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16일 남경필 외통위 위원장이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을 직권상정하자 야당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실제로 여권 수뇌부는 얼마 전 삼청동 국무총리공관에서 비공개 당정청 회동을 갖고 비준안 처리 시기 및 방법에 대해 의견을 조율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여권 수뇌부가 10월 28일을 비준안 처리 ‘D-데이’로 잡고 단독처리 등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논의했다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한미FTA 비준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여권 수뇌부 정점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자리잡고 있다. 이 대통령은 미국 국빈방문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FTA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귀국 다음날(10월 17일) 오전 ‘대국민 보고’ 형식의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통해 한미FTA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대통령은 또 이날 비준안 국회 통과의 열쇠를 쥐고 있는 여야 지도부와 5부 요인, 언론인 등을 청와대로 초청해 FTA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조속한 국회 비준을 요청했다. 이날 회동에서 이 대통령은 미국 의회가 초당적으로 협력해 한미FTA를 전례 없이 신속하게 처리한 과정을 언급하면서 “우리 국회에서도 잘 처리해달라”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이 비준안 통과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만큼 여권 수뇌부도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19일 국회 외교·통일·안보분야 대정부 질문에 출석해 민주당이 요구한 ‘10 +2 재재협상안’에 대해 “재재협상은 한미FTA를 하지 말자는 주장에 다름없고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폐기될 수 밖에 없다”는 강경입장을 고수했다. 김 총리는 또 비준안 처리 시점에 대해서는 “10월 중에 처리됐으면 하는 생각이다. 비준안 처리가 늦어지면 내년 1월 1일 발효하는 데 지장이 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임태희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여론추이 및 야권 동향파악 등 FTA 비준안 통과를 위해 물밑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0월 18일에는 현직 청와대 행정관이 민주당 회의장에 몰래 들어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회의내용을 보고하다 신분이 발각돼 쫓겨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당정청 수뇌부가 FTA 비준안 조기 통과를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얼마 전 여권 수뇌부가 총리공관에서 비밀회동을 갖고 비준안 처리 시기 및 방법론에 대해 의견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져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이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방문한 기간(10월 11일~16일)에 여권 수뇌부가 비밀회동을 갖고 한미FTA 비준안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시 회동을 통해 여권 수뇌부는 비준안 처리 시기 및 방법에 대해서 의견조율을 마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미FTA 비준안과 관련해 이 대통령의 밀명을 받은 여권 수뇌부가 비밀회동을 통해 비준안 국회 통과 등 FTA와 관련한 민감한 문제에 대해 사전 조율을 거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권 수뇌부의 비밀 회동에는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김황식 총리, 임태희 비서실장 등 당정청 수뇌부가 모두 참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 수뇌부는 회동을 통해 한미FTA에 대한 여론 추이, 10·26재보선 유불리, 야권 설득 논리, 비준안 처리 시기 및 방법 등에 대해 의견을 조율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비준안 처리 시기와 관련해 당청 간 의견이 엇갈린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청와대는 10·26 재보선에서 여권이 패할 경우 FTA 비준안이 장기간 표류할 수 있고, 선거 이전에 처리하는 것이 보수·기득권층 결집에 도움이 된다며 재보선 이전에 처리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홍 대표와 한나라당 지도부는 재보선을 앞두고 강행처리할 경우 민심이 이반될 수 있고, 선거 후 처리에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는 후문이다. 난상토론 끝에 당 지도부의 주장에 힘이 실리면서 비준안 처리 ‘D-데이’는 재보선 이후인 10월 28일로 잠정 결론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수뇌부는 야권을 설득하면서 ‘비준안 처리’ 여론을 확산시키는 데 주력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 한나라당 단독으로 강행처리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한나라당은 재보선 이전에 관련 상임위를 통과시키고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FTA 비준안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야권이 물리적으로 저항할 경우를 대비한 세부적인 제재 수단도 이미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 수뇌부는 비준안이 10월 내에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할 경우 11월부터 시작되는 예산안 심의 및 내년 총선과 대선 등 국내 정치일정 상 또다시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농후한 만큼 10월 말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처리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여권의 비준안 강행처리 움직임을 감지한 야권은 몸을 던져서라도 국회 통과를 저지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어 비준안 처리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10월 18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미국과 어떤 협의를 했으며, 미국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가. 일언반구 성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강행처리한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또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19일 국회 대정부질문을 통해 “한미FTA 비준안 처리를 막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할 것이다. 어떤 비난도 공격도 책임도 피하지 않겠다”며 총력 투쟁 의지를 분명히 했다.
여권 수뇌부의 강행처리 움직임과 야권의 실력저지 방침이 첨예하게 맞서면서 한미FTA 비준안 처리를 앞둔 여의도 정치권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정국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 대통령의 의중을 간파하고 비밀회동을 가진 여권 수뇌부가 FTA 비준안을 언제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지 국민적 시선이 여의도 국회로 향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