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경원 후보와 홍준표 대표,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 13일 서울 구로구 벤처지원센터 방문을 마친 후 함께 걸어나오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며칠 앞두고 있는 한나라당 분위기는 ‘재보궐 선거의 최강자’라는 평가가 무색할 정도로 가라앉아 있다. 애초 후보선정 과정에서부터 “역대 최약체를 골랐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나경원 후보의 경쟁력을 반신반의하는 인사들이 많았다. 특히 이명박 정권에 대한 민심이 최악인데도 그것을 만회할 만한 최고의 후보를 내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에 당 특유의 결집력도 살아나지 못했다. 총선-대선을 너무 의식한 친박계의 뜨뜻미지근한 지원도 선거 전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요소다.
이렇게 여당의 선거 전략이 흩어지면서 당 안팎에서는 “선거에서 이겨도 문제, 지면 더 문제”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만약 나경원 후보가 어려운 싸움에서 승리한다면 재선 의원으로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을 배경 삼아 차차기를 넘보는 강력한 대권주자로 떠오르게 된다. 박근혜 전 대표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유세지원으로 나 후보의 승리 공과에 대해 한발짝 비켜나 있지만 당의 대권주자 입지를 한층 공고하게 다질 수 있다. 홍준표 대표도 선거 초반 미지근한 선거 지원으로 구설수에 올랐지만 특유의 돌파력으로 당을 위기에서 구출해냈다는 호평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나 후보가 선거에 이긴다고 하더라도 결코 기뻐할 일이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나 후보가 열세를 딛고 승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후보 개인의 역량일 뿐 내년 총선-대선을 앞둔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분위기다. 오히려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더 팽배해 있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우여곡절 끝에 후보를 내긴 했지만 그 과정만 복기해 보면 역대 서울시장 후보 선정 가운데 최악이었다고 본다. 대권주자와 지도부 간의 불협화음과 권력투쟁으로 제대로 된 후보를 내지 못한 점은 집권여당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한다. 특히 이번 보궐선거에서 많이 깨져야 변화와 개혁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데 그런 기회마저 놓치게 돼 현실에 더 안주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박근혜-홍준표 조합으로 내년 총선과 대선을 맞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 후보가 이기더라도 제3세력 인사 영입 등 정계개편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개혁조치가 이뤄지지 않는 한 보궐선거 승리는 작은 전투에서 반짝 승리한 것일 뿐 아무 것도 아닌 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만약 나 후보가 선거에서 패배하게 된다면 한나라당은 다발성 악재에 따른 정계개편 수순에 들어설 수 있다. 당 일각에서는 “오히려 이번 선거에서 지는 게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내년 총선을 치르는 서울지역 의원들에게는 불리할 수 있지만, 당 지도부 쇄신을 통한 조기 총선 체제로의 전환이 용이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분위기도 작용하고 있다. 보궐선거 패배가 약이 돼 오히려 총선에 더 전력투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당의 전략 전문가들은 ‘서울시장 보궐-총선-대선’으로 이어지는 도미노 패배의 가능성을 더 크게 보고 있다. 만약 나 후보가 패배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당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친이계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하게 된다면 당에 대한 전반적인 스크린 작업이 다시 있어야 한다. 패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히 따져야 한다. 홍 대표가 원칙 없이 후보를 선정하는 바람에 결국 패배를 자초한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위상 약화는 물론 ‘후보교체’라는 금기어도 등장할 가능성마저 나올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가 애초 승리가 불확실한 이번 선거에서 반쯤 발을 담가 책임론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선거의 여왕’이라는 명성에 금이 가고, ‘박근혜 대세론’의 영향력도 줄어든다는 점에서 후보교체론이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분위기로 발전될 수 있다.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이번 보궐선거에서 패배하게 된다면 정계개편의 단초가 마련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평가가 많다. 먼저 당의 패배를 목도한 현역 의원들이 차기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친박계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인위적인 정계개편이 성공한 예가 없다. 한나라당도 지난 1997년 창당한 이래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다. 이번에도 쉽게 분당과 같은 정계개편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이다”라고 전제하면서도 “선거에서 지고 위기의식을 느낀 당 주류가 혁명적인 수준의 공천을 할 것으로 보는데 그 과정에서 이탈세력이 많을 것이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결국 정계개편의 유혹에 약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누가 깃발을 드느냐의 문제일 뿐 그 어느 때보다 정계개편의 가능성은 무르익은 편이라고 본다”라고 본다.
