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결과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구태의연하다. 무엇보다 집권세력에 대한 응징이라 한다. 여당이 실패하면 집권세력의 응징이고, 성공하면 ‘안정에 대한 기대’라는 뻔한 공식의 반복이다. ‘세대별·지역별 투표 양극화’ 현상도 언급된다. 20대의 경우 대학 등록금과 실업의 문제, 30~40대의 경우 소득 불균형에다가 집값 등의 불만이 있단다.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었기에 ‘정당 정치에 대한 불신’도 추가된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논란과 고가의 피부숍 이용은 양념으로 덧붙여지는 해석이다.
다양한 원인 분석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이 ‘박근혜 대세론’이다. 분명, ‘선거의 여왕’이었던 그분의 광채가 사라졌다. 그녀는 이제 기득권층에 속하는 기성 정치인의 한 사람이 된 것이다. 기성 정치를 거부하고, 응징, 심판하려는 대중의 마음속에 그녀의 자리는 없다. 어떤 해석이나 나름 타당하다.
그런데, 다시 한번 물어 보자. 정말 그런가요?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있나요? 인간은 사후에 자기 행동 합리화는 잘하지만, 처음 행동할 때 분명한 이유를 가지는 동물은 아니다. 이런 해석이 의미가 있으려면, 미래의 일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변화의 예측이란 항상 현재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투표가 있기 며칠 전에 지인들과 서울시장 선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 박원순과 나경원 후보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했다. ‘왜 나왔는지조차 불명확한’ 나 후보야 언급할 필요도 없지만, ‘협찬 인생’처럼 보여지는 박 후보가 무엇을 할 것인지, 그가 서울시장이 된 이후가 더 걱정이 된다는 마음이었다. 왜, 이런 걱정을 하는 것일까? 바로 이번 선거에 참여한 대중의 마음이 여전히 갈 길을 찾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시민운동가 출신의 무소속 후보를 수도 서울의 시장으로 선택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현재와는 다르게 바뀌었으면 한다’는 막연한 불만과 기대의 표현이다. 사실 이런 마음은 역설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불러일으켰다. 그가 2010년 8·15 경축사에서 언급한 ‘공정사회’이다. ‘공정사회’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어색한 ‘화장빨’처럼 내세웠던 이 화두를 통해, 대중들은 고위 공직자들의 관행적인 부패와 부정한 행동에 분개했다. 대한민국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 아니 현실을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기성 정치권을 거부하고, 새로운 정치세력과 질서를 기대한다는 대중의 심리는 막연히 이런 생각에 공감하는 수준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국민보다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한다. 유력 방송이나 신문에 의해서 국민 여론이 만들어진다. 사회적으로 높은 사람들일수록 법을 안 지킨다. 영남 호남 등 지역 중심의 정치 구도가 여전히 유지된다. 대기업이 언론을 소유하는 것이 방송 발전을 위해 좋다. 용산 참사나 재개발 문제의 희생은 우리가 지불해야 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기업은 특권과 특혜를 누린다. 우리 사회에서 학연이나 지연 등이 일의 과정이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는 데 인색하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국민보다 수준이 떨어진다.”
‘억울함과 불만’의 심리, 불합리하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의 획기적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고, ‘아프니까 청춘이다’나 ‘나는 꼼수다(나꼼수)’와 같은 것으로 위안을 얻는 수준이다. ‘해도 안 될 것 같다’ ‘노력해도 못 올라가’와 같은 체념한 현실을 인정한다. 기득권층과 대기업이 특권과 특혜를 누리는 것에 불만이지만, 그들과 엮일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을 찾고 싶다. 무엇보다 ‘나는 손해 보지 말아야지’라는 마음이 더 강하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하는 심리다.
이런 대중들에게 ‘투표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안철수 교수의 ‘행동하는 흑인여성’의 비유는 절묘했다. 사회의 변화를 위한 하나의 방향을 알려준 것이다. 넥타이, 하이힐로 상징되는 20~30대의 행동이다. 이런 민심이 내년 총선과 대선에도 지속될 것인가? 향후 6개월 동안 박원순 서울시장이 보일 행보에 달려있다. 대중 심리가 또 다시 요동쳐야 한다.
정치 공학적 시각에서는 ‘야권통합’이나 ‘제3세력’의 등장을 점친다. 하지만 그런 일은 내년 4월 총선이 끝날 때까지 없다. 왜냐하면 현재의 정치지도자들 중에서 대중의 마음을 분명하게 읽고 행동할 수 있는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잘하는 것은 시대의 ‘대세’에 올라타서 생색내는 일뿐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안철수의 후광으로 대중의 마음을 잡았다. 이제 다시 그가 대안 정치의 실체로 변신을 해야 한다. 과연 그가 제3세력의 정체를 잘 대변할 것인가, 아니 어떻게 할 것인가 지켜보아야 한다. 분명 그의 몫이지만, 안타깝게도 ‘잘 모르겠다’.
‘나꼼수’에서 정봉주 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이 어디서 감히 박원순 같은 (순수한) 사람을 비열하게 공격할 수 있는가.” 하지만 ‘순수한 박원순’은 없다. 몽상가 수준의 시민운동가는 사라지고, 서울시민의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 해결자가 되어야 한다. 과도한 관념적 열정으로 온 국민을 열 받게 했던 과거 시민운동 정치지도자의 경로를 그가 답습하게 될지, 아니면 대중의 마음을 싸늘하게 바꾸는 그런 일을 너무나 순수하게 벌일지, 대중은 지켜 볼 것이다.
연세대 심리학 교수 황상민