족들은 아직 범인이 처벌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편지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
10월 12일 기자와 통화한 법무부 국제형사과 관계자는 “최대한 빨리 패터슨 씨를 한국으로 데려와 법정에 세운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며 말을 아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