이와 관련해 관심을 모으는 대목이 현재 한나라당 원로 K 전 의원을 중심으로 제3세력과의 연대를 통한 개혁신당 창당 움직임이다. K 전 의원의 보좌관 A 씨는 이에 대해 “지금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서도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세론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움직임이 많다. 그 사람들이 ‘솔직히 박 전 대표를 믿을 수 없다’는 말까지 하더라. 특히 안철수 바람이 분 뒤부터 더욱 그런 의심이 깊어지는 것 같더라”고 밝히면서 “중도층 중에서도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보수성향 지지그룹이 다수 숨어 있다고 본다. 당내 에도 ‘반 이명박 비 박근혜 그룹’이 다수 있다고 본다. 그들과 친박계의 이탈세력 등 개혁을 지향하는 제 3세력이 힘을 합쳐 개혁신당 창당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 중이다. 이번 재보궐 선거 결과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선거의 승패에 관계없이 당내에 개혁바람이 불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박 측 “가짜 서민행세 집어치워”, 나 측 “아름다운 재벌 재단 헐~”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막판 네거티브 공방으로 얼룩지고 있다.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와 범야권 박원순 단일후보는 선거를 며칠 앞두고 상호 극단적인 비방전을 전개하는 등 역대 선거 사상 가장 추악한 네거티브 전을 이어가고 있다.
선거 막판 나 후보에게 제기된 의혹의 핵심은 나 후보가 정봉주 전 의원을 찾아가 부친의 학교재단 감사배제 청탁을 했다는 설이다. 나 후보 측은 이에 대해 정 전 의원을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정 전 의원은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통해 ‘감사배제 청탁설’이 허위사실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나 후보가 직접 나서 고소한다면 무고죄로 고소해 맞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1억 원 회원권 피부클리닉’ 출입 의혹 보도도 나 후보 측에게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나 후보 측은 여과 없이 보도한 언론사 3곳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박원순 후보 측은 이에 대해 “나 후보가 1억 원 회비를 받는 피부관리실에서 실비로 피부관리를 받았다면 이는 정치자금법 위반이다. 또한 2년간 주유비로 5800만 원가량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정치자금으로 사용했다면 정치자금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등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박 후보측은 “나 후보는 뼛속까지 0.001% 특권층 후보로, 가짜 서민행세를 중단해야 한다”라며 네거티브 공방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한편 박원순 범야권 단일후보의 의혹 핵심은 역시 기부금 관련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나라당 김기현 대변인은 이에 대해 “아름다운재단이 기업으로부터 후원금을 사실상 강제 수금, 좌파단체들에 매년 수십억 원 이상 지원하는 등 ‘좌파의 저수지’ 역할을 했다. 자의적 운영을 해온 아름다운재단에 대해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또한 “아름다운재단이 지난해 5월 사옥 신축 명목으로 종로구 옥인동 152평 대지를 매입했으며, 부지 매입비용만 39억 원이다. 박 후보는 ‘아름다운 재벌 재단’의 땅 투기 의혹을 해명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두 후보에 대한 의혹 제기는 10월 21일 현재 양쪽을 합해 40여 건이 넘는다. 나 후보를 둘러싼 의혹은 △1억 5000만 원짜리 다이아반지를 700만 원으로 축소 신고 △변호사 시절 수임료를 직원 계좌로 받아 탈루 △부친이 소유하고 나 후보가 이사로 재직한 사학재단을 국감에서 빼달라는 청탁 △지역구인 중구의 건물 매매에 따른 13억 원 시세차익 등이다.
박 후보에 대한 의혹은 △박 후보가 깊숙이 관여한 아름다운재단의 기부금 모집 과정과 대상, 이를 좌파 단체에 임의적으로 지원했는지 여부 △민법에 없는 작은할아버지 가에 양손입양돼 6개월 방위로 병역을 마친 점 △서울대 법대 입학과 하버드·스탠퍼드대 등의 연구원 및 객원교수로 재직했다는 경력이 허위로 작성됐는지 여부 등이다.